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최경환으로 통했다

박병률 기자 2015. 11. 21. 12: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총리 취임 후 한국경제 쥐락펴락… 박근혜 정부 4대부문 개혁에도 앞장

‘총리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회의원 최경환’

지난 6월 이완구 총리 사퇴로 공석이 되자 최 부총리가 가진 직함은 4개나 됐다. 최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농담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직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줄줄이 달린 직함이 말해주듯 지난해 7월 취임한 최 부총리는 막강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왕장관’으로 불렸던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을 능가했다. 강 전 장관은 10년 만에 돌아온 경제관료에 불과했지만, 최 부총리는 친박 실세에 현역 3선 의원으로 정치와 경제를 아울렀다. ‘만사최통’(모든 일은 최경환으로 통한다)이었다.

최 부총리는 지난 1년 3개월간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최 부총리에 경제를 일임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을 만든 최 부총리이니 이견이 있을 리도 없었다. 최 부총리 한마디에 금융정책과 부동산정책이 휙휙 바뀌었다. 금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책임부총리’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시작부터 화려했다. 지난해 6월 13일 최 부총리가 내정되자마자 기재부가 뿌린 프로필 참고자료는 막강 부총리의 탄생을 예고했다. 자료의 제목은 ‘관·학·언·정과 장관을 섭렵한 최고의 경제일꾼 최경환’이었다. 4장짜리 자료를 보자.

기재부가 뿌린 4장짜리 프로필 자료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재직 시에 아파트 투기자금을 회수하는 ‘아파트 채권입찰제’를 만들어 서민들의 내집 마련에 기여했고, 1991년 ‘남북 기본합의’ 중 경제분야 초안을 작성하여 현 남북한 경제교류 규칙을 마련하였으며, KT 등 공기업 민영화의 초석 마련, 국비 예산사업의 예비타당성 제도 도입을 통한 예산낭비 방지 등 우리나라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공직자로서 열과 성을 다해 업무를 수행한 바 있음…. 1995년에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파견근무하면서 동구권 경제개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일조했고, 1999년에는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등을 하면서 생생한 경제현장을 체험하고, 실물경제 분야의 산지식을 습득하면서 이를 글과 토론으로 설파했다. 정치에 입문한 뒤 19대 국회에서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 NLL 회의록 유출사건 등 여야 간 첨예한 대결정국에서도 뛰어난 조정력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관련 법안 등 역대 최고 많은 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등 정무적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 부총리는 취임 전 경제팀을 새로 꾸렸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돌연 조원동 전 수석에서 안종범 수석으로 바뀌었다. 안 수석은 최 부총리와 30년 가까운 절친으로, 대선 때 함께 경제정책을 만들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서승환 국토교통부,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임환수 국세청장 등은 자리를 지키거나 새롭게 기용됐다. 하나같이 연세대나 위스콘신대 동문이거나 대구·경북 출신, 혹은 대선캠프에서 손발을 맞췄던 인물들이었다.

최 부총리는 임명과 함께 정책을 밀어붙였다. 내정이 된 날 밤, 최 부총리는 집앞에 찾아온 기자들을 만나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으면 감기에 걸려 죽는다”는 말로 부동산 규제완화를 시사했다. 곧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완화됐다. 이어 한국은행이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최 부총리는 “척하면 척 아니냐”는 말로 이주열 한은 총재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최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는 연대 상대 동문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재정보강으로 46조원을 썼다. 앞선 현오석 부총리 때 마련했던 공약가계부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최 부총리는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계속 확장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했다. 최 부총리는 올해 확장재정으로 8조8000억원, 추경 및 재정보강으로 21조7000억원을 더 쏟아부었다. 최 부총리 취임 이후 1년 만에 쏟아부은 돈만 76조원이 넘는다.

문제는 떠난 후, 뒷감당은 누가 최 부총리가 취임 100일(14주) 동안 쏟아낸 정책은 13개나 됐다. 한 주에 한 개씩 정책을 쏟아낸 셈이다. 하지만 초점은 하나였다. 경기부양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주택거래량이 폭등하자 최 부총리는 “거봐라. 경기 불씨가 살아나는 것 아니냐”며 반겼다. 가계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금융당국은 걱정스레 지켜봤지만 누구도 고언을 하지 못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2013년 3분기 999조원이던 가계대출 규모는 지난 2분에는 1070조원까지 늘어났다. 3분기에는 1100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잇단 부양책으로 나라 곳간도 비어 갔다. 관리재정수지(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제외한 재정수지)는 2013년 17조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9월까지 벌써 46조원 적자다. 적자는 채권을 발행해 메웠다. 2013년 464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올 9월까지 545조5000억원으로 81조5000억원 늘어났다. “경제가 살면 채무도 줄어들 것”이라는 최 부총리의 소신에는 변화가 없었다.

최 부총리는 경제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공공·교육·금융·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에도 앞장섰다. 노동개혁이 지지부진하자 직접 나서 노사정위원회를 압박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해고요건 완화, 비정규직 기한 연장 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업급여 증액분을 깎겠다고 했다. 또 “오후 3시에 은행문 닫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며 금융권에 대한 채찍도 직접 들었다. 교육·금융·노동 등 주요 발표는 줄줄이 기획재정부에서 이뤄졌다.

‘만사최통’은 경제부처 인사에서 절정을 이뤘다. 인사적체로 꽉 막혀 있던 기재부 인사는 최 부총리 취임 이후 술술 풀려나갔다. 공공기관으로 나가지 못하면 타 부처로라도 영전했다. 지난해 7월 이석준 전 2차관은 미래창조부 차관으로 옮겼고, 1년 뒤인 올 10월에는 방문규 전 2차관이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옮겼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도 기재부 출신이다. 국토부 2차관에도 기재부 출신 인사의 기용설이 솔솔 나온다. 이 때문에 최 부총리는 타 부처에서는 ‘원성’을 받지만 기재부에서는 ‘닮고 싶은 상사’가 됐다.

문제는 최 부총리가 떠난 뒤다. 경제부처를 꽉 잡았던 최 부총리의 공백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최 부총리가 남겨놓고 떠난 부채의 뒤처리는 더 어렵다. 풀어놓은 돈은 좀비기업과 좀비가계를 양산했다. 일각에서는 최 부총리의 부동산 정책도 ‘분양천국, 입주지옥’에 직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는다. 집값이 치솟은 올해 대규모 분양 파티를 했지만, 막상 입주가 시작되는 2~3년 뒤에는 물량 과잉공급에 따라 악몽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 부총리가 있어 전 경제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것은 사실”이라며 “다음 부총리는 누가 되든 최 부총리만큼 그립(휘어잡는 힘)이 세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