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경화 "젊은 음악인들과 한국 음악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손석희 2015. 11. 2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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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곡을 정확히 40년 전에 처음 이분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26일) 바로 이 곡을 연주한 이분을 만나 뵙게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가장 잘 연주하는 음악가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물론 브루흐만은 아니겠습니다마는.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분이죠.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분, 바이올린의 거장, 정경화 씨를 뉴스룸의 특별한 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안녕하세요.]

[앵커]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어렵게 만나 뵙게 됐습니다. 제가 아까 40년 전의 이 곡을 처음 들었다고 했는데 1975년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연주는 제가 알기로 곡을 취입하신 것은 그보다 몇 년 전인 걸로 알고 있고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네. 데카에서. 73년도에 아마 했을 거예요.]

[앵커]

사실은 저는 그때 재수생이었는데요. 이 곡을 끼고 살았습니다, 그때.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정말 좋은 곡이죠.]

[앵커]

그리고 나서 이제 정말 40년 만에,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뵙게 돼서 무척 반갑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고맙습니다.]

[앵커]

최근에 연주회를 가지셨는데 곡도 곡이었지만 몇 가지 화제가 좀 됐습니다. 우선은 177석의 작은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셨는데 과거의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여러 가지로 생각이 바뀌신 게 있으셨던 모양이죠?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자신이 더 생긴 게 제가 옛날에는 작은 데서 하는 걸 굉장히 두려워했습니다. 관중을 가까이 놓고 하면 너무 떨려요.]

[앵커]

그래서 간 건가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리고 좀 큰 무대를 굉장히 좋아했고. 그런데 지금은 어디 서나 너무 감사하고 그래서 특히 더 친근감 있는 데도 너무 좋고. 특히 바흐 같은 걸 할 때는. 그래서 그런 데를 지금 많이 택합니다.]

[앵커]

바흐 전곡 연주하신 거 조금 있다 얘기를 해야 되겠습니다마는 신발을 벗고 연주를 하셨다면서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저 신발 보세요. 불편해 보이잖아요.]

[앵커]

아, 그렇기는 하네요. 좀 높아서.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제가 젊었을 때는 제일 높은 힐을 신었다고요. 무대에서 작아 보여서 신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앵커]

벗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제 음악을 어떻게 편하게 전달할 수가 있냐. 그래서 저는 무대에 서는 게 너무 편하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편합니다. 그런데 제 자신을 아주 편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앵커]

저 무대에서 연주하셨던 것이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감히 지금 그걸 하러 나섰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앵커]

감히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정 선생님께. 평생의 숙원이다라는 말을 이런 말들을 많이 하더군요,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렇죠. 왜 그러냐 하면 기독교인한테는 성경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바흐는. 그 속에서 한도 끝도 없이 그 마음의 인내와 사랑과 믿음을 기를 수 있는 게, 또 바흐 자체가 그런 인생을 살았고. (그렇군요) 그랬기 때문에 저는 저 나름대로 너무너무 노력을 하는데 정말 신비스럽습니다.]

[앵커]

소극장도 그렇지만 사실은 지난 7월에는 횡성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에서 17명의 학생들과 함께 합주하셨다고 들었고요. 또 자그마한 성당에서도 하시고. 뭐랄까요, 소박하고 작은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어떤 삶의 인생관의 변화, 이것과도 맞닿아 있습니까?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저는 제가 오십이 되니까 그때부터는 아주 집중해서 생각하는 건, 어떻게 다시 돌려드릴 수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축복을 받고 이런 생활을 했는데. 그래서 굉장히 노력을 하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춘당초등학교… 그러고 지금 무대에서도 그러고. 그리고 어린애들이랑 같이 음악을 나누고 얘네들한테 뭐라도 그 음악에 대한 즐거움을 심어준다는 게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앵커]

그런데 사실은 아시는 분들은 많이 아시겠지만 몇 년 전에 손가락을 다치셔서 꽤 오랜 기간 동안 연주를 못하셨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5년을 못 했습니다.]

[앵커]

꽤 긴 시간이었네요.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시작하신 거잖아요. (그렇죠) 이건 제가 얼핏 다른 분이 비유하는 걸 들어봤더니 김연아 선수가 부상으로 은퇴했다가 다시 올림픽에 가서 메달 따는 거나 비슷할 정도로 어려운 거라고 들리기는 하더군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솔직히 말하면 그거보다 더 힘들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너무 섬세하기 때문에 물론 피겨스케이팅은 트리플 러츠 그런 게 넘어질까 봐 걱정이 되니까. 이건 바이올린은 그 음색을 하나하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그 틈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이건 제가 엄살 부리는 거고. 정말 다시 돌아오게 된 건 기적입니다.]

[앵커]

이제는 완전히 회복을 하셨습니까?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완전 칠순 바라보는 나이로는 회복했습니다.]

[앵커]

제가 나이는 여쭙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아니, 저는 문제 없어요.]

[앵커]

칠순 되시려면 2년 남았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렇습니다.]

[앵커]

대관령의 작은 성당에서도 연주하시고. 아무튼 그런 것들이 좀 새롭게 와 닿아서 좀 궁금했습니다. 연주하고 봉사활동도 물론 다 같이 하고 계시고. 정경화 씨 하면 사실은 제 연배 되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아주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조금 소개를 해 드리자면 6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게 몇 년도였습니까, 그러니까.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61년 전입니다.]

[앵커]

12살에 미국 줄리어드음악원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죠.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때는 완전히 저는 미국의 교육은 100% 장학금으로 했습니다.]

[앵커]

1967년에 레벤트리 콩쿠르 우승하셨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것도 기적이에요.]

[앵커]

그런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는 내용인데.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왜 그러냐 하면 제가 뉴욕 생활 할 때는 거기는 완전히 거진 80% 유태인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대하는 사람들은 다 유태인이기 때문에 온 세상이 이런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속에서 그 어린 동양인 애가 1등 한다는 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앵커]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리고 19살이라는 그때는 있을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 하면 여자는 커리어를… 거기서 이긴 사람이 여자가 한 명이 29살 때 이겼습니다.]

[앵커]

그만큼 그쪽이 보수적이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렇죠. 여자는 커리어 갖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앵커]

그리고 70년에 영국에서 세계 무대에 데뷔하셨습니다. 그게 벌써 45년이니까. 지금 영상이 잠깐 나오고 있는데요. 이게 바로 그 당시에 장면이군요, 그러니까 70년대. 잠깐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제임스 골웨이… 맨 오브 골든 플룻이라고 했죠?]

[앵커]

아, 그런가요? 잘 보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 실력도 대단합니다. 예를 들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씨 같은 경우에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천재입니다.]

[앵커]

잘 아시나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럼요. 17살 때, 그러니까 4년. 벌써 4년이 됐네요. 예전에 제가 같이 연주회를 가졌어요. 그런데 너무 재주 있고.]

[앵커]

이미 4년 전에. 그때는 조성진 씨는 사실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일 텐데.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아니요. 그때 벌써 일본에서 콩쿠르 이기고 거기서 굉장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는데 너무 재주 있고 천재적이지만 천재적인 것 갖고는 정말…]

[앵커]

표현이 다 안 되나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안 돼요. 왜 그러냐 하면 너무 노력가이고 그리고 너무 겸손해요. 겸손을 가져야 뭐도 합니다.]

[앵커]

저 콩쿠르 끝나고 상 받자마자 문자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조성진 씨 문자는 아니었을 거고 다른 분 문자를 받았다고.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제가 우도에 잠깐 가서 있는데 그걸 보고 있었는데 막 문자에 골드메달이다. 그래서 이렇게 보낸 사람이 누구인가 그랬더니 크리스티안 짐머만이라고 하면 음악계에서 정말 아주 피아노로는 왕인데. 제가 짐머만이랑 89년도에 레코드를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짐머만은 폴리쉬고 쇼팽에는 아주 정말 앞선 사람인데 크리스티안이 골드메달이라니까 제가 안심이 되더라고요.]

[앵커]

오늘 정경화 씨 모셨는데 조성진 씨 얘기를 계속 하기는 그렇고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저는 얼마든지 더 많이 해도 좋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후손들이 이렇게 잘하니까 너무 행복해요.]

[앵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제 한 2년만 있으면 칠순이시기는 하지만 음악가들한테 사실 칠순이라는 나이는, 제가 알기로는 그렇게 연세가 많으신 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왜요, 많죠. 바이올리니스트가 칠순에 나와서 이걸 한다면 상상이 안 갑니다, 저는.]

[앵커]

아주 연로하신 분들도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을 많이 봬서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피아노는 있고 그렇지만. 바이올린은 이다 헨델, 지금 팔순, 거의 85살에 나와서 하는데 그건 정말 아주 익셉션입니다.]

[앵커]

그런가요? 이례적인 일이군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제가 팔순까지 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앵커]

제가 뵈니까 충분히 그 이후에도 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꿈은 가질 수 있지만.]

[앵커]

그런데 내년 후년까지 다 스케줄이 꽉 차 계신다면서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스케줄은 잡고 있는데 저는 한 3년쯤 하고 나서 제가 지금 꿈을 이루고 싶은 건 무반주 바흐를 녹음을 하고 싶거든요. 그건 정말 꿈속의 꿈인데. 그렇게 하고 조금 활동을 하고 완전히 젊은이들 음악인들 재주 있는 영재와 또 한국의 음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런 걸 심는 데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앵커]

세계 연주여행 같은 것도 다 지금 잡혀 있다는 말씀인가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렇죠.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다니지 못해요.]

[앵커]

알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언니 되시는 정명화 씨하고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러셨다고요.]

[앵커]

그분께서도 굉장히 뭐라고 할까요. 원기에 넘치셨던 기억이 나는데, 정경화 씨도 역시 생각한 대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러세요?]

[앵커]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서 우선 감사를 드려야 될 것 같고 무엇보다도 아까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 10년 이상 계속 좀 열심히 왕성하게 활동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힘닿는 데로는 노력하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또 젊은 친구들 위해서 많이 또…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그건 약속드리겠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저도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였습니다.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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