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퇴치' 유전자 가진 모기 만들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15. 11. 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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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류서 말라리아 항체 유전자 찾아 특정 DNA 절단 '유전자 가위'와 함께 모기에 이식.. 후손 100% 항체 지녀 모기는 놔두고 말라리아만 '저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얼룩날개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6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런데도 아직 예방 백신은 나오지 않았다. 병을 옮기는 모기를 박멸하는 방법도 제안됐지만 생태계를 파괴할 우려가 있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미국 과학자들이 모기는 그대로 두고 말라리아만 막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모기 유전자를 마음대로 자르고 붙이는 '유전자 가위' 덕분이다.

◇항체 유전자 퍼뜨리는 유전자 가위

미국 UC어바인의 앤서니 제임스 교수는 지난 23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를 가진 모기를 야생에서 순식간에 늘리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모기를 일반적인 야생 모기와 교배시켰더니 후손의 90% 이상이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고 밝혔다. 모기는 그대로 두면서 말라리아만 막을 획기적인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두 과학자의 융합 연구 덕분이다. 제임스 교수는 20년 가까이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기는 원충의 숙주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말라리아 원충은 암컷 모기 몸에서 살다가 모기가 피를 빨 때 사람에게 옮겨간다. 마침내 2012년 연구진은 설치류에서 말라리아에 저항하는 항체를 발견했다. 항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모기에게 이식하자 말라리아 원충의 생체 주기가 엉망이 됐다. 모기가 더 이상 말라리아를 옮기지 않게 된 것이다.

문제는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의 전파 속도가 느리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이든 모기든 후손이 가진 유전자 한 쌍은 부모로부터 각각 절반씩 물려받은 것이다. 따라서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야생 모기와 짝짓기를 하면 후손이 저항 유전자를 물려받을 확률이 50%이다. 이 후손들끼리 다시 짝짓기를 하면 저항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나올 확률이 또 줄어든다.

이때 UC샌디에이고의 이선 비어 교수가 제임스 교수에게 연락을 했다. 비어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초파리 군집에 원하는 유전자를 퍼뜨리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른바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잘라내고 싶은 특정한 DNA에만 결합하는 유전물질인 RNA와, 특정한 DNA를 잘라낼 수 있는 효소를 결합시킨 형태다.

제임스 교수는 비어 교수의 방식대로 모기에게 말라리아 저항 유전자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함께 이식했다. 저항 유전자를 가진 모기와 야생 모기가 짝짓기하면 후손은 저항 유전자와 일반 유전자를 반반씩 갖고 태어난다. 그러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일반 유전자를 잘라냈다. 잘려나간 부분은 반대편 저항 유전자를 똑같이 복제해 메운다. 결국 저항 유전자를 100% 가진 모기가 되는 것이다.

◇불임 모기보다 생태계 훼손 우려 적어

말라리아를 옮기지 못하도록 모기를 변형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장 먼저 불임 모기를 만드는 방법이 시도됐다. 먼저 수컷 모기에게 방사선을 처리해 생식 능력을 없앤다. 이런 불임 모기를 자연에 풀어놓으면 암컷과 짝짓기를 해도 후손을 퍼뜨리지 못한다. 점점 모기 군집은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사선을 쬐면 다른 신체 기능도 망가지는 문제가 있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이 '시한폭탄' 모기다. 수컷의 생식 능력은 그대로 두고 나중에 태어날 알에서만 작동하는 자살 유전자나, 아니면 암컷 후손의 날개만 망가뜨리는 유전자를 넣는 것이다. 영국 옥시텍사(社)는 2009년 자살 유전자를 가진 수컷 모기를 케이맨제도와 카리브해에 방사해 뎅기열 전염 모기 수를 80%가량 줄였다. 하지만 아무리 해충이라도 갑자기 수가 줄어들면 생태계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모기와 먹이사슬로 이어진 다른 생물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모기 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물론 모기에게 이식한 유전자가 다른 생물에게 퍼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미국 과학원은 내년까지 유전자 드라이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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