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깨졌다, 이제 '강정호 환상'이 깨져야 산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2015. 11. 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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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섭아, 내가 대신 이룰게' 올 시즌 뒤 구단 동의 하에 해외 진출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 도전을 시사한 롯데 황재균(왼쪽)과 손아섭. 일단 손아섭이 포스팅에 실패한 가운데 황재균이 바통을 이어받는다.(자료사진=황진환, 박종민 기자)
태평양을 건널 푸른 꿈에 부풀었던 손아섭(27 · 롯데)의 기대는 일단 좌절됐다. 그러나 팀 동료인 황재균(28)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여기에 한국 프로야구 간판 좌타자 김현수(27 · 두산)까지 미국행을 노린다.

KBO 리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MLB) 도전이 줄을 잇고 있다. 2012시즌 뒤 한화 에이스 류현진(28 · LA 다저스)로부터 시작된 MLB 러시는 2014시즌 뒤 강정호(28 · 피츠버그)를 기점으로 폭발하고 있다.

투수뿐 아니라 야수들도 미국 무대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면서다. 이미 박병호(29 · 넥센)가 강정호를 뛰어넘는 이적료를 기록하며 기대감을 더 부풀렸다. 박병호는 1285만 달러(약 147억 원)에 독점 협상권을 따낸 미네소타와 계약 교섭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장밋빛으로 물들었던 KBO 선수들의 미국행은 암초를 만났다. 박병호에 이어 포스팅에 나섰던 손아섭이 '응찰 구단 전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완전 FA(자유계약선수)인 김현수는 차치하고, 황재균의 포스팅 역시 성패를 장담하기 어렵다.

▲류현진-강정호 성공이 이끈 'MLB 러시'

야구계에서는 손아섭의 포스팅 결과가 실망스럽지만 오히려 잘 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차라리 이번 기회가 확실하게 MLB 도전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 KBO 리그 스타 유출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KBO 리그 출신 선수들의 MLB 도전은 꿈 같은 얘기로만 보였다. '원조 코리안 메이저리거' 박찬호(은퇴)가 선구자로 열었던 미국행의 길은 직접 진출이었다. 대학이나 고교에서 KBO 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MLB 구단과 계약했다.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이상 KIA)비롯해 김선우(은퇴) 등 1세대 빅리거들이다. 추신수(33 · 텍사스)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탄 성공 케이스였다.

KBO 선수들의 MLB 도전은 험난했다. 진필중(은퇴), 임창용(삼성), 이상훈(은퇴)을 비롯해 이승엽(삼성)도 전성기 때 미국 무대를 두드렸지만 실망스러운 몸값에 꿈을 접었다. 그나마 이상훈과 구대성(시드니) 등은 일본에서 검증을 받은 뒤 진출한 경우였다. 그만큼 KBO에 대한 MLB 구단들의 평가는 높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며 KBO 리그 선수들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LA 다저스 류현진(오른쪽)과 피츠버그 강정호.(자료사진=노컷뉴스, 피츠버그)
하지만 류현진이 단숨에 그런 인식을 바꿔놓았다. 2012시즌 뒤 2573만7737 달러 33 센트(약 280억 원)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2013년 MLB 데뷔 시즌 14승을 올리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도 14승을 거두며 MLB 수준급 선발로 자리매김했다.

류현진의 성공은 KBO 리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MLB 구단들은 더 많은 스카우트를 파견해 선수들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2014시즌 뒤 피츠버그에 입단한 강정호도 류현진의 혜택을 적잖게 입은 경우였다. 물론 개인 기량과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지만 KBO 리그에서 류현진에게 강했던 강정호는 MLB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류현진 이어 강정호 환상도 깨지나

하지만 류현진이 심어줬던 환상은 얼마 가지 못했다. '류현진이 되는데 나도 되겠지'라는 희망은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KBO 리그 정상급 투수들의 경우다. 김광현(SK)과 양현종(KIA) 등 88년생 동갑내기들이다.

이들은 2014시즌 뒤 강정호와 함께 의욕적으로 MLB에 도전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김광현은 포스팅 결과 200만 달러(약 22억 원)의 다소 실망스러운 이적료가 나왔고, 이후 샌디에이고와 협상했지만 결렬됐다. 양현종은 김광현에 미치지 못하는 이적료를 KIA가 수용하지 못해 협상도 하지 못했다.

'MVP급 기량이 꾸준하다면' 지난 시즌 뒤 미국 진출을 노렸던 SK 김광현(오른쪽)과 KIA 양현종 등 국내 최고 좌완 듀오는 아쉽게 메이저리그 꿈이 일단 무산됐다. MVP급 기량을 갖췄으나 매년, 혹은 시즌 내내 견고함을 보이진 못한 게 원인으로 보인다.(자료사진=SK, KIA)
이런 가운데 이번에는 강정호가 심어준 환상이 깨진 모양새다. 지난해 KBO 리그 투수들이 류현진의 환상에서 벗어났다면 올해 KBO 리그 야수들이 현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생긴 것이다.

강정호는 올해 불의의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126경기 출전해 타율 2할8푼7리 15홈런 58타점으로 활약했다. 유격수와 3루수로 수비는 물론 피츠버그 중심 타선에서도 제몫을 해줬다.

때문에 KBO 리그 정상급 야수들은 '강정호가 통하면 나도 통하겠지'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시즌 중 박병호에 집중된 MLB 스카우트들의 관심도 희망을 키웠다. 이들이 김현수, 손아섭, 황재균 등을 보러왔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손아섭이 좌절을 맛보면서 새삼 MLB의 높은 벽이 현실로 다가왔다.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프리미어12 등 국제무대에서도 검증된 김현수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만 황재균의 경우는 상황이 손아섭과 비슷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주위 부추김보다 현실과 기량 성찰이 먼저

물론 KBO 리그 선수들의 도전을 폄하할 수는 없다. 위험을 무릅쓴 도전은 숭고하고, 새롭고 더 큰 무대에 뛰어 개인과 한국 야구의 우수성을 입증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선수들에게 평소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한다"면서 "그래야 동기 부여가 돼 선수의 기량과 리그가 발전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또 세계에서 통할 무기 없이 무턱댄 도전은 무모하다. 여기에 주위의 부추김에 성급하게 나섰다가 당한 좌절은 선수와 리그 전체의 자존심에 크나큰 생채기를 남긴다. 혼자서만 안달이 난다고 구애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상대도 반응을 해야 연애가 성사된다.

'국가대표 3, 4번 타자의 결과는?' 프리미어12에서 한국 대표팀의 3, 4번 타자로 맹활약한 김현수(오른쪽)와 이대호 역시 메이저리그 도전을 시사했다.(자료사진=박종민 기자)
결국 KBO 리그에서도 MVP, 혹은 그에 버금가는 기량을 현재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류현진은 물론 박병호는 미국 진출 당시 MVP급 활약을 펼쳤다. 강정호 역시 지난해 한국 유격수 최초로 40홈런-100타점(117개)을 올렸다. 다른 해였다면 MVP가 가능한 기록이다. 반면 앞서 김광현, 양현종을 비롯해 손아섭, 황재균 등도 수준급 활약을 펼쳤으나 이른바 리그를 씹어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송재우 MLB 전문 해설위원은 "KBO 관계자들에게 얘기하지만 선수가 나가겠다고 해서 다 미국에 진출하는 게 아니다"면서 "그러나 MLB 구단들은 투자한 만큼 가치가 있는지 결과가 나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물론 일본 출신 선수들을 MLB 구단들이 영입할 때는 즉시전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본다"면서 "빅리그에서 확실한 주전이 아니라면 25인 로스터에 남기 위한 멀티 포지션 능력이 중요한데 이런 준비가 있는지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에이전트들의 속삭임도 문제라는 의견이다. 선수의 미래와 가능성을 제대로 판단한 뒤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일단 잡고 보자는 식의 일처리다. 한 관계자는 "선수들의 꿈을 막을 수는 없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알려주는 조언이 필요하다"면서 "강정호도 되는데 왜 안 되겠느냐며 선수를 우선 확보하자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손아섭처럼 만약 도전이 좌절되면 선수의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할 수밖에 없다"면서 "물론 다음 시즌 더 잘할 수도 있겠지만 선수나 리그를 위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본 최고 야수들도 MLB에서 대부분 실패했다"면서 "과연 내가 저들보다 나은 게 있는지, 또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일단 류현진에 대한 환상은 깨졌다. 이제 강정호에 대한 환상이 확실하게 깨질 차례다. 이런 일련의 현실 자각이 냉철하게 이뤄져야 KBO 리그 선수들의 MLB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너무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게 선수들과 KBO 리그를 보호하고 상생하는 길이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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