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YS인가.. 민주주의 위기 시대에 다시 보는 김영삼

김지은 2015. 11. 26.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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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Politics), 국민(People), 리더십(Leadership)없는 'PPL' 실종 시대에 귀감

1987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대선을 두달 앞둔 10월 17일 부산 수영만에서 열린 '군정 종식 및 후보단일화 촉구 대회'에서 환호하는 1백만 시민에 손을 흔들어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가 생전에 지키려 애썼던 민주주의의 의미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은 의회를 불신하며, 여야는 타협을 모르는 반목만 되풀이하는 동안 국민은 정치에 등을 돌리는 민주주의의 삼중 위기를 반증하는 현상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Politics)도, 국민(People)도, 리더십(Leadership)도 없는 ‘PㆍPㆍL 실종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의 갈증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정치 실종 vs YS의 ‘의회 존중’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위선’과 ‘배신’으로 요약된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이것은 위선”이라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때문에 청와대와 여의도 정치권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의회주의자로 평가되는 김 전 대통령의 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YS 역시 임기 4년차인 1996년 12월 26일 여당을 동원한 새벽 노동법 날치기로 국회를 무시하는 과오를 남겼지만 소통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야당과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다음달인 97년 1월 21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영수회담’을 했다. 당시 YS는 노동법 재개정을 약속했고, 두 달 뒤인 3월 국회는 여야가 마련한 노동법 합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다시 의회의 ‘타협의 정치’에 맡긴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내용뿐 아니라 시점에서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여의도를 하대하고 절연하다시피 하는 건 대결 구도만 키우는 일”이라며 “막강한 권한을 가질수록 고개를 숙여 비박계도 만나 설득하고 야당에도 호소할 줄 알아야 정치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실종 vs “위대한 국민여러분”의 철학

YS가 재조명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여론 중시 정치다. “이~대한(위대한) 국민 여러분”이라는 YS의 유행어에는 그의 정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상도동계로 YS의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YS는 참모들에게 늘 ‘국민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강조했고 그래서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위대한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통령 임기 중 YS는 여론을 가장 중시했다. 결정했던 일도 민심이 아니다 싶으면 방향을 틀었다. 초대 법무부 장관에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을 임명했다가 딸의 이중국적, 대학특례입학 논란이 불거져 열흘 만에 경질했고, 임명직이었던 김상철 서울시장 역시 자녀의 외국국적, 그린벨트 무단 형질변경 문제가 터지자 엿새 만에 경질성 사퇴를 시켰다.

때문에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YS는 “대국민 사과를 가장 많이 한 대통령”으로도 거론된다. 임기 첫해 이른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관련해 쌀개방을 않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해 사과한 것으로 시작해 낙동강 수질오염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장학로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부정축재사건, 한보사태, 차남 현철씨 비리사건 등 때문에 줄줄이 대국민사과를 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과정 교수는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의 힘은 국민에서 나왔고 그렇기에 YS는 국민을 가장 우선에 뒀다”며 “여론이 아니면 인사도 정책도 되돌리고 필요하다면 지체 없이 대국민사과를 한 게 그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자와 정치인이 많은 시대에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정신”이라고 덧붙였다.

리더십 실종 vs 통 큰 지도자

YS가 지닌 통 큰 리더십 역시 리더십 부재의 정치권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광웅 명예교수는 “모래알처럼 분열된 정치권과 사회를 하나로 빚어낼 살신성인의 지도자에 목말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 닮아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부 교수는 “권위주의 리더십의 현 정부가 젊은 시절 YS가 타파하려 싸웠던 세력과 흡사한 데서 오는 향수 효과, 민주화 투쟁 등 한국 정치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현재 여의도의 주축이 된 후배 정치인 등이 조명되면서 ‘YS 신드롬’이 생기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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