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직원 한명 제대로 징계 못하는 국정원

송원형 기자 2015. 11. 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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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안보 수사 담당 5급 직원 A(44)씨는 2004년 전북 정읍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A씨는 인근에 살던 옛 여자친구 B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4년 뒤 2008년 B씨가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은 다시 연락을 주고 받았다.

A씨는 2008년 7월부터 일본 도쿄(東京)에서 신분을 위장해 직무연수를 했다. A씨는 그해 10월 B씨에게 “일본으로 놀러 오라”고 했고, B씨는 한 달 뒤 일본으로 갔다. A씨는 “일도 할 겸 산책을 하자”며 B씨와 함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동경지부 건물로 갔다. A씨는 반국가단체라며 사진을 찍었다. 한 여행사 건물에 가서는 북한 관계자들의 여행 절차를 대행하는 여행사라며 사진을 찍었고, 북한을 위해 밀수하는 무역회사가 있었던 곳이라며 여행사 건너편 공사 현장도 촬영했다. 숙소에 간 A씨는 B씨가 보는 앞에서 컴퓨터로 특정 정보를 지도에 입력하고 CD에 저장하는 작업도 했다.

B씨는 한 달 가까이 A씨와 함께 지내다가 입국했다. 그런데 A씨는 2009년 1월 B씨 집을 찾아가 “일본에 가기 전 1년 넘게 동거한 여자에게 3000만원을 빌려줬는데, 그 여자가 최근 돌아왔다”며 헤어지자고 통보했다. 실제로 A씨는 2005년 3월 술집을 운영하는 C씨에게 2500만원을 빌려줬었고, 두 사람은 같이 잠을 자기도 했다.

B씨는 2009년 3월 국정원 홈페이지에 “A씨가 국정원 수사요원 지위를 이용해 결혼할 것처럼 속여 성추행했고, A씨와 함께 정보수집 활동 중인 곳을 함께 다니며 사진촬영, 지도 검색 입력 등 정보활동 설명을 했다”는 글을 올렸다. A씨는 자신을 무고(誣告)하고 문자메시지로 비리를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며 B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고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협박 혐의는 벌금 7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국정원은 2009년 5월 A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품위 유지 위반 등으로 ‘강등’을 의결했다. 직무연수 중 B씨를 일본으로 초청해 24일간 동거하면서 일본 내 북한 대남 공작 조직 활동 실태 등 직무상 비밀을 누설했고, B씨에게 내연녀가 있다며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해 국정원 홈페이지에 혼인빙자 간음으로 처벌해 달라는 민원이 제기됐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국정원은 징계가 가볍다고 판단해, 위원회에 재심사를 요구했다. 위원회는 해임을 의결했고, 국정원은 2009년 6월 A씨를 해임했다.

A씨는 “해임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인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관련법에 따르면 징계위원회 결정 내용에 대한 재심사는 상급기관 징계위원회에 요청해야 하는데, 국정원의 상급기관인 대통령에게는 징계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재심사 요청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대법원 확정 판결(2012년 4월) 이후 A씨를 복직시키면서, 한 달 뒤 다시 징계위원회에 A씨 징계를 요구했다. 위원회는 해임을 의결했고, 국정원은 A씨에게 두 번째 해임 처분을 내렸다. A씨는 또 소송을 냈고, 2014년 1월 서울행정법원은 “징계위원회가 최초 결정한 ‘강등’이 여전히 유효하며, 관련법에 따르면 위원회가 최초 결정한 강등 처분보다 무거운 징계를 할 수 없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국정원은 작년 4월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고, A씨는 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국현)는 24일 “징계위원회에서 진행된 증인 심문 과정에서 A씨가 배제돼 절차적 하자가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부적절한 처신으로 공무원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으며, 국정원직원법상 비밀 엄수 의무도 위반했다”며 “징계 절차에 하자가 있는데다, A씨가 누설한 정보가 보호가치가 큰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당시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점 등을 볼 때 국정원의 징계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이 사건으로 6년간 3번의 소청심사와 5번의 재판을 하고 있다. 국정원의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어 징계가 취소됐다가 다시 징계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A씨가 해임·복직을 반복하면서 사실상 일을 못해 상당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처음부터 징계를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정원이 6년간 직원 한 명 제대로 징계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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