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P] "맨날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한번만 더 말하고 가"

김강래,노승환 2015. 11. 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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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거쳐 현충원에 안장

2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의 모든 차량이 멈춰섰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장남 은철 씨의 아들 성민 군이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양손에 꼭 쥐고 앞장섰다. 그 뒤로 관을 든 의장대 11명이 천천히 발걸음을 이어갔다. 관은 운구차로 들어갔고 차량은 영결식이 열릴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해 섰다.

건강상의 문제로 국회에서 열리는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서울대병원에 들러 운구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의 손을 꼬옥 잡고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인사했다. 현철 씨도 "몸도 불편한데 와주셔서 고맙다"고 답했다.

영하를 오르내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시민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단단히 쳐진 폴리스라인으로 좀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시민들의 불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은철·현철 씨 등 유가족을 태운 차량에 뒤이어 김 전 대통령을 태운 영구차가 출발했다.

5일장의 마지막 날인 26일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엔 이른 시간부터 유족과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오전 일찍 빈소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의 넷째 여동생 덕선 씨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맨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한 번만 더하고 가"라며 "오빠, 보고 싶고 사랑해"라고 오열했다. 그의 통곡 소리는 장례식장 밖까지 울려 퍼졌다.

오전 10시 장례식장 1층 강당에선 김장환 목사의 집례로 발인예배가 진행됐다. 100석 규모의 예배실은 가득 차 10여 명은 서서 참석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가 예배실을 가득 채웠다.

현철 씨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채 맨 앞줄에 자리했다. 그는 "왜 이렇게 추운 날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데려가시나"라며 "아버님께서 소임을 다하신 만큼 천국에서 영면하리라 믿는다"고 추도했다. 함석헌 목사의 조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가 이어졌고 현철 씨는 이를 담담한 표정으로 들었다.

예배를 마친 현철 씨는 다시 빈소로 올라와 조문객을 맞았다. 공식 조문은 정오까지였지만 그 이후에도 병원을 찾는 이가 끊이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빈소를 찾지 않고 곧바로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는 이날 오후 1시 50분께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2시부터 거행된 영결식에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주한 외국 대사를 비롯한 해외 조문 사절까지 7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 전직 대통령 가족들도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날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종교 의식 △영상 상영 △헌화·분양 △추모곡 △조총 발사 △운구 행렬 출발 △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종섭 행장자치부 장관이 9선 국회의원과 14대 대통령을 지낸 고인의 약력을 보고한 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총리가 조사를 낭독했다. 황 총리는 조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오신 대통령님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면서 "언제까지나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기 바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고인과 함께했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을 떠나보낸 황망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 전 의장은 "초산 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 혹독한 탄압이 중단 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면서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의 가슴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원이 아로새겨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됐다"고 회고했다.

김 전 의장은 또 "지난 닷새의 장례 기간 빈소를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조문객 사이에 끼어 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부질없이 상상해 보기도 했다"면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저 건너편에서 '나, 김영삼인데요' 하는 대통령님의 음성이 바로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 의식이 거행됐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나눈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를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화암 스님, 한국천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신부, 원불교 황도국 교무 등이 종교 의식을 집전했다.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5분간의 영상물도 상영됐다. 미래 대통령을 꿈꾸던 고인의 중학생 시절부터 반독재 민주화 투쟁, 대통령 재임 시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물에 식장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아들 은철·현철 씨를 비롯한 직계 가족을 시작으로 영결식에 참석한 각계 인사 대표단이 헌화와 분양에 나섰다. 추모곡으로는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청산에 살리라'를 바리톤 고성현 한양대 교수가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불렀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 차량은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 채 국회의사당을 떠나 자택이었던 서울 상도동을 거쳐 오후 4시 50분께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도착해 안장식을 거행했다.

[김강래 기자 /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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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의 모든 차량이 멈춰섰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장남 은철 씨의 아들 성민 군이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양손에 꼭 쥐고 앞장섰다. 그 뒤로 관을 든 의장대 11명이 천천히 발걸음을 이어갔다. 관은 운구차로 들어갔고 차량은 영결식이 열릴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해 섰다.

건강상의 문제로 국회에서 열리는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서울대병원에 들러 운구차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의 손을 꼬옥 잡고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인사했다. 현철 씨도 "몸도 불편한데 와주셔서 고맙다"고 답했다.

영하를 오르내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시민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단단히 쳐진 폴리스라인으로 좀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시민들의 불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은철·현철 씨 등 유가족을 태운 차량에 뒤이어 김 전 대통령을 태운 영구차가 출발했다.

5일장의 마지막 날인 26일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엔 이른 시간부터 유족과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오전 일찍 빈소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의 넷째 여동생 덕선 씨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맨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한 번만 더하고 가"라며 "오빠, 보고 싶고 사랑해"라고 오열했다. 그의 통곡 소리는 장례식장 밖까지 울려 퍼졌다.

오전 10시 장례식장 1층 강당에선 김장환 목사의 집례로 발인예배가 진행됐다. 100석 규모의 예배실은 가득 차 10여 명은 서서 참석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가 예배실을 가득 채웠다.

현철 씨는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채 맨 앞줄에 자리했다. 그는 "왜 이렇게 추운 날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데려가시나"라며 "아버님께서 소임을 다하신 만큼 천국에서 영면하리라 믿는다"고 추도했다. 함석헌 목사의 조가 '하늘 가는 밝은 길이'가 이어졌고 현철 씨는 이를 담담한 표정으로 들었다.

예배를 마친 현철 씨는 다시 빈소로 올라와 조문객을 맞았다. 공식 조문은 정오까지였지만 그 이후에도 병원을 찾는 이가 끊이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빈소를 찾지 않고 곧바로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는 이날 오후 1시 50분께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2시부터 거행된 영결식에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주한 외국 대사를 비롯한 해외 조문 사절까지 7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 전직 대통령 가족들도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날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조사 △추도사 △종교 의식 △영상 상영 △헌화·분양 △추모곡 △조총 발사 △운구 행렬 출발 △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종섭 행장자치부 장관이 9선 국회의원과 14대 대통령을 지낸 고인의 약력을 보고한 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총리가 조사를 낭독했다. 황 총리는 조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오신 대통령님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면서 "언제까지나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기 바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고인과 함께했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을 떠나보낸 황망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 전 의장은 "초산 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 혹독한 탄압이 중단 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면서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의 가슴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원이 아로새겨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됐다"고 회고했다.

김 전 의장은 또 "지난 닷새의 장례 기간 빈소를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조문객 사이에 끼어 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부질없이 상상해 보기도 했다"면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저 건너편에서 '나, 김영삼인데요' 하는 대통령님의 음성이 바로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 의식이 거행됐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나눈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를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화암 스님, 한국천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신부, 원불교 황도국 교무 등이 종교 의식을 집전했다.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5분간의 영상물도 상영됐다. 미래 대통령을 꿈꾸던 고인의 중학생 시절부터 반독재 민주화 투쟁, 대통령 재임 시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물에 식장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졌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아들 은철·현철 씨를 비롯한 직계 가족을 시작으로 영결식에 참석한 각계 인사 대표단이 헌화와 분양에 나섰다. 추모곡으로는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청산에 살리라'를 바리톤 고성현 한양대 교수가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불렀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 차량은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 채 국회의사당을 떠나 자택이었던 서울 상도동을 거쳐 오후 4시 50분께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도착해 안장식을 거행했다.

[김강래 기자 / 노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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