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이 빚은 선경을 만나다, 충북 괴산 화양구곡&산막이 옛길

글 정유미·사진 서성일 기자 2015. 11. 25. 21: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선비들이 거닐던 골짜기, 신선이 놀다 갔대도 믿겠네

충북 괴산은 이름부터 낯설다. ‘괴’ 자에서 느끼는 선입견 탓이다. 하지만 괴산(槐山)의 ‘괴’ 자는 느티나무를 의미한다. 괴산에 가면 진짜 어딜 가나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槐’는 선비를 상징한다. 괴산은 실제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은거지였다. 이들 성리학자는 많은 인재가 배출되기를 열망해 곳곳에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괴산의 산과 골은 얼핏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한국 고유의 풍경을 지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생각보다 산은 높고 골은 깊다. 우암 송시열은 “심신이 상쾌하여 마치 선경에 있는 것 같으니 무릉도원을 찾겠는가”라고 노래했다. 손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때문에 또 낯선 곳이 괴산이다.

충북 괴산 화양구곡은 조선 사대부들이 학문을 닦고 몸과 마음을 쉬던 산중계곡이다.

성리학의 대가 송시열 선생이 만년에 후학을 가르치던 암서재가 계곡 건너편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 자연이 빚은 예술

화양구곡어디부터 가보는 것이 좋으냐고 괴산군청에 물어보면 ‘화양구곡’을 가장 먼저 추천한다. 한여름도 아닌데 웬 계곡? 굽이굽이 계곡을 따라가 보면 그 ‘깊은’ 뜻을 금방 알게 된다. 화양구곡은 상류로 오를수록 경치가 빼어나다. 너럭바위가 절벽 위에 기묘한 형상으로 서 있거나 맑은 물살에 닳아 반질반질하게 깎인 채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화양천 입구부터 가파르게 솟은 절벽들이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아홉 개의 멋진 굽이(曲)가 4㎞에 걸쳐 펼쳐진다.

구곡(九曲)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던 산중계곡이다. 선비들은 아름다운 물굽이 아홉 군데를 정한 뒤 각각 이름을 붙이고 정자를 지어 한가롭게 거처했다. 바위에 굽이의 이름을 새기고 시를 지어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했다. 괴산에는 화양구곡, 선유구곡, 쌍계구곡, 갈은구곡, 연하구곡 등 모두 여섯 개의 구곡이 있다. 이 중에 화양구곡은 조선중기 좌의정을 지낸 송시열이 성리학을 공부하며 거닐던 곳이다.

맨 처음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암서재’다. 계곡 건너편에 양반다리를 하듯 앉아 있는 서실(書室)이다. 송시열이 만년에 강학하고 독서를 하던 곳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빗물에 계곡이 불어 돌다리를 건널 수 없어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선비들이 시를 짓고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데 저만 한 곳도 없겠다 싶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별을 보는 곳 ‘첨성대’가 산 위에서 하늘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첨성대 바위 아래에는 송시열과 명나라 의종의 친필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배를 타고 산막이 옛길을 따라가면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흐르는 물을 따라가다보면 누구나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시인이 될 듯싶다.

구름이 맑은 물에 제 모습을 비춘다는 ‘운영담’은 가히 절경이었다. 절벽은 벽돌을 쌓아올린 듯 정교하고 물길은 잔잔해 그윽했다. 산과 바위가 에메랄드빛 강물에 비치는데, 좀 과장하자면 조금 전 신선들이 놀다갔다고 해도 믿겠다. 물소리가 맑아 계곡은 오를수록 웅숭깊다. ‘와룡대’는 너럭바위들이 꿈틀거리는 용을 닮았고 ‘능운대’는 바위가 마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듯 우뚝하다.

화양구곡의 마지막 여정인 ‘파천(巴串)’으로 가는 길도 장관이었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한 절벽이다. 50m도 더 돼 보이는 낭떠러지를 바람이 갈랐다. ‘파천’은 희고 너른 바위가 펼쳐진 모양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켜켜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너럭바위 아래로 내려가니 계곡물이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괴산 문화관광해설사 오성인씨(65)는 “화양구곡은 충청도 특유의 느림 미학과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춥지 않아 일년 내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행한 미국인 수잔은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는데 역사책에 나온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다니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 사람이 빚은 예술

산막이 옛길산막이 옛길은 인공적으로 만든 명품 길이다. 2011년 데크로 길을 만든 첫해 예상 관광객은 50만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누적 관광객이 500만명이 될 정도로 ‘대박’이 났다.

산막이 길은 원래 풀이 무성하고 간신히 사람 하나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순전히 돌길이었다. 눈이라도 오면 미끄러워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험했다고 한다. 잘 꾸며진 길을 걷는 대신 배를 타기로 했다. 멀리서 산막이 옛길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병아리처럼 노란 유람선에 올랐다. 먼발치서 보는 길은 영월 동강의 올레길이나 경주의 주상절리 산책길을 닮았다. 아슬아슬하게 골짜기를 밧줄로 연결한 소나무 출렁다리를 지나자 세상 근심걱정을 모두 잊는다는 ‘망세루’가 보였다.

사람들이 우리 일행이 탄 배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호수 위에 난간을 설치하고 바닥에 강화유리를 깐 전망대 끝에 서서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새파란 호수에 샛노란 배가 떠 있으니 그들에게는 한폭 산수화였겠다.

어느덧 산막이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끝에 잘 지어진 고옥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였던 소재 노수신(1515~1590)이 유배살이를 할 때 머물던 곳, 수월정이라고 했다.

2011년 인공적으로 만든 산막이 옛길. 지난해까지 500만명이 다녀갔다.

배에서 바라보는 첩첩산중의 바위들은 볼수록 기기묘묘했다. 이제 끝났겠지 싶으면 기암절벽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괴산을 ‘괴상하게’ 멋진 곳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성싶다. 풍광에 취한 수잔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글과 함께 올렸다. 두바이, 미국, 유럽의 친구들로부터 실시간으로 댓글이 올라왔다. “그곳이 어디냐” “너무 멋지다” “가고 싶다”는 감탄사들이 쏟아졌다.

유람선 선장 심혁중씨(57)가 충청도 양반길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뱃길을 안내했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자연, 늪지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각시바위와 신랑바위 앞에 섰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끼 낀 청록의 바위들이 장관이었다. 한국관광공사 김응상 세종충북지사장(56)은 “요즘 충북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내륙지방을 찾는 여행객들이 크게 늘었다”며 “등산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산막이 옛길을 둘러싼 천장봉과 등잔봉을 꼭 한 번 올라보라”고 권했다.

<글 정유미·사진 서성일 기자 youm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