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신승훈을 보고 싶다

2015. 11. 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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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라디오 웨이브> 등 실력 갖춘 실험들이 외면받자 너무나 ‘과거’로 돌아간 11집 앨범

“내 앨범은 명반이라고 할 수 없다.” 얼마 전 가진 11집 <아이 엠...앤드 아이 엠>(I Am...& I Am)의 제작발표회 겸 음악감상회에서 신승훈은 이런 말을 했다. 명반은 한 장르로 쭉 이어지는 작품을 말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앨범들은 명반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반론을 하자면, 명반의 근거를 따질 때 물론 앨범으로서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또 그만큼 시대적 상황이나 의미를 중요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 발라드의 한 획을 그은 그의 2집 앨범은 충분히 명반 대접을 받을 만하다. 그의 앨범이 이른바 평단의 주목을 그리 받지 못했던 건 이후 그의 음악이 늘 비슷한 음악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2집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해서 나머지 앨범들이 2집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2008년 말, 그해의 대중음악을 결산하는 한 대담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주류 음악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가수의 앨범을 묻는 질문에 난 신승훈의 <라디오 웨이브>(Radio Wave)를 꼽았다. 그때 했던 말을 옮기면 대략 이렇다. “그는 기본적으로 곡을 잘 쓰는데 스타일이 비슷하다보니 팬들 말고는 무관심해졌다. 이번에 스타일을 바꾸면서 자신이 곡을 잘 쓴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홍대 앞의 모던 록 밴드들보다 훨씬 낫다.”

<라디오 웨이브>는 신승훈이 모던 록의 어법을 받아들여 발표한 앨범이다. ‘곡을 잘 쓴다는 사실’과 ‘변화’가 만나면서 신승훈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앨범이 만들어졌다. <라디오 웨이브>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그는 3부작으로 <라디오 웨이브>에 모던 록을, <러브 어클락>(Love O’clock)에 어반 뮤직을, <그레이트 웨이브>(Great Wave)에 이런저런 다양한 시도들을 담았다. 그 시도들은 다 의미가 있었고 음악적 성과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 앨범들이 대중적 반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앨범을 수백만 장 팔고 차트 1위를 차지한 게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는 이 ‘대중’ 가수에게 상업적인 실패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이 엠...앤드 아이 엠> 음악감상회에서 “3장의 미니 앨범을 통해 내게도 맞지 않는 옷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유 있는 방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한 뒤 “이번 앨범은 대중이 신승훈에게 갖는 기대에 충실한 앨범”이라고 말한 건 그래서 더 아쉽다. 세 번의 시도는, 특히 <라디오 웨이브>와 <러브 어클락>은 그에게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 옷이었고, 세 장의 앨범이 실패한 건 안 맞는 옷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시장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진단이었다.

<아이 엠...앤드 아이 엠>은 신승훈의 말처럼 예전으로 돌아간 앨범이다. 과거의 발라드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이게 나예요>는 실망스러웠다. <아미고>(AMIGO)를 들으면 <엄마야>나 <로미오 & 줄리엣>이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로 예전의 영광을 찾기 위한 흔적이 여럿 보인다. 하지만 세 번의 연이은 실패 끝에 선택한 자기복제를 마냥 비판하기도 망설여진다. 게다가 이 선택마저도 대중의 반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앨범 안의 노래들은 차트에서 모습을 찾기 어렵고, 더 이상 그의 음악에 관한 뉴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진단이 틀렸음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이제 이 중견 가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경험으로 볼 때 더 안정적인 방식을 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더 <보이지 않는 사랑>과 비슷한 노래를 만들 수 있고, 더 <처음 그 느낌처럼>과 흡사한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익숙하고 뻔한 작업으로 의미 없는 경력만을 쌓기엔 <라디오 웨이브>에서 보여줬던 가능성이 너무나 아쉽다. 나는 지금도 7년 전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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