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만리]황금빛 햇살 비추는 그 곳, 탐라의 가을이 탐나도다

여행전문 조용준기자 2015. 11. 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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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번 비자림로를 따라가다 만난 그 섬의 원시림-사려니 숲길
가도 가도 끝없는 삼나무 숲이다. 자연이 마술을 부리듯 안개를 뿌렸다가 비를 내리고 다시 햇살을 내려보내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답다. 가을날 비자림로의 낭만과 운치는 절정이 이른다.
사려니 숲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힐링숲으로 불린다. 만추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사려니 숲길을 걷고 있는 탐방객들
제주엔 숲이 참 많다. 하지만 사려니 숲길 만큼 사랑받는 곳도 드물것이다. 이리 저리 나무들이 어우러진 원시림의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그런 길이다
억새와 안개가 빚어내는 가을날의 비자림로 풍경
1112번 비자림로 인근에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의 오후 풍경
비자림로의 끝인 평대리를 지나면 월정리 카페거리가 가깝다. 바다를 보며 차 한 잔 마시는 운치가 그만이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제주의 다양한 풍경 중 인상적인 것은 원시림이 우거진 숲입니다. 제주엔 숲이 참 많습니다. 그 숲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숲은 엇비슷해 보여도 특징은 조금씩 다릅니다. 삼나무, 편백나무, 비자림 등이 잘 정비된 휴양림도 있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가 어지러이 얽힌 제주의 허파 곶자왈은 또 어떻습니까. 잘 정돈된 숲과 곶자왈이 한데 어우러진 곳도 여럿 있습니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을 찾아갑니다. 비자림로(1112도로)의 삼나무숲에서 시작해 한라산 중산간 동쪽자락의 거대한 원시림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숲입니다. 아득한 옛날 제주 들녘을 호령하던 테우리(말몰이꾼)들과 사냥꾼들이 이 숲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을 화전민들과 숯을 굽는 사람 그리고 표고버섯을 따는 사람들도 걸었습니다. 졸참나무, 서어나무 아래 한라산 맑은 물이 흐르고 노루가 뛰어다니는 그런 곳입니다. 사려니 숲길입니다. '사려니'는 제주말로 '신령한 곳'이라 불립니다. 이 길의 매력은 도시와 인간세계를 떠나 자연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평지 숲길'이기도 합니다. 평평한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짙어가는 가을빛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걷는 내내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드는 그런 숲길입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달리다 비자림로에 들어선다. 좌우로 쭉쭉 뻗은 삼나무들이 반긴다. 제주 삼나무 숲길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가진 곳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삼나무 숲이다.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하게 솟은 삼나무들이 호위하듯이 서 있는 길에 들어서면 누군들 감탄사를 토해놓지 않을 수 없다. 창문을 열자 삼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밀려들어 온다.

자연이 마술을 부리듯 안개를 뿌렸다가 비를 내리고 다시 햇살을 내려보내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답다. 해질녘이면 숲은 신비로운의 황금빛으로 변한다. 억새와 활엽수들이 알록달록 빛을 발하는 가을, 비자림로의 낭만과 운치는 절정에 이른다. 차를 한쪽에 세우고 길 옆으로 들어서면 울창한 숲의 향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일 수 있다. 삼나무의 건장함과 싱그러움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사려니 숲길은 이 비자림 삼나무 숲길에서 가깝다. 예전엔 대부분 그냥 지나쳤지만 물찻오름 등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산소의 질이 가장 좋다는 해발 500m에 위치한 사려니 숲길은 삼나무와 활엽수들이 어우러진 원시림의 숲이다. 제주도 말로 '사려니'는 '실안이' '솔안이'에서 나온 말로 '신령스러운'이라는 뜻이다.

사려니 숲길은 4개 코스로 나뉜다. 물찻오름에서 성판악휴게소로 내려가는 코스(9㎞)와 붉은오름을 돌아 내려가는 코스(10㎞), 그리고 사려니오름 방향으로 가다 월둔삼거리에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14㎞) 등이다. 여기에 서귀포 남원읍 한남쓰레기매립장 옆에서 출발해 삼나무 전시림, 사려니오름(513m) 등을 돌아 오는 6.5㎞ 순환코스가 더해진다.

이 중 비자림로 사려니 숲길 입구에서 붉은오름으로 이어지는 10㎞ 구간을 걸었다. 오르고 내리는 산지 숲길은 걷기라 해도 등산에 가깝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길은 어린이도 또 어르신도 산책 삼아 걸을 수 있을 만큼 평탄하다.

원래 사려니 숲길은 1112번 도로에서 물찻오름, 월둔삼거리 등을 거쳐 사려니오름에 이르는 15.5㎞ 구간을 일컫는다. 하지만 월둔삼거리에서 1.5㎞쯤 지난 곳에서 사려니오름으로 가는 길이 끊겼다. 보호지역이어서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되돌아오거나 붉은오름을 거쳐 내려와야 한다.

화산 송이가 뿌려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푹신한 흙길에 절로 신바람이 난다. 두 팔을 벌리고 깊게 심호흡을 하며 걷는다. 심호흡 몇 번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진다.

주위를 살펴봐도 온통 우거진 숲이다. 숲은 절정을 맞은 가을을 쏟아내고 있다. 졸참나무와 서어나무, 때죽나무, 삼나무, 편백나무가 울창하고 단풍나무들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비자림로 코스와 붉은오름, 사려니오름이 만나는 지점인 명상의 숲길 '월든'에 도착했다. 이곳은 자연림 코스와 인공림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명상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사려니 숲길 주변에는 물찻오름, 붉은오름, 사려니오름 등이 있다. 그중 물찻오름의 정상에는 숨겨놓은 듯 고요하고 잔잔한 산정호수가 있다. 옥 같고 유리 같은 호수가 조용히 사색에 젖어 있다.

이젠 곧 날머리려니 짐작하는데 눈앞으로 삼나무 숲이 맞는다. 올곧은 수직세상과 마주한 풍경은 장관이다. 제주 사람들은 삼나무를 쑥쑥 자란다는 뜻에서 '쑥대낭'이라 부른다. 널리 알려진 봉개동 숲터널의 수령 30~40년 된 삼나무보다 곱절은 오래된, 나이 80세 이상의 '쑥대낭'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탓일까. 하늘에 닿을 듯 곧게 뻗은 삼나무의 아름다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곳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곳 마냥 평안했다.

그 숲에서다. 삼나무가 드리운 숲, 청정하다 못해 알싸하게 느껴진 짙은 숲 향이 폐부 깊숙이 파고들던 그때. 숲의 정령처럼 불쑥 나타난 이름 모를 새의 노랫소리에 꽉 막혔던 내 오감은 고무풍선 터지듯 한순간 동시에 활짝 뚫렸다.

사려니 숲길을 걷는 이들에게 권해본다. 이 숲에서만큼은 말하기보다는 생각하기를, 생각하기보다는 느끼기를….

제주=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제주공항에서 서귀포 방면 1131번 도로를 타고 가다 한라생태숲을 지나 절물자연휴양림, 비자림로 방면 1112번 도로를 탄다. 사려니오름을 오르기 위한 코스는 인터넷으로 예약해야한다. 산림청(jejuforest.kfri.go.kr)이나 '제주시험림 탐방예약시스템'을 통해서 가능하다.

△볼거리=비자림로 주변엔 볼거리가 많다. 사려니 숲길과 함께 가을 제주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기생화산인 산굼부리다. 넘실대는 은빛 억새가 장관이다. 절물자연휴양림, 교래곶자왈, 삼다수 숲길, 용눈이오름, 돌문화공원 등이 있다. 비자림로의 끝인 평대리를 지나면 월정리 카페거리(사진)가 가깝다. 바다를 보며 차 한 잔 마시는 운치가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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