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연금 힘 돼준 '꼬마 동지'..마지막 인사

문준모 기자 2015. 11. 2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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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이 됐을 때, 큰 힘이 돼 준 이웃 소녀가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소녀를 '꼬마 동지'라고 불렀고, 소녀도 김 전 대통령을 '대장 동지'라며 따랐습니다. 이젠 40대 중반이 된 이 '꼬마 동지'가 빈소를 찾았습니다.

문준모 기자가 직접 만났습니다.

<기자>

오늘(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중년 여성이 말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규희 씨.

이 씨와 김 전 대통령의 인연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를 상도동 자택에 연금합니다.

[김영삼 前 대통령/SBS 한국현대사 증언 : 외부하고 전부 단절이 되어버렸죠. 일반 국민은 내가 연금이 된 줄을 몰랐어요. 일절 신문에 그런 게 안 나니까.]

큰 아들 은철 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아버지한테 아침에 '잘 주무셨습니까' 인사하는 그 전화 이외에는 일절 전화를 못 했어요. 편지 같은 것도 안되죠.]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바로 열 살 꼬마 동지 규희 씨였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자주 출입을, 하루에도 몇 번 옵니다. 아저씨 이러고 오거든요. 오는데 그편에 어머니가 편지도 보냅니다. 그때 그게 굉장히 위안이 됐죠. 꼬마 동지라 그렇게 부르죠, 내가.]

늘 집안을 드나드는 어린아이다 보니 김 전 대통령이 측근이나 야권 인사에게 보내는 문건을 의심받지 않고 몰래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규희/'꼬마 동지' : 쟁반을 가져가니까 쟁반 밑에 숨겨서 (가져갔어요.) 서류봉투 이만한 거, 근데 꽤 두꺼웠어요.]

꼬마 동지 대장 동지라는 아이들 장난 같은 별명은 사실은 엄혹한 시절 민주화 투쟁의 명맥을 이어준 비밀 연대의 암호나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김 前 대통령 자택에) 정치하시는 분들이 다 오시면 다 동지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제가 제일 그땐 어렸으니까 제가 꼬마 동지, 아저씨가 제일 대장이었으니까 대장 동지.]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으니, 이제라도 편히 쉬셨으면 한다는 게 꼬마 동지, 규희 씨의 마지막 바람입니다.

[편해지셨으면…. 아프셨으니까 이제 안아프셨으면]

(영상취재 : 김세경, 영상편집 : 신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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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모 기자moonj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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