[박재현의 시시각각] 청와대는 검찰이 넘을 수 없는 벽

박재현 2015. 11. 2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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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나흘 뒤 퇴임하는 김진태 검찰총장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대과(大過) 없이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건 긍정적이다. 임기제는 1988년 김기춘 검찰총장부터 시작됐다. 이후 지금까지 임명된 17명 중 임기를 제대로 끝낸 사람은 김진태가 일곱 번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그가 처음이다. 그만큼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얘기다. “임기만 채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검찰을 둘러싼 잡음을 최소화시켰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반면 김진태를 지원했던 사람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란 부정적 견해를 내놓는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이를 통한 신뢰확보라는 명분과 관련해서다.

 2년 전 그가 검찰총장으로 임명됐을 때다. 지인들은 그가 ‘길 없는 길’을 가기를 바랐다. 고교 중퇴-검정고시-서울대 법대 입학-시국사건으로 수배-사찰 은신-한국은행 입행-사법시험 합격 등 순탄치 않았던 그의 과거에 점수를 준 것이다. 봉당(鳳堂)이란 그의 법명처럼 검찰이 정의사회를 위한 천둥과 벼락 역할을 하는 집이 돼 달라고 주문했다.

 김영삼 정부 때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김대중 정부 때 대통령 아들을 구속하면서 보여줬던 강단(剛斷)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특수 수사에 눈 밝은 그의 이력이 해박한 불교철학 등과 잘 버무려지길 희망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 역시 청와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다. 임기가 시작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김진태와 청와대의 관계는 묘해졌다. 광주와 인천으로 나눠 이뤄진 수사가 진행되면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조언과 간섭이 그에게 집중됐다. 어떨결에 과거의 상하관계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법무부 장관과 검사 신분에서 시작됐다. 병아리 때 쫓기면 장닭이 돼도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어 불거진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과 산케이 신문 지국장 수사 문제를 놓고 김진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런데 김기춘의 퇴진은 역설적으로 김진태의 존재가치에 영향을 줬다. 포스코 수사 등 기업체 사정을 청와대가 주도하는 꼴 사나운 모양새로 비춰진 것이다. 검찰 개혁을 통한 정치적 중립 등의 취임사는 추진 동력을 잃고 어정쩡하게 표류했다.

 청와대의 정치적 압박을 받으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게 검찰총장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자신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충성을 해야 하지만, 국민에게도 충성을 해야 하는 얄궂은 자리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한 검찰총장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다.

 이 탓인지 미국에선 최고가 아닌 ‘최악의 법무장관(※미국은 법무부 장관이 연방 검찰총장의 역할도 같이 함)’만 뽑는다. 평가 기준은 ▶윤리적 위반과 선택적 법 적용 여부 ▶정치적·개인적 목적의 입법 여부 ▶권한 남용 ▶약탈적인 법집행 여부 등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법무부 장관이었던 에릭 홀더가 최악의 인물로 꼽힌 것은 정치적 편향성 때문이었다.

 우리의 사법 시스템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일률적 적용이 어렵지만 평가기준이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김진태에 대한 평가가 야박한 것은 정치적 편향성보다는 무기력하게 대응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서 나온다. 그가 밝힌 것처럼 “허기진 사람에게 주먹밥이 되어 주고, 갈 길 먼 사람에겐 신발이 되어 주었으면”하는 게 검찰에 대한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검찰에 대한 통치권자의 결단이 없으면 누가 검찰총장이 되더라도 그 벽은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대통령과 맞짱 뜨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기를 끝낸 사람이야 물처럼, 바람처럼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언제까지 미몽(迷夢) 속을 거닐어야 하나.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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