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김영란 전 대법관 "대법원, 삼성사건 본질적인 논의 했어야"

이범준 기자 2015. 11. 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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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대법관 재임 시절 선고한 판결로 헌법정신과 사회 변화를 설명한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 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을 펴냈다. 2004년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취임했으며, 재임 중에 소수자를 보호하는 의견을 많이 냈고, 퇴임 이후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간경향>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이 대법원 판결 비평서를 발간한 것에 주목해 저자인 김 전 대법관을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김 전 대법관은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대법관 시절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놨다. 김 대법관 인터뷰는 11월 14일과 11월 16일 두 차례 했다. 기사는 이 책에 대한 비평과 인터뷰를 뒤섞어 구성했다.

11월 16일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모두 10개의 전원합의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2명과 대법원장까지 13명이 참여한다. 사실 대법원 사건의 99.9%는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소부가 끝낸다. 실례로 2014년에 전합은 14건으로, 전체 사건의 0.03%에 불과했다. 김 전 대법관은 임기 6년 동안 전합 86건을 선고했다. 34건이 대법관 전원일치다. 52건에서 의견이 갈렸는데 다수의견이 34건, 소수의견이 18건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주제는 삼성 사건이다. 김 대법관은 인터뷰에서 “삼성 사건 부분이 가장 볼 만할 것”이라고 했다. 전원합의체 사건은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데, 삼성 사건 재판장은 김 전 대법관이었다.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대법관 퇴임 이후 변호사 시절 삼성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선임이던 김영란 대법관이 재판장이 됐다. 대검찰청 중수부장 출신으로 검사 시절 수사에 관여한 안대희 대법관도 재판에서 빠졌다.

“2009년 4월 28일에 선고일은 정했어요. 5월 29일로. 그리고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밖에 있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보니 이용훈 대법원장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이 와 있었어요. 늦은 밤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KBS가 9시 뉴스에서 대법관 9명 무죄, 2명 유죄로 결론났다고 보도를 했다는 거예요. 재판에서 빠진 대법원장은 내용을 모르니까 저를 찾으신 거죠.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고. 법원에 강력 대응을 요구했어요.”

대법원의 결론은 삼성SDS 사건은 유죄, 에버랜드 사건은 무죄였다. 삼성SDS는 제3자배정, 에버랜드는 주주배정 방식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처음부터 제3자인 이재용 등에게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싸게 넘긴 SDS 사건은 회사에 손해를 끼쳤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중앙일보 등 주주에게 싸게 살 기회를 줬지만 사지 않아 그 값에 이재용 등에게 줬으므로 회사에 손해가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양승태 대법관은 “둘 다 무죄다. 어쨌든 회사에 돈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홀로 주장했다.

“이 사건은 주식회사의 본질에 대해 더 논의가 됐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결론이 어떻든 간에 판결의 구성이 지금처럼 돼 있지는 않을 겁니다.” 책에서는 주식회사의 기원과 현실에 대해 밝혀 놓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17세기에 시작된 주식회사는 자금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말하자면 경영자의 것이었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으로 수익률이 하락하고 미국 대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졌다. 이후로 기업의 목적이 주주가치의 극대화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식이 일부에 집중되어 있거나 순환형 지배구조여서 주주가 경영자를 감독한다는 현재 미국식의 주주 주권론은 무의미합니다.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경쟁관계가 아니잖아요. 기업의 감시를 주주의 민사소송이 아닌 검찰의 배임죄 처벌에 맡기는 것도 비슷한 이유 아닐까요. 대법원이 1인주주 회사를 주주와 회사로 분리해 처벌해온 것도 같은 이유라고 봐요. 글로벌 기업이라는 곳에서조차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고쳐야 하는 것인지 (대법원이) 숙고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김 전 대법관은 이후 이건희 회장이 단독 사면된 것에 대해 “언론과 학계의 논쟁과 법원의 선고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어차피 회사에 돈이 불었는데 무슨 죄가 있느냐’는 양승태 당시 대법관의 의견에 대해, 김 전 대법관은 “(1인주주 회사를 배임죄로 처벌해온 판례의 바탕인) 회사를 지배하는 이사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고자 한 법리가 지배주주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리로 원용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 책의 모든 주제에서 사회에 논란이 되는 문제가 어떻게 법정에서 다뤄지게 됐는지 연원을 설명한다. 존엄사에서는 죽음이란 무엇인지부터 따진다. 과거에는 호흡, 맥박, 뇌기능이 동시에 정지되다가 의학의 발전에 따라 죽음에 이르는 단계가 길어지고 분절됐다. 그리고 근대 이후 개인의 생명에 국가가 어떻게 관여해 왔는지 설명하고 의문을 제시한다. 자살할 사람에게 독약을 처방하면 자살방조죄로 처벌되는 점을 들어 “우리나라는 간접적이지만 자살을 규제하고 있다. (중략) 자신의 생명을 저버릴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 셈”이라고 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의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창비 제공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당연히도 김 전 대법관 자신의 입장에서 판결을 해설하지만, 그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철학, 역사, 과학을 동원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책을 내면서 김 대법관의 엄청난 독서량에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집필과정에서 과거에 읽은 책과 자료를 전부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논쟁이 없어졌어요. 보수다 진보다 나눠 버리고는 얘기를 듣지 않아요. 논쟁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야 사회도 화학적으로 결합하는데, 의견들이 물리적으로 나열만 돼 있어요. 내 입장을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가 토론하기를 바라서 책을 썼어요.”

이런 이유로 김 전 대법관은 판결을 설명하면서도 다수의견이나 소수의견이라고만 적고 어느 대법관들이 속해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미주로 적어 놓긴 했는데 찾아보려면 불편할 거예요. 그냥 보지 않았으면 싶은데, 실은 아예 뺄까도 했어요.” 대법원을 담당해온 기자도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을 전부 알고 있으며, 판결문도 모두 읽었다. 대략 누가 의견에 가담했다고 짐작할 수 있고, 미주를 들춰 대법관들 이름을 확인하며 읽었다. 하지만 후반이 지나면서 이를 포기했고, 오히려 동의하지 않던 의견들도 곱씹어보게 됐다. 김 대법관은 “그렇다면 내가 책을 잘 쓴 것”이라며 웃었다.

저자는 10가지 주제로 우리 사회의 헌법정신이 무엇인지 도저하게 묻는다.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교육의 공공성, 성소수자의 기본권, 환경의 가치를 철학의 극단으로 밀고가 회의하게 만든다. “법원은 헌법에 맞는 법률해석이 어디까지인지 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요. 따라서 대법원이 헌법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서 김 전 대법관은 대법원과 헌재통합론에는 반대했다. “사회에는 전문가의 견제가 필요해요. 법률 전문가들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나뉘어 있는 게 좋습니다.” 내친 김에 상고법원 도입안에 관해서도 물었지만 “당연히 생각이 있지만 언론에 밝힐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설득이 가장 쉬운 대법관이 누구였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대법관들은 논리적으로 정합하다고 생각하면 설득이 되는 사람들이에요. 누군가 논리적·수학적으로 말하면 거기에 대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아요. 문제는 전합에 오는 사건들은 수학과 논리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선택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사회에는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고, 따라서 해석을 쉽게 바꾸면 안 되는 것도 맞지만, 공동체가 더 이상 수긍하지 않는다면 매우 곤란해요. 어려운 말로 법의 실효성이 없어지죠. 공동체의 생각을 잘 살펴야 합니다.” 판사들이 법논리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사법기관에 해결을 요구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판사들이 괴로운 게 그거예요(웃음). 사회가 문제를 해결해서 오면 좋지요. 하지만 입법이나 행정권력은 다수결로 하잖아요. 선출되는 권력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수를 대변해요. 다수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법원을 찾아오고, 이런 문제를 헌법정신에 따라 해결하는 게 사법의 역할입니다. 민법의 동성동본 금혼조항에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국회는 끝까지 손을 대지 않았어요. 헌재가 위헌으로 없앴어요.” 현재 대법원이 유죄를 고수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도 같은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최근에 대법원이 보수화되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특별히 구성이 나쁘다기보다는 사회 분위기와 관계 있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책의 제목을 두고는 여러 가지 고심을 했는데, 지인이 제안한 <1+12>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내세우는 것으로 오해된다는 김 대법관의 우려 등으로 지금 제목이 됐다. 현재 김 전 대법관은 내년 초 발간을 예정으로 <청소년 법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김 전 대법관은 책의 맺음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식물학자가 새로운 종을 찾기 위해 필요한 요령은 밀림에서 길을 잃는 것, 자신이 아는 지식과 방법을 넘어서는 것, 의문을 수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 책이 길을 찾는 이들에게 나침반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법에는 미지의 어둠이 있으며, 그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이 미지의 미래를 뚫고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면 다행(이다).”

렌퀴스트, 이즈미 도쿠지, 알비 삭스…세계의 판결 비평서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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