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 부는 키덜트 바람..아동용? No 지갑 여는 어른아이들

류지민 2015. 11. 23. 09: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키덜트 도서가 성인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왼쪽부터 종이접기책, 캐릭터북, 컬러링북, 동화책, 아트북.
지난 7월 한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 ‘종이접기 아저씨’로 유명한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출연해 화제가 됐다. 김영만 원장은 1982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했던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무려 20년 동안이나 종이접기를 알려줬던 주인공.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은 ‘너무 반갑고 가슴이 먹먹했다’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게 해줘서 고마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등과 같은 후기를 앞다퉈 남기며 종이접기 아저씨의 등장에 열광했다. 대부분이 당시에 유년 시절을 보낸 30~40대 시청자들이었다.

방송 이후 서점가에는 때아닌 종이접기 책 열풍이 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젖은 30~40대가 서점으로 달려간 것. 종이접기 아저씨가 출연한 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지만, 종이접기책 시리즈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방송 이후 종이접기 관련 도서의 판매량은 방송 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급증했다.

2015 알라딘 상반기 베스트셀러 TOP 10에 오른 10권의 책 중 아동도서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책은 8위 ‘고양이 낸시’가 유일했다. 엘렌 심 작가가 트위터에 조금씩 올리던 만화를 기반으로 나온 책. 쥐들이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의 어느 날 밤, 집 앞에 버려진 아기 고양이 낸시를 발견한 생쥐 더거 씨는 고민 끝에 낸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생쥐 마을에 살게 된 귀여운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가 만화 같은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고양이 낸시’. 아이들이나 보는 것으로 여겨지는 아동만화 카테고리에 속한 이 책을 가장 많이 구매한 층은 재미있게도 20대(58.9%) 여성이었다.

아이의 감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어른, 이른바 어른아이를 위한 책인 ‘키덜트 도서’ 인기가 뜨겁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바쁜 일상과 현실 때문에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누구나 내면에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최근 종이접기책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키덜드 도서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키덜트 도서로 분류되는 분야는 다양하다.

우선 전통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북을 들 수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올해 가장 눈길을 끈 캐릭터북은 올해로 탄생 70주년을 맞이한 핀란드 국민 캐릭터 ‘무민’이 주인공인 ‘무민 그림동화’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무민과 그의 가족, 친구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자란 어린이들이 이제 성인이 돼 다시 ‘무민 그림동화’를 찾았다”는 게 출판업계 분석이다.

최근에는 어른들의 ‘무민앓이’ 현상을 포착한 제조업체와 유통업계도 ‘무민’ 열풍 대열에 숟가락을 얹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보디케어 브랜드 해피바스는 최근 ‘해피바스×무민 콜라보레이션 한정판’ 6종을 출시했다. 소셜커머스 위메프는 무민 캐릭터를 활용한 생활용품을 내놨다. 이 외에도 10여개 업체가 무민을 앞세운 다양한 제품과 이벤트를 선보였다.

1902년 초판 출간 후 전 세계 30개 언어로 출간돼 1억5000만부 이상 팔려나간 피터 래빗 시리즈도 비슷한 경우다.

지난해부터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색칠놀이’ 열풍을 불러 일으킨 컬러링북도 키덜트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컬러링 관련 도서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교한 그림을 따라 원하는 색을 칠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컬러링북을 찾는 이유다.

컬러링북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소재 또한 다양해졌다. 대부분의 성인 독자들이 셀프 힐링을 위해 컬러링북을 찾는 만큼 컬러링북 소재도 거기에 초점을 맞춰 변해가고 있다. 나무와 꽃, 정원 등을 소재로 한 컬러링북이 전체의 76%로 가장 많았고, 그 밖에 도시, 패션, 음식, 태교 등을 소재로 한 컬러링북도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마음 치유나 스트레스 해소 등 유사한 목적으로 스크래치북이나 캘리그래피 관련 도서를 찾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컬러링북이나 캘리그래피 도서를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면 아트북과 피규어북의 타깃 고객층은 남성 독자다. 블리자드 아트북, 던전앤파이터 아트북 등 게임을 주제로 한 아트북은 다양한 콘셉트의 일러스트와 세계관 설명으로 구성된다. 마블코믹스나 트랜스포머 피규어북 등도 남성 독자들이 열광하는 아이템이다.

아예 ‘성인을 위한 동화책’을 표방한 카테고리도 나왔다. 권기원 영풍문고 종로본점 문학담당 주임은 “요즘에는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춘 삽화를 넣어 아예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나오는 동화책이 상당수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은 아동 코너가 아니라 문학 코너에 배치하거나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섹션을 따로 운영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어린이가 아니라 젊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삼고 마케팅 전략을 짠다”고 설명했다.

▶캐릭터북·컬러링북·동화책 등 인기

가격에 구애받지 않는 열혈 독자 다수

침체된 출판업계 새로운 수익원 부상

키덜트 도서를 찾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가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키덜트 도서의 경우 고급스러운 제본에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출간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드 커버에 2만~3만원짜리 동화책도 있다. 그래도 팔린다는 얘기다. 마음에 드는 책의 경우 판본별로 책을 다 사 모으는 마니아층도 있다. 일례로 어린왕자의 경우 현재 국내에 출간된 판본이 100종이 넘는데, 이를 모두 모은 열혈 독자도 있을 정도다.

전혜진 영풍문고 종로본점 매니저는 “성인 독자의 경우 구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취미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소장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트렌드가 이러니 당연히 출판업계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을 터. 출판사들은 키덜트 독자를 위한 특별한 책을 잇달아 내놓는 중이다. 최근 올컬러판에 오리지널 일러스트로 재탄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합본한 스페셜 에디션 무삭제 완역판이 대표적이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컬러링북이나 스크래치북, 캘리그래피 도서 등 시선을 잡아 끄는 책을 전시하는 대형 서점도 늘고 있다. 인터넷서점도 빠지지 않는다. 인터파크도서는 얼마 전 ‘2015년 하반기, 어른이를 위한 책’ 기획전을 열고 관련 도서를 소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키덜트는 이제 하나의 문화 트렌드다. 출판업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키덜트 도서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른 만큼 앞으로 관련 콘텐츠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 |정지연 인터파크도서 마케팅지원실 과장

아날로그 감성 찾는 30~40대 여성이 트렌드 주도

Q키덜트 도서가 인기를 끄는 원인은.

A 최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도 키덜트를 위한 특별존이 설치될 정도로 키덜트를 위한 아이템이 눈에 띄게 확장됐다. 과거에는 프라모델이나 만화책, 장난감 등 마니아를 위한 아이템에 한정돼 있었지만 이제는 드론, 나노블록, 캐릭터 인형 등 보다 다양한 아이템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단순히 몇몇 사람들만 즐기는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가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키덜트 문화가 출판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Q키덜트 도서의 주요 독자층은 누구인가.

A 30~40대 여성들이 주요 구매층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각박한 사회 생활을 하다가 어린이 동화책에서 전해주는 단순한 이야기에 찡해지는 순간이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에 익숙해진 일상에서 소중한 가치와 진리를 전해주는 책은 감동을 준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를 건드리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한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다.

Q어른이를 위한 책 기획전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어땠나.

A 최근 인기가 높은 캐릭터 도서를 비롯해 컬러링북, 스크래치북, 종이접기책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자는 목적에서 기획전을 진행하게 됐다. 그동안 기억에서 잊고 지냈던 책을 다시 찾게 돼서 너무 좋았다는 평가가 많았고,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참가 열기도 뜨거웠다. 기획전을 진행하는 동안 관련 도서 구매가 전월 대비 10% 이상 증가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Q앞으로 키덜트 도서의 전망은.

A당분간 키덜트 도서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인기도서와 함께 빨간머리앤, 작은 아씨들, 어린왕자, 피노키오와 같은 고전동화가 꾸준한 판매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판타지소설의 인기도 여전하다. 이 밖에 긁어서 그림을 완성하는 스크래치북, 드로잉노트, 종이접기 등 다양한 유형의 키덜트 도서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33호 (2015.11.18~11.2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