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인터뷰] 日 통역 정창용 씨가 말하는 '韓 최고 타자' 이승엽과 이대호

2015. 11. 2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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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손찬익 기자] '국민타자' 이승엽과 '빅보이' 이대호의 일본어 통역을 맡았던 정창용 씨는 부산고와 동국대의 좌완 투수로 활약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최우수 투수상을 받는 등 좌완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프로 무대를 밟지도 못한 채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그래서 일까. 정창용 씨의 가슴 한 켠에 야구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현역 은퇴 이후 일본의 트레이닝 전문 학교에서 공부했었던 그는 2006년 이승엽(당시 요미우리)과 인연이 닿아 야구계에 다시 복귀하게 됐다. 정창용 씨는 25일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거물 타자와 함께 할 수 있어 아주 행복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2006년부터 6년간 이승엽과 동고동락했던 정창용 씨는 "당시 일본 야구계에서 한국 야구의 수준을 낮게 봤던 게 사실"이라며 "그만큼 승엽이형이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다. 수많은 역경을 딛고 리그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요미우리 4번 타자의 위상은 정말 대단했다. 잘 알려진대로 요미우리는 최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승엽이형은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 스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승엽이형을 보기 위해 도쿄돔을 찾는 팬들도 아주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정창용 씨는 "일본에서도 승엽이형의 인품에 대한 평가는 단연 으뜸이었다. 구단 수뇌부 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 선수단, 팬 모두 승엽이형의 인품에 매료됐다. 승엽이형이 오릭스로 이적할때 당시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님께서 '이승엽의 뛰어난 실력 뿐만 아니라 좋은 인품이 후배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아 영입하게 됐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손가락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정창용 씨는 아쉬움 가득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승엽은 요미우리 시절이었던 2007년 10월 왼손 엄지 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전과 8월 본선 무대까지 뛰었다. 정창용 씨는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승엽이형의 손가락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더욱이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올림픽 대표팀에 참가했었다. (베이징 올림픽에) 다녀와서도 계속 아팠다"고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야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정창용 씨는 "승엽이형이 올림픽 대표팀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일본 무대에서 한 번 더 전성기를 누렸을지도 모른다. 후배들의 병역 면제 등 여러가지 이유에서 참가를 강행했었다"고 했다. "가끔씩 승엽이형에게 '올림픽 대표팀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고 물어본다. 그럴때마다 승엽이형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언제나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은 없다'고". 

이후 이승엽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창용 씨는 "당시 승엽이형이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다. 오랫동안 2군에 머무르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연차 선수들은 안타 1~2개만 쳐도 1군의 부름을 받는데 승엽이형은 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당시 가족들이 아주 큰 힘이 됐다. 형수님과 은혁이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창용 씨는 "돌이켜 보면 승엽이형은 항상 삼성 복귀를 꿈꿨던 것 같다.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한국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나는 삼성이라는 팀에서 정말 많은 걸 얻었다. 어쩌면 평범한 선수로 일찍 은퇴했었을 수도 있었는데 삼성에서 뛰면서 부와 명예를 얻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자주 말했었다. 승엽이형이 삼성에 복귀한 뒤 정말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 같다. 통화할때마다 '야구가 잘 돼 즐겁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고 말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정창용 씨는 "승엽이형이 한국에서 마음 편히 야구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무대에서 명예 회복을 한 뒤 한국에 복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정창용 씨는 2012년부터 이대호의 일본어 통역을 맡게 됐다. 6년간 이승엽의 입과 귀가 되었던 정창용 씨 역시 일본 야구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라 이대호의 일본 무대 안착에 큰 힘이 됐다. "대호가 일본에 왔을때 리그 전체에 변화의 바람이 거셌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도 많았고 세대 교체의 붐이 불었다. 여러모로 대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었다"고 설명했다. 

정창용 씨가 말하는 이대호의 장점은 무엇일까. "외국인 선수는 문화 적응이 아주 중요한데 대호는 성격이 좋다보니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타격 밸런스가 무너져도 회복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타고 났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무대를 평정한 이대호는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 중이다. 그는 프리미어12 대표팀의 4번 타자로 활약하며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대호는 아주 영리하고 상황에 따른 타격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일본에서도 대호와 같은 타자는 보기 힘들 정도"라는 게 정창용 씨의 말이다. 이어 "대호가 적응만 빨리 한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나 역시 대호가 어느 만큼 할 지 아주 기대된다"고 빅리그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 일본 최고의 구단에 몸담았던 정창용 씨는 "10년간 일본 무대에서 보고 배운 걸 바탕으로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창용 씨는 10년간 일본 무대에서 활약하며 일본 야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본 야구의 인적 네트워크도 뛰어나다. "기회가 된다면 국내 구단의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업무를 맡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wha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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