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가 늘면 로드킬도 는다

김기범 기자 2015. 11.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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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나 지방도를 운전하다 보면 숱하게 눈에 밟히고 놀라는 장면이 있다. 차에 치여 쓰러져 있는 포유류와 새들의 사체들이다.

특히 이맘때 늦가을이면 더 자주 목격한다. 동면하러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던 뱀이나 파충류가 차에 밟혀 죽어 있거나, 어미를 떠나 독립하던 너구리·다람쥐·족제비 등이 사고를 당하는 로드킬(Road Kill)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로드킬은 주로 동물들의 서식처이자 이동 경로였던 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일어난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선 도로 밀도와 도로로 인한 국토의 파편화가 야생동물 서식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있는 분석이 이뤄진 바가 없다. 15일 새로 발표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진의 ‘도로 건설로 인한 도로망 발전과 생물서식처 파편화 분석’은 산업화·도시화를 거치면서 한국 국토가 어떻게 파편화되고, 도로 밀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도로 밀도는 1969년 이전에는 1㎢당 0.37㎞에 불과했다. 가로·세로 1㎞의 땅에 도로 길이가 370m에 불과했던 것이다. 1979년 1㎢당 도로 밀도는 0.46㎞, 1989년에는 0.57㎞ 정도였다. 도로 밀도가 가장 빠르게 높아진 것은 1990년대다. 1999년 1㎢당 도로 밀도는 0.87㎞로 1980년대보다 1.5배 이상 높아졌다.

2000~2005년에는 도로 밀도가 1㎢당 1.02㎞로 처음 1㎞를 넘어섰고, 2006~2010년에는 1.05㎞, 2011~2013년에는 1.06㎞까지 증가한 상태다.

스웨덴농업과학대학 연구진이 2001년 “도로 밀도가 높아질수록 야생동물 서식지가 파편화되고, 점점 더 많은 종이 도태된다”며 발표한 보고서 내용이다. 연구진은 도로 밀도가 1㎢당 0.6㎞를 넘으면 늑대·퓨마처럼 큰 고양이과 동물이 도태되고, 사슴·곰 같은 대형 포유류도 점차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도태된다고 밝혔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제공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전동준 박사는 “해외의 선행 연구를 기준으로 할 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산악지대를 주요 서식지로 삼는 반달가슴곰·여우·삵 등의 동물 이동에 제약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2005년 이후에는 도로 밀도가 과포화 상태가 되면서 이 동물들은 점차 도태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미 극히 적은 수가 남아 있었을 반달가슴곰과 여우는 물론이고, 현재 적은 수가 남아 있는 삵도 급증한 도로에 막혀 이동이 제약되고 수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설령 호랑이나 표범이 한두 마리 살아남아 있더라도 이동이 극히 어려운 상태이고, 생존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2001년 스웨덴 연구진이 발표한 ‘도로의 환경적 영향’ 보고서를 보면, 도로 밀도가 1㎢당 0.6㎞를 넘으면 퓨마·쿠커 등 산악에 서식하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과 늑대 등이 자연에서 도태된다. 큰사슴류(엘크·무스)와 회색곰 같은 대형 포유류도 점차 개체 수가 줄거나 도태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도로 밀도가 1㎢당 1㎞를 넘을 경우는 아예 야생의 대형 포유류가 안정적으로 서식할 수 없게 된다. 이 연구에 비춰보면 한국은 1990년대 초부터 호랑이·표범 등 대형 고양잇과 동물과 곰·사슴 등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고라니·삵·여우의 생존도 어려운 환경이 된 셈이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진이 분석한 도로 밀도의 지자체별 편차는 야생동물 생존에 있어 지역별 조건이 어떻게 다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로 밀도가 1㎢당 1㎞를 웃도는 서울(13.46㎞), 부산(3.93㎞), 대전(3.52㎞), 광주(3.24㎞), 대구(2.76㎞), 인천(2.40㎞), 울산(1.62㎞)은 애초에 대형 포유류가 서식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낮지만 경기(1.32㎞)와 경남(1.21㎞)도 1㎞를 넘겼다. 도로 밀도가 낮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산악과 미개발지가 많은 강원(0.56㎞)와 경북(0.65㎞)이다. 강원과 경북은 대형 포유류 가운데 체격이 작은 종, 이를테면 삵·담비·족제비 등이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실제 두 지역은 고속도로로 인해 단절된 국토의 파편화 상황을 분석한 지도에서도 가장 넓은 덩어리들을 이루고 있다. 그만큼 동물들이 비교적 넓은 지역을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집계한 지난해 야생동물 로드킬 수는 65종 1179개체이다. 너구리가 174개체로 가장 많고, 고라니 173개체, 다람쥐 158개체, 족제비 130개체, 청설모 65개체, 꿩 60개체, 유혈목이 54개체 등의 순서다. 이 숫자는 국립생물자원관과 지방환경청 직원들이 매년 지방도·국도 등의 244개 고정 조사 구간에서 월 1회 육안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도로공사가 매년 고속도로에서 집계하는 로드킬 개체 수는 약 2000개체여서, 국립생물자원관이 집계하는 연간 1000여개체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로드킬 수로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실제로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훨씬 더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동준 박사는 “도로 건설처럼 생태계를 단절시키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편화하는 사업을 실시할 때는 사전에 보다 면밀한 연구와 검토를 통해 생태계의 연결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반달가슴곰·여우 등 대형 포유류의 복원 계획을 수립할 때도 파편화된 생태계를 연결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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