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태만'이 좀비기업 늘렸다

이주영 기자 2015. 11. 2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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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 "업황 나쁜 기업에도 대출부실 드러나도 한참 뒤 '뒷북' 대응"

기업들의 업황이 나빠지고 있음에도 금융기관들이 기업 대출을 계속 늘리다 부실이 곪을 대로 곪은 뒤에야 대응에 나서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기관들이 좀비기업들을 늘려온 것이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부동산·임대업과 숙박·음식점업에 대한 대출이 크게 늘고 있는데 이들의 수익성이 좋지 않아 위험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25일 ‘기업 대출, 업황 변화 반영 늦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업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금융기관들이 계속해서 대출을 늘리다 기업 부실이 표면화되고 한참 후에서야 뒤늦게 대출 조절에 나선 경우가 있다”며 “대출 리스크 상승에 선제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은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철강·석유화학·해운업 등 취약 업종의 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조선의 경우 2009년 초와 비교해 올해 6월 말 대출 잔액이 171% 늘어나 전 업종 가운데 대출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다. 같은 기간 철강, 석유화학, 해운업의 대출 증가율도 각각 61%, 50%, 39%에 이른다. 이들 4대 취약업종의 대출 증가액은 41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들 업종은 2010년 이후 대부분 성장세가 멈추거나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조선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2010년 이후 2011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마이너스였고, 일시적으로 매출이 늘었던 2011년에도 매출액 증가율(5.1%)이 전 산업 평균(1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수익성과 재무 안정성을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도 2013년부터 순손실을 의미하는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실적에 경고음이 켜졌음에도 금융기관들은 계속 대출을 늘린 것이다. 해운업도 마찬가지다.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매출액 증가세가 부진한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이거나 1 미만에 머물렀다. 이는 순손실을 기록하거나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음을 의미한다.

지난해부터는 조선·해운업 등의 대출 증가 속도는 둔화된 반면 부동산·임대업, 숙박·음식점업의 대출이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초부터 올 6월 말까지 부동산·임대업과 숙박·음식점업의 대출 잔액은 각각 26%, 19% 늘어 전체 업종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년 반 동안 늘어난 대출액이 각각 28조9000억원, 6조2000억원이다. 그러나 부동산·임대업 역시 2009~2013년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었고, 숙박·음식점업의 이자보상배율도 전 산업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시중 금리가 오르거나 부동산 및 자영업 경기가 둔화될 경우 대출이 부실화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조 연구위원은 “업황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늘어난 기업 부채는 좀비기업의 연명을 도와 업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역시 수익성과 재무적 안정성이 나빠지고, 추가 금융지원이 필요할 경우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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