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조회수 2015. 11. 9. 11:37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두해 전, 날더러 일 년 내내 환갑 잔치를 한다고 핀잔을 주더니 차두리 지는 2015년 일 년 내내 은퇴 경기를 한다.

1월부터 시작한 은퇴, 마지막 경기, 이런 기사가 11월이 되어서야 끝이 나는 분위기니 축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쟤 아직도 은퇴 안 한 거야?"하고 궁금해할 것이 뻔하다.

본인도 좀 그렇기는 하다고 하는데 이즈음 되니 솔직히 몇 번째 꽃다발을 들고 나가는 나도 민망하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는 이러는 상황이 어색해서 꽃다발을 주면서 서로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일 년 내내 했던 은퇴 얘기가 이제는 정말로 끝났다.

지난 토요일 밤에는 FC서울 선수들, 친구들, 동생 친구들 까지 끌고 가서 진짜로 끝난 마지막 파티를 한 모양이다

. '세찌는 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는 문자 하나 보내 놓고 내가 EPL을 다 보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시원 섭섭할 것이다. 그 기분 이해한다.

요즈음 나는 두리 덕을 꽤 많이 본다. 행사장에 갈때면 "두리는 안 와요? 두리가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눈치 없는 사람들도 있고, 어린 꼬마들에게 '차두리 아빠'라고 해야 겨우 나를 반기고 좋아해 주는 것이 약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실이다.

뭐 그런 것만 빼면 두리가 아들이어서 괜찮은 일이 꽤 많다.

"형, 아버님 선물이에요!" 이러면서 구자철이가 가방으로 하나 가득 하리보[젤리]를 독일에서 가지고 왔다며, 두리가 무거운 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이 정도 되면 나에게는 자철이가 산타 할아버지다.

이 젤리는 수 십 년 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군것질이라서 가방이고 차 안이고 어디든 손 닿는 곳에 두고 먹는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감독님한테 하리보를 얻어 먹어야 진정한 제자라며, 나하고 미팅을 하고 나오면 자기들끼리 하리보를 주셨냐고 물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 거리다.

지난 월드컵을 앞두고 방송차 독일에 갔을 때 "이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만 주는 거야"하고는 자철이랑 주호한테도 하리보를 주었던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한 자철이가 동네 가게 하리보를 몽땅 쓸어 담아 온 것이다.

큰 가방으로 하나 가득 이어서 진짜로 무거웠다. 가게 하나를 털었으니 그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올 한 해는 자철이 덕분에 하리보 걱정 없이 보냈다. 잘 먹었다, 자철아!!!

흥민이는 "어머님이 원하시면 뭐든지 갖다 드리겠다"며 약을 들고 왔다. 아내는 오래전 폐수술을 해서 기관지가 건강하지 못한 탓에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사는데 흥민이가 들고 오는 이 약은 우리 집 비상약 제 1 호라고 할 수 있다.

아내는 핸드백에 늘 이 약을 넣고 다니다가 누가 콧물을 흘리거나 기침을 하면 바로 꺼내서 먹인다. "흥민이가 갖다 준거다"라며.

그러다 언젠가 흥민이가 이 약을 공항 라운지에 놓고 비행기를 탔다며 울상이었다. 겨울이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꼭 병원을 가야만 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는데, 평창동으로 이사를 온 후부터 공기가 좋은 탓인지 지난해 겨울에는 단 한 차례도 병원에 가지 않고 넘겼을 만큼 건강해졌다.

그러니 약의 중요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 약을 버리고 온 흥민이가 그리 많이 타박을 받지는 않았다. 하마터면 우리 집 '주워온 아들들'의 호적에서 지워질 뻔했다. 흥민이가 운이 좋았다. 하하하

지난 아시안 컵 때는 호주 시드니에서 아침을 먹으러 카페에 갔더니 '두리 아빠'라며 특별히 태극기가 그려진 라테를 내왔다. 알고 보니 주방에서 초콜릿을 만드는 마이스터가 한국 친구였고 두리팬이었다.

두리 덕에 아들들도 많이 생겼다. 지난 토요일에는 운동장 복도에서 주영이랑 조국이를 만났는데 이전 같지 않은 느낌으로 반갑다. 자기들도 '차범근 감독님'이 아니라 '두리 형네 아빠'라 생각되는지 더 반가워했다.

두리는 엄마한테 밥을 해달라며 혼자 지내는 선수들을 더러 집에 데리고 온다. 지난 주말에 4골을 넣은 주태도 우리 집에 와서 먹고 자고 놀다가 간 적이 있어서인지 이 녀석이 골을 넣으니 더 반가웠다.

주태가 골을 넣고는 두리를 보면서 손가락 다섯 개, 5번을 연신 해 보이는 게 아마도 밥 값을 때우려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골을 넣을 때마다 두리를 향해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던 주태]

나는 밥을 많이 먹는다. 두리가 숟가락을 놓았는데도 내가 밥을 더 먹을 때마다 두리가 놀란다. 그런데 유일하게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어서 내 입장을 살려줬던 건 지금 상해에 가있는 김주영이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어마어마하게 먹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집 메뉴 중 하나인 '묵은지 삼겹살 찜'을 먹었는데 얼마나 먹는지 두리 엄마가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다가 결국 밥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밥 먹고 나서 내가 두리한테 그랬다. "야, 주영이 자주 데리고 와라. 걔가 있으니까 내가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어서 좋더라!" 진심이었다. 하하하

FA 컵을 마치고 두리가 바쁘다. 며칠 전 홍대 앞 된장집에서 만난 MBC 서형욱 해설위원은 "제가 밥 사겠다고 했더니 '형, 대기해야 해!'하더라"며 어이없어했다. 지금 두리한테 밥을 사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단다. 하하하

FC서울 선수들도 FA컵을 우승하고 나니 실성한 녀석들처럼 좋아서 모이고 또 모이는 모양이다. 최용수 감독은 김원동 사장님, 최만희 선생님, 조병득 선생님한테 나눠 드리라며 감 5박스를 우리 집으로 보냈다. 감히 나한테 배달 심부름을 시킨다. 우승 감독님이신데 시키는 대로 해 드려야 한다. 두리네 선생님이시다!!

[대기실에서 최용수 감독과 함께 두리의 은퇴식을 지켜보는데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두리랑 FC서울 선수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25년 전 UEFA 컵 우승을 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집에 들어오면 몸이 근질거려서 괜히 아내랑 쏘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럴 땐 뿌리가 잘린 수초처럼 붕 떠 있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두리의 현실은 여전히 빡빡하다. FA컵을 우승하고 두리가 신나서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보너스를 많이 받는다며. 그러나 우승한 아들에게 엄마의 첫 마디는 "생활비 십만 원 잊지 말고 갖고 와"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엄마한테 욕을 먹는다. 두리야, 내 경험상 우승했다고 해서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지 질 않아! 하하하.

인터뷰 때마다 두리는 얘기한다. '이렇게 행복하게 은퇴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나 역시도 정말 고맙고 다행스럽다. 두리가 이혼을 한다고 했을 때도, 양쪽 팔뚝에 문신을 잔뜩 하고 나타났을 때도 두리를 아끼는 많은 분들은 그 허물을 애써 외면하고 참아주셨다. 그 많은 분들에게 아빠로서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하고 민망하다.

아내는 늘 얘기한다. "팬들이 정말 크게 봐주시는 거야. 너!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해. 보답하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해!" 나도 같은 심정이다.

두리를 너그럽게 봐주셔서 고맙다는 말, 이 말이 꼭 하고 싶어서 이렇게 비 오고 바람 부는 일요일 오후에 '따뜻한 축구'를 쓴다.

두리의 허물을 참고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3년 전 "죽을 만큼 힘들다"며 고통스러워하던 아들 두리를 일으켜 세워서 오늘처럼 웃게 해 준 최용수 감독에게 아버지 차범근은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고맙다. 용수야."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