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간 국외순방 떠난 박 대통령, 어디 가서 뭐하나

2015. 11. 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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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11월14~23일 열흘 동안 국외 순방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가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중심으로 말씀드릴게요.

11월15~16일 터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18~19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 그리고 21~22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등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13일(현지시각) 밤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 공격 직후 진행되는 첫 국제회의라 사뭇 긴장된 분위기가 예상됩니다.

사실 어느 한 모임도 아무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G20은 이름에서부터 참가국 수를 제한하고 있고, APEC 21개국도 2007년 이미 더이상 회원국을 늘리지 않는다는 ‘확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습니다. 또 아세안 10개국이 ‘10+1’ 형태의 회의를 위해 초대하는 나라는 전세계 몇 되지도 않습니다. 누구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모임의 구성원인 이상,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가는 게 맞습니다. 이번 테러 공격으로 큰 희생을 치른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참석을 취소했습니다.

다만 얼마나 실효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자신있게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대테러 대응’이라는 거대한 화두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겠습니다만, ‘다자 정상회담’ 참석자들이 저마다 자국의 최고지도자임을 감안하면 모두가 참석한 현장에서 자유 토론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사전에 미리 조율된 입장, 그나마 모든 참가국의 ‘최소공배수’여서 대단한 내용도 없어 보이는 문안을 놓고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는 정도의 자리가 될 공산이 크지요. ‘형식적’이라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만큼, 대통령의 다자 회담 참석은 정부가 연출해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외교 행위이기도 합니다. 여러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웃고 이야기하는 장면만으로도, 이미 대내외적 효과는 작지 않습니다. 게다가 각종 현안에 대한 각 정부 최고위 인사의 책임 있는 언어가 나오는 자리이니, ‘외교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벌써 어딘가 먼 곳에선 ‘저렇게 중요한 일을 하러 멀리 가시는구나’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합니다.

형식적 외교와 진검승부의 외교, 한동안 유행하던 말처럼 실체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박 대통령의 순방 일정과 각 회의의 특징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까요?

■ 의제

잇따른 정상회담 직전 터진 ‘파리 테러’ 사건 탓에, 아무래도 ‘테러 대응’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경제 이슈가 주요 의제인 APEC이나 역내 이슈가 우선인 아세안 관련 회의는 차치하더라도, G20에서조차 이번엔 테러 관련 의제가 15일 업무 만찬에서만 다뤄질 정도로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정식 세션에서 다뤄지는 세계 경제와 성장·투자 전략, 금융규제, 반부패 등에 견주면, ‘글로벌 도전과제 - 테러리즘, 난민위기’라는 주제는 비교적 무게감이 작아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비중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G20을 통해 테러 공격 배후인 이슬람국가(IS)를 향한 주요국 지도자들의 비판적 입장이 결집되면, 이들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강경해질 공산이 큽니다. 다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보복’을 천명한 프랑스, 지상군 파병에 소극적인 미국,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사실상 지원으로 IS 대응 전선을 혼란케 하는 러시아 등 주요국 간에도 입장 차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어떤 식의 조율을 거쳐 어떤 목소리를 낼지에 국제사회의 눈이 모아집니다.

APEC이나 아세안 관련 회의를 통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중국해 주변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자리가 이어지는 만큼, 미-중 구도 갈등으로 격화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가 다뤄질 가능성도 큽니다. 미국이 한국에 ‘분명한 입장을 취하라’고 종용하는 모양새가 다시 한 번 연출될지도 관심거리입니다.

정부는 명확히 얘기하지 않고 있지만, 동북아 주요 외교 현안인 북핵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도 다뤄질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몇 차례나 만날 기회가 있는 만큼, 두 사람이 군 위안부 문제 관련 논의를 할지에도 눈길이 모아집니다. 최근 국내에서 일부 논란이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향한 박 대통령의 외교전이 있을지도 주목됩니다.

더불어 애초 G20은 ‘포용적이고 견고한 성장’이란 주제를, APEC은 ‘포용적 성장 및 더 나은 세계 만들기’라는 주제를 다루려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역·성별·인종·연령 등 여러 면에서 생겨날 수 있는 취약계층까지 끌고 가는,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입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사전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과 함께 금년 G20 정상회의 주제인 포용적이고 견고한 성장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개진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아세안 관련 회의에서는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협력이 주요 주제가 됩니다. 정부 당국자는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모멘텀이 증대되는 시점에 개최되는 만큼 아태지역 내 우리의 전략적 동반 관계 확대를 도모하는 한편 아세안과 협력 심화로 미래성장동력에 초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 참가국

G20 정상회의 참가국을 보면, 주요 7개국(G7 -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브릭스 5개국(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이 있고, 한국,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7개국, 그리고 유럽연합(EU)이 들어가 있습니다. 선진국 클럽(G7)과 대규모 개발도상국 클럽(브릭스), 그리고 그 사이 중견국 7개국이 있는 거죠. 7개국 중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은 믹타(MIKTA -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중견국 모임을 꾸리기도 한 상태입니다.

G20에는 이밖에도 5~6개 초청국 정상과 7개 국제기구 대표도 옵니다. 이번 회의 초청국은 아세안 의장국 말레이시아와, 아프리카연합 의장국 짐바브웨,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동반자관계’(NEPAD) 의장국 세네갈, 그리고 주최국 터키가 초청한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해, 스페인, 싱가포르 등입니다. 7개 국제기구는 유엔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금융안정위원회(FSB)입니다. 결국 모두 30여명의 국가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이 참석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의인 셈이죠.

APEC 회의는 전통적으로 회원국에만 문을 열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페루, 필리핀, 러시아, 싱가포르, 대만, 타이, 미국, 베트남 등 21개국입니다. 명목상 국가 단위 정상회담이 아니라 경제 지도자 회의(APEC Economic Leaders’ Meeting)이기 때문에, 중국, 대만, 홍콩의 지도자가 모두 참석하고, 각 회의석상에 국기를 내걸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국기를 내걸면 중국과 대만이 모두 반발하겠죠.) 엄밀히 말하면 ‘회원국’이란 표현도 적절하진 않아 보입니다.

이번 APEC 회의에는 18일 오후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 칠레,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과의 비공식 대화라는 순서가 특별히 마련되면서, APEC 회원국이 아닌 콜롬비아 정상이 이례적으로 참석합니다. 다만, 이는 올해만 해당되는 제한적 조처일 뿐, 더이상 회원국을 받지 않기로 한 모라토리엄은 유지됩니다.

아세안과 관련해서는 아세안+3 정상회의와 한-아세안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세 가지 회의가 열립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이 한·중·일을 만나는 게 ‘아세안+3’이고, 한국만 따로 만나는 게 ‘한-아세안’입니다. EAS에선 아세안 회원국과 한·중·일, 그리고 미국,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가 함께 만납니다. 아세안 대화상대 10개국 가운데 7개국이 참여하는 회의체이지요.(남은 둘은 캐나다와 EU)

중국은 전통적으로 G20과 APEC은 국가주석이, 아세안 관련 회의에는 국무원 총리가 참석합니다. 곧, G20과 APEC엔 시진핑 주석이, 아세안 관련 회의에는 리커창 총리가 참석할 전망입니다. 지난 7일 양안 정상회담에 이어 APEC에서 시 주석이 마잉주 대만 총통을 만날 기회가 있다는 점도,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서 물꼬를 튼 중-일 정상 간 만남의 기회가 여러 차례 있다는 점도 관심거리입니다.

■ 형식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사전 브리핑에서 “이번 다자회의를 계기로 일부 참석국가들과 별도의 양자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 주석 및 리커창 총리, 아베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과 별도의 정상회담이 열릴지가 주목됩니다.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현재로선 예정된 게 없다”고 할 뿐, 분명히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다자회의 형식상 특정국가 정상과 따로 만나 속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화의 기회가 아주 닫혀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같은 기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외교가에서는 ‘풀 어사이드’(pull-aside), ‘조우’, 일본어 ‘타치바나시’(立ち話) 등의 표현을 종종 듣게 됩니다. 우선, ‘풀 어사이드’는 상대를 끌어냈다는 어감이 있는 만큼 사전 약속을 통한 ‘약식 회담’에 가깝습니다. 실무자 급에서는 눈빛이나 손짓으로 서로를 불러내기도 한다더군요. 단순한 만남을 뜻하는 단어인 ‘조우’(遭遇)는 우연히 만난 상황을 가리킵니다. 이달 초 한-일 정상회담 전까지 박 대통령이 여러 다자회의 석상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긴 했지만, 외교 당국은 ‘조우’일 뿐이라며 만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타치바나시’(서서 이야기하기)는 말 그대로 자리를 잡지 않아 격식을 차리지 않은 만남을 통칭하는데, ‘풀 어사이드’나 ‘조우’ 보다는 범주가 한층 넓어보입니다.

기본적으로 다자회의는 각국 정상들이 둘러앉아 서로의 입장을 교환하는 자리입니다. 이날 회담을 위해 수많은 사전 회의가 개최됩니다. 올해 G20은 셰르파(sherpa)라고 부르는 정상대리인들의 회의를 연 4차례 열면서 의제 협의와 선언문 작성, 행사 준비 등을 진행했습니다.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도 마찬가지로 연 4차례 개최했습니다. APEC이나 아세안은 이보다 세분화시킨 장관회의를 연중 개최합니다. 올해 APEC은 지난 3월부터 정보통신·통상·구조개혁·재무·여성·중소기업·교통·에너지·산림 등 분야 장관회의를 각각 열었습니다.

정상회의 풍경은 G20, APEC 같은 다자회의가 아니더라도 외부에 공개되는 부분이 좀처럼 많지 않습니다. 안에서 정상들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는 정말 아는 사람만 아는 모습인 거죠.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생전 자서전에서, G7 회의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이 의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비공개 회의가 시작되면 차례로 졸기 시작했다고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정상회의 중에서도 특히 가장 폐쇄적인 회의는, 아예 이름부터 ‘리트리트’(retreat·피정)라고 부르고 있는 APEC 정상회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정상들에게 가톨릭식 ‘피정’같은 기회라도 주는 양, APEC 정상회의는 정상들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물론 통역은 대동하겠지만, 나머지 수행원들은 별도의 방에서 회의 내용을 듣기만 하며 대기해야 합니다. 이번 필리핀 APEC의 리트리트는 19일 오전, 오후에 두 차례 예정돼있습니다.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의 순방 일정을 살펴보자면, 15~16일은 터키 안탈리야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18~19일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그리고 21~22일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등에 참석합니다. <한겨레>에서는 청와대를 담당하는 최혜정 기자가 동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수행하는 정부 인사들도, 기자들도 모두 고된 일정일텐데, 부디 다들 아프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고로, 내년 G20 정상회의는 9월께 중국 항저우에서, APEC 정상회의는 11월께 페루 리마에서, 아세안 관련 회의는 11월께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개최됩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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