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어쩌다 전세난민이 돼서..

2015. 11.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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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폭등하는 전세가에 집 구하다 지치고, 집 사라고 등 떠미는 세상과 직면한 체험기. 국민을 ‘청약 문맹’으로 만드는 복잡한 청약제도는 누굴 위한 것인가

직장생활 20년, 한 번도 적금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 3년만 다니고 그만둘 거니까, 생각했다. 그러나 월급은 쾌감이 없는 마약과 같았다. 직장을 그만둘 용기가 없어도 적금 들 필요가 없었다. 통장에 쌓이는 여분의 월급을 1~2년마다 집어삼키는 하마가 있었다. 각설이처럼 돌아오는 임대차(전세) 계약에 모아둔 돈을 바치면 어느새 마이너스 통장이었다.

행복한 시절은 끝나야 안다. 지난 10월 하순께, 지금 집주인(임대인)이 전화해 “집이 팔렸다”고 했다. “전세를 구할 3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사실 고생을 몰랐다. 지금껏 전셋집을 구해온 사람은 같이 사는 어머니다. 집을 구하면 저축한 돈을 내기만 했다. 세월은 역할을 바꾼다. 이제는 칠순을 넘긴 어머니가 더 이상 그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임대차 계약은 남았지만, 계약서를 갱신하며 썼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매매가 대비 90%, 정찰제 전세

전셋집 바깥은 바람 부는 세상이었다. 5년 만에 이사를 가려니 전세보증금(전세금)이 너무 올랐다. 지금 가진 전세금에 1억5천만원을 더해야 같은 단지 같은 평수 아파트에 살 수 있었다. 무리하게 전세대출을 받는다 해도 문제는 전셋집이 없다는 것이다. 3천여 가구 아파트 단지에 말이다. 선택이 아니다. 지금보다 열악한 환경에 작은 평수로 옮겨야 한다.

집을 보러 갔던 첫날의 표정을 기억한다. 지금 사는 곳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동네의 아파트 단지를 둘러본 어머니의 얼굴은 황망했다. 비록 전세지만 12년을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가깝지만 가보지 못한 동네로 가야만 하는 ‘난민’의 얼굴. 경기도 안양에서 의왕으로 가는 것이 칠순 노인에겐 딸이 이민간 미국으로 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게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구나, 아득했다.

다음날, TV를 보다 문득 어머니가 말했다. “자주 가던 친구집에 몇 달 만에 갔더니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어. 내가 바보가 다 됐어.” 13살에 고향을 떠난 이후 한 번도 고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오래 전세로 살다보니 이곳이 고향이 됐다. 기자의 몸과 마음도 적응해버렸다. 다음 주말, 삼겹살을 구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마트 (삼겹살 가게) 총각이 ‘할머니, 항상 세 줄만 사시네요’ 하더라.” 이것은 단지 이사가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어머니가 ‘구역 식구들’과 헤어지는 일이다. 다행히 어머니 소유의 20평 아파트가 팔렸다. 전세자금에 그나마 여유가 생겼다. 동네는 떠나도 아파트 평수는 줄이지 않아도 된다.

지금 사는 안양에 솟아날 구멍은 없었다. 날마다 밤새워서 ‘네이버 부동산’ 매물을 뒤져도, 매매가 대비 전세가 90%가 아닌 집이 없었다. 4억2천만원짜리 아파트에 3억8천만원 전세로 살다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동생이 살던 경기도 용인 수지는 물론 광교도 뒤졌다. 전세가율 80%는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낯선 그곳에 적응할 자신이 없었다. 스마트폰 위 손가락이 헤매지 않은 경기도 일대가 없었지만, 안양을 벗어날 도리가 없었다.

통계가 답을 말했다. ‘KB부동산 알리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수도권에서 아파트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군포시(70.9%), 의왕시(70.2%), 안양시 동안구(69.1%) 등이다. 전셋집을 구한 인덕원 일대는 안양시 동안구와 의왕시 내손동에 속한다. 11월에 쏟아진 전세 대란 기사에서 안양시와 의왕시는 전세가 상승률 선두권으로 언급됐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을 더한 비율이 이러니 아파트 전세가 비율은 더 높았다.

악재가 겹쳤다. 하필이면 안양에 인접한 과천이 재개발되면서 이주가 늘었다. 안양에서 수원을 잇는 전철 ‘인덕원선’ 확정 발표도 때마침 나왔다. 인덕원 일대의 아파트 전세가는 마치 공장도 가격처럼 매매가 대비 90% 전세가 정찰제로 ‘모시고’ 있었다. 전세가를 올려서 집값을 띄우려는 부동산 업계의 짬짜미가 뻔했지만, 달아날 방법이 없었다. 안양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해 말 전국의 전세가율은 66.8%, 전국적 문제다.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상은 집을 사라고 강권하고 있었다. ‘더러워서’ 집을 사야 할 상황이었다. 전세가가 치솟아 3천~4천만원만 보태면 32평 아파트를 산다. 집을 보러 간 곳의 세입자들은 “전셋값이 너무 올라 집을 사서 이사한다”고 자주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주택 구입 자금의 70%까지, 3% 연이자로 ‘모시며’ 집을 사라고 권한다. 이자를 따져도 사는 편이 나았다. 세금으로 마련한 주택기금에서 나오는 ‘버팀목 전세대출’ 이자보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주는 ‘디딤돌 대출’의 이자가 낮았다. 전세가율 낮은 집을 찾는 불가능한 미션을 밤새 스마트폰으로 수행하다 지친 아침, ‘차라리 사자… 차라리 사자…’ 탄식했다.

‘역대 최고’의 뉴스만 아니었어도 쉬웠을 것이다. 11월 들어 ‘지난 한 달 동안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10월에 역대 최대 물량의 분양아파트가 쏟아져나왔다’는 불길한 뉴스가 나왔다. 부동산 부양에 목숨을 거는 정부도 가계대출 규제를 시작할 정도로 주택담보 대출은 ‘만땅’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률도 5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당장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의 25평 기준으로 매매가가 지난해에 견줘 3천만~5천만원(15%)이 올랐다. 지금이 집값의 정점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사지도 못하고, 안 사지도 못하고… 인생에서 이런 외통수가 없었다. 아니,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잔머리를 굴리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부동산 중개인들과 만나는 일은 때로 불편했다. 전세가를 밀어올리는 데 기여한 사람들과 만나야 전셋집을 볼 수 있는 역설이다. 게다가 믿지 못할 일이 생겼다.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 살려고, 몇 주를 계속해 ‘네이버 부동산’을 확인했다. 가끔 눈에 띄는 전세가 있었다. ‘3억원에 40만원’. 기자에게 맞는 전·월세 황금 비율의 집이 나왔다.

몇 번 전세계약을 중개했던 동네 부동산 사장님에게 연락했다. “확인해보겠다”고 하더니 얼마 뒤에 “어제 나갔다”고 답했다. 이상하게 사흘 뒤에도 같은 아파트 같은 조건의 전·월세가 ‘네이버 부동산’에 있었다. ‘그 부동산 매물이 아니라 소개하지 않았나…’ 하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다른 부동산에 전화했다. 이번엔 “오늘 저녁에 계약하기로 돼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전셋집을 소개했다. ‘네이버 부동산’을 밤새 뒤져 찾아낸 ‘괜찮다’ 싶은 전세는 매번 이랬다. 실체가 없는 ‘미끼 상품’에 번번이 헛된 기대를 걸었다.

박근혜 정부의 ‘스멜’을 이토록 가까이 느낀 적이 없었다. 정부가 내놓은 몇 번의 부동산 대책은 오늘의 곤경과 무관치 않았다.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집을 사거나 월세로 살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정부의 장단에 맞춰 저금리 시대에 여윳돈은 부동산으로 흘러간다. 정부는 양도세를 줄이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하고, 결국 전세가 상승을 부추겼다.

‘귀한 전세’를 놓는 집의 특징이 있었다. 최근 주인이 바뀐 집이다. 부동산 중개인도 “3천만~4천만원 들고 집 사러 온다”고 했다. 4억2천만원 아파트의 전세가 3억8천만원이니, 계약금 4천여만원만 있으면 한 채를 산다. 계약금만 제 돈으로 밀어넣고, 전세금을 받아서 잔금을 치르는 것이다. ‘갭(Gap) 투자 주의보!’라는 기사는 실상을 확인시켜주었다. 집값이 오르면 나의 것, 떨어지면 손해는 너의 것. 세입자는 언제 집값이 전세가 이하로 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깡통전세’를 살게 된다.

나름 역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3억8천만원 전셋집이 있으면, 부동산에 전화해 “3억원에 25만원 반전세도 가능한가” 물었다. 전세자금 대출이자보다 월세가 비쌌지만, 전세금 보호가 중요했다. 울며 겨자 먹기다. 한두 군데 부동산에서 “주인을 어렵게 설득했다”는 답을 받았다. 막상 계약하려고 하면, “(원래 내건) 전세금을 1천만원 내려줄 테니 전세로 하자”고 답했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셀프 전·월세도 사라진 날, 비가 내렸다. 회사 동료에게 우산을 빌려 가까운 보증보험사로 갔다. 손에는 전셋집의 등기부등본과 KB부동산 시세표를 움켜쥐었다. 서류를 보여주며 “전세금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건넨 시세표를 살핀 상담원이 “현재로선 가능하다”고 했다. 손품보다 발품이 먼저인데 실수했다. ‘깡통전세’ 공포를 피하려면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하라는 정보를 진작에 알았다. 그러나 막상 검색해보니 ‘전세가율이 높으면 가입이 어렵다’고 했다. 셀프 전·월세 만들기도 좌절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직접 찾아가 물으니 결과는 달랐다.

연립주택은 몰라도 아파트 전세로 보증보험을 드는 조건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상담원은 “전세가가 매매가 평균의 100% 이하면 된다”고 했다. 전세금의 0.192% 정도 되는 보험금(3억원이면 2년에 약 120만원)을 내는 대신, 전세금의 100% 반환을 보장받는 것이다. 물론 임대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음날, 결국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문구를 넣고 전세 계약서를 썼다. 두 달 뒤면 12년 살던 동네를 떠나야 한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주택청약제도를 샅샅이 뒤졌다. 전세 대란에 다시 전세를 구하다 죽겠다 싶었다. 20여 년 비자발적 도시 노마드(유목민) 생활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 정보를 다루는 기자에게도 청약제도는 ‘욕 나올 만큼’ 어려웠다. 도저히 국가가 운영하는 제도라고 믿기 힘들 만큼 복잡했다.

예전에 청약예금을 들긴 했는데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2003년 10월 가입한 예금이 있었다. 민간분양아파트(민영주택)를 청약하는 통장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주로 짓는 공공분양아파트를 분양받는 청약저축과 다르다(지금은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통합됐다). 민간주택 청약제도를 파보니 ‘청약 가점제’가 중요했다. 가점제는 30살 이후 무주택 기간(15년 이상 32점 만점), 청약예금 보유 기간(15년 이상 17점 만점), 부양 가족 수(6명 이상 35점 만점)를 더해 84점이 만점이다.

1972년 6월생 기자는 2015년 11월 현재 47점이 나왔다. 경쟁률이 높은 아파트를 분양받기엔 모자라고, 포기하기엔 아까운 점수다. 청약예금으로 분양받는 아파트 물량이 줄어드는 추세라 가점이 높은 이들이 청약에 적극 나서고 있어 더욱 어려워졌다. 모두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덕이다.

원래 민간분양아파트(민영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85m²(32~33평) 이하 중소형 주택은 100% 가점제로 뽑았다. 85m² 이상도 50% 가점제, 50% 추첨제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2013년 ‘4·1 부동산 대책’ 후속 조처를 통해 민영주택 가점제 적용을 85m² 이하 주택의 40%로 축소했다. 85m² 이상은 가점제가 없어지고 100% 추첨제로 바뀌었다. 무주택 기간이 긴 이들의 파이가 확 줄어든 것이다. 더구나 2017년부터 청약 가점제 적용을 40% 내에서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긴다. 사실상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집이 있어도 청약저축을 넣으면 1순위가 되는 변화도 있다. 추첨제 확대는 자금을 가진 이들을 분양시장에 뛰어들게 해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렇게 주거와 관련된 변화도 모르고 지냈다. 기자도 대다수 국민처럼 ‘청약제도 문맹’이었다.

도대체 뭔 말이야? 왜 이렇게 복잡해!

지금부터 쓰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기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한다. 그만큼 청약제도가 복잡하다. LH가 짓는 공공분양아파트(공공주택) 청약제 역시 민영주택 분양만큼 복잡하다. 최근의 변화는 기업 편에서 서민을 울리는 것이다. 공공주택은 원래 조성 원가로 분양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감정가를 기준으로 변했다. 난수표 같은 말이다. 번역하면, 조성 원가는 땅값과 건설비를 실비 수준으로 계산한다. 공산품으로 보면 공장도 가격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 포함된 보금자리주택이 주변 시세의 60~70% 수준에서 공급된 이유다. 하지만 감정가는 대략 주변 시세의 85~95% 선으로 결정된다. 이렇게 들어도 “뭔 말이야?” 싶은 단어가 ‘국민’ 청약제도에 넘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11월 민영주택 분양을 예로 들면 이렇다. 용인시 수지구 역세권에 들어서는 주상복합아파트가 화제였다. 그러나 청약을 하고 싶어도 용인시 거주자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는 ‘당해’ 1순위 100% 우선 분양이다. 용인시에 사는 1순위인 사람이 100% 이상 청약하면(미달이 아니면) 다른 지역 거주자에게 가는 기회는 없다. 단어도 낯선 ‘당해’는 해당 시·군을 말하는데, 용인시에 짓는 민간주택은 용인시 거주자가 ‘당해’에 해당된다. 건설지가 안양시라면 안양시민이 ‘당해’가 된다. 육십 몇만 평(정확히 찾기도 버겁다) 이하 소규모 택지에 짓는 아파트는 ‘당해 100%’란다.

11월20일 분양 공고가 나온 미사강변 신도시의 민간분양아파트는 청약 가점제 적용이 또 다르다. 여기는 85m² 이상도 50%를 가점제로 뽑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 85m² 이상 민영주택은 모두 추첨제로 변했다고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여긴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 50% 이상 들어간 대규모 공공택지(보금자리지구)라서 그렇단다. 대규모 공공택지에 짓는 민영주택은 2013년 이후에도 여전히 85m² 이하는 100%, 85m² 이상은 가점제로 뽑는다. 지역 배분도 ‘당해 30%, 경기도 20%, 서울 및 수도권 50%’다.

이보다 한 주 늦게 광명역 인근에 분양한 주상복합아파트는 85m² 이하를 40% 가점제로 뽑는다. 지역 배분도 3 대 2 대 5. 여기는 보금자리지구도 아니고, 소규모 택지도 아니라서다. 이쯤 되면 독자들의 원성이 들린다. “도대체 뭔 말이야?” 미안하지만 답은 이렇다. “그렇게 복잡합니다.” 각각의 제도에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지쳐서 이해를 포기할 정도다.

아파트 분양 타령은 행복에 겨운 소리다. 30대 초반인 후배 기자는 “제가 감히 집을 살 생각을?”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그는 보증금에 50만원 월세를 낸다. 월급의 20% 이상이 월세로 나간다. ‘당연히’ 무주택이고, 월급이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3명 이하 473만4603원) 이하다. 오래전에 청약저축을 들었고 최근에 집을 옮겼지만 임대주택은 생각도 못했다.

의견광고 대신 공익광고, 제발!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공공임대는 물론이고 국민임대주택도 청약할 자격이 된다(공공임대는 무엇이고 국민임대는 무엇인지 이것도 어렵다). 그는 지금껏 상식대로 ‘싱글한테 공공임대를 주겠어?’ 생각했다. 오랫동안 기자가 그랬던 것처럼. 만약 누군가 그에게 청약제도를 제대로 설명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가 운좋게 임대주택을 분양받았다면, 50만원보다 훨씬 적은 월세를 냈을 것이다. “너도 자격이 된다”고 알려주자, 잠시 검색을 해본 그는 “어머, 강남에 지난 9월 (임대주택을) 분양한 적이 있고, 올해 1천 가구를 공급한 적도 있네” 했다. 야근을 마치고 나가는 그는 “그럼 저는 저의 비싼 집으로 가볼게요” 하고 총총히 사라졌다.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중산층에서 자란 이들이 청약제도를 접하고 이해할 기회가 많다. 그러나 복잡한 제도의 해독률이 떨어지는 이들, 그러나 더욱 주거 안정이 필요한 서민은 제도를 몰라서 못하고 복잡해서 좌절한다. 국가가 방치한 곳에서 사익이 자란다. 강의료, 상담료를 내면 청약제도를 설명하고 청약 전략을 짜준다는 이들이 유일한 길잡이가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꾸고 덧대서 복잡해졌다면, 제대로 홍보를 해야 한다. 청약제도를 꼼꼼히 알리는 공익광고 캠페인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정부는 국정교과서 ‘의견광고’에 세금을 붓는다. 복잡한 제도 앞에서 “도대체 어디에 물어야 하느냐?”는 원성이 높지만, 상담기관은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주민센터, 구청이나 시청에는 청약제도 상담자를 두어서 궁금증을 해소해야 하지 않을까?

금융결제원이 운영하는 ‘APT2you’(www.apt2you.com)가 청약제도의 유일한 길라잡이다. 그러나 인터넷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은 여전히 소외된다. 허점도 있다. 여기에 청약 가점 계산기가 있는데, 가점 계산에서 모든 경우를 설명하지 않는다. 예컨대 기자는 청약 점수를 앞서 설명한 대로 47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60살 이상 직계존속(부모)이 주택을 소유한 경우, 무주택’이라는 규정이 있다. 그렇다면 71살 어머니 명의의 주택이 있어도, 기자는 무주택자다. 그러나 청약 기간 계산이 복잡하다.

정부는 실수 유발자?

처음에는 무주택 기간을 13년으로 계산했다. 43살인 기자의 무주택 기간을 30살 이후부터 계산한 것이다. 이곳의 ‘청약 가점 계산하기’의 ‘무주택 기간 산정’에는 ‘청약 신청자와 그 배우자를 기준으로 산정’하라는 설명만 나온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기자가 30살이 된 시점인 2002년에 같은 세대를 구성했던 직계존속(어머니)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60살이 된 해는 2004년이다(기자는 32살). 그렇다면 지금도 어머니와 같은 세대를 구성하는 기자의 무주택 기간은 ‘30살 이후 13년’인지, ‘어머니가 60살이 된 해부터 11년’인지 불분명하다. 가점제 계산이 결혼한 가족 위주로 정리돼 있는 탓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공주택 특별분양인 ‘생애 최초 공급’을 기혼자로 한정하는 것은 차별 아닌가?

지금이라도 어머니와 주소를 달리해 세대를 분리하면, 무주택 기간 13년으로 명확해지지만 특별분양제도인 ‘노부모 부양 특별분양’을 염두에 두는 세대로선 불이익을 받는다. ‘노부모 부양’에 해당하려면 같은 주민등록상에 최근 3년을 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검색해도 이런 경우의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에 무작정 전화를 하거나 LH에 물어야 한다. 역시나 국민 포털 사이트를 두드려도 담당부서 전화번호는 찾기 힘들다. 혹시 고의가 아니라도, 잘못된 가점을 입력해 분양을 받으면 나중에 부적격 당첨으로 분양이 취소된다.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이렇게 혼란스러운 사람도 착실히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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