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하고 불평등할까..사회학자가 분석한 이유

2015. 11. 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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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로이스의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출간

에드워드 로이스의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경제 규모가 전반적으로 커져가고 있음에도 빈곤층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생산과 소득 총량이 증가했으나 분배 기능 고장으로 계층 격차는 놀라울 만큼 벌어졌다.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면 그 과실이 빈곤층에도 돌아간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는 별무소용의 허구로 드러난 지 오래다.

하지만 가난은 주변에 잘 보이지 않는다. 가난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난을 무시하고 숨기고 억눌러왔기 때문이다. 가난의 민낯을 볼 수 없도록 갖가지 논리와 장치가 쉴새없이 작동한다. 빈곤층은 그 그물망에 갇히고 소외돼 고통스러워한다. 가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며 탈출방법은 과연 없는가.

미국의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는 저서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를 통해 감춰진 가난 현상의 민얼굴을 드러낸다. 저자는 롤린스대학에서 20여년 동안 사회학을 가르쳤고 지금은 이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그가 집중 분석한 나라는 물론 미국이다.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지 오래이나 사회적 빈곤현상만 놓고 보면 선진국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 책을 읽다 보면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이 미국의 그것을 반면교사처럼 상당 부분 빼닮은 한국의 실상이 겹쳐 떠오른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론이 빈번히 나오는 작금이어서 더 그런 듯하다.

미국에서 가난의 문제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고, 좋은 일자리를 구해 적절한 주거 환경에서 온전한 생활을 할 기회 또한 얻지 못하고 있다.

공식 통계에서 드러난 빈곤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2008년 통계를 적용할 경우 빈곤층은 4천만명가량으로 전체 인구의 13.2%를 차지했다. 이는 특정하위그룹으로 갈수록 더 커졌다. 어린이는 18.5%, 흑인은 24,7%, 흑인 어린이는 34.7%, 히스패닉은 23.2%, 히스패닉 어린이는 30.6%에 달한 것.

실질 빈곤율로 보면 공식 통계보다 더욱 심각하다. 미국인 대다수가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세전 소득이 빈곤선인 2만2천25달러로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믿고 있어서다. '공식' 빈곤층과 '실질' 빈곤층 사이에도 이처럼 괴리가 크다.

다른 나라와 견주면 미국사회가 어느 지경인지 한결 더 뚜렷해진다. 예컨대 2000년 무렵 선진 8개국의 소득 빈곤율을 비교했더니 17%인 미국의 빈곤율이 가장 가까운 라이벌인 영국(12.3%)과 캐나다(11.9%)를 압도하더라는 것. 유럽국가의 그것에 견주면 미국 빈곤층은 훨씬 더 가난하다.

지금의 빈곤층은 과거 수십 년 동안의 빈곤층보다 더 심한 가난에 시달린다.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 현상. 빈곤 격차가 그만큼 커졌을 뿐 아니라 가난에 한번 붙잡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여서다. 자수성가하거나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더는 보기 힘들어졌다. 부든, 가난이든 날로 더해가는 대물림 현상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부유층과 권력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놓곤 하는 낙수효과는 허구로 드러난 지 이미 오래. 1979년에서 1994년까지 경제 성장으로 창출된 부의 99%를 미국의 상위 5%가 사실상 독차지했다. 1979년부터 2003년 사이의 소득을 비교해도 하위 20% 계층의 평균 세후 소득은 불과 4% 증가한 반면, 상위 1% 가계의 평균 세후 소득은 129%나 급상승했다.

2006년의 경우 미국 대기업 최상위 최고경영자들의 평균 연봉은 약 1천100만 달러로 일반 직장인 평균 연봉의 364배나 됐다. 이는 1980년의 42배에 견주더라도 비교하기 무색할 만큼 대폭 증가한 것.

그렇다면 이 가난의 덫을 누가 씌웠을까? 가난한 당사자 개인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를 가난하게 만든 사회의 책임인가? 이에 대해선 개인 책임론과 사회 책임론이 맞서왔다.

개인 탓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가난이 주로 개인의 잘못된 선택과 행위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안 좋은 결정을 내리고 그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데다 불성실하기까지 해 가난이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얘기다.

반면에 사회 구조적 관점은 가난 그 자체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여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가난은 사회 구조와 권력의 분배가 왜곡돼 있어 생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연코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가난이 개인의 도덕적 해이, 나쁜 습관, 무능력에 기인한다는 순진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가난 문제를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봐야 그 원인과 해법이 제대로 나온다고 역설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는 '유전 이론'과 가난한 사람들은 성취동기가 떨어진다는 '문화 이론',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과 기술 수준이 뒤진다는 '인적자본론'은 허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자고 권유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에 집중하는 '개인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의 역학관계인 '구조주의'에 초점을 맞추자는 얘기. 개인의 결점이 아니라 사회제도의 결함으로 관심을 옮겨야 그 구조적 해법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내놓는 키워드는 '권력'이다. 즉 빈곤과 권력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원제 : 가난과 권력·Poverty and Power)에서 알 수 있듯이 권력이 불평등 구조를 만들고 악화시키며 이 때문에 빈부 격차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간다.

권력 행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환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 권력은 피고용자보다는 고용주, 노동자보다는 기업, 좌파보다는 우파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재분배됐으며 심화하는 빈곤과 불평등은 중립적인 시장의 힘이나 능력 차이에서 비롯되는 게 결코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의 빈곤이라는 것. 오늘날 빈곤층은 임금 인상,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거나 정치 지도자나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자원이나 힘이 없다. 저자가 빈곤을 단순히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보는 이유다.

요컨대 권력의 재분배가 이뤄져야 부의 재분배도 가능해진다고 저자는 힘주어 강조한다.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책무다. 그러지 않고서 과거처럼 '가난과의 전쟁'을 백날 선포해봐야 가난과 불평등은 도로아미타불의 고질병으로 남고 만다.

양극화 심화의 병든 사회에 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평등성 회복의 건강한 사회를 함께 일궈낼 것인가. 이는 저자의 질문이자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다.

배충효 옮김. 명태. 448쪽. 2만2천원.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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