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남편 남진우 "말의 주인 찾는 건 잘못된 믿음"
이번 달 출간 '현대시학' 권두시론에서 밝혀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소설가 신경숙의 남편이자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부인의 표절 논란에 대해 처음 견해를 밝혔다.
남 교수는 이번 달 출간 예정인 월간 '현대시학'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 - 표절에 대한 명상 1'이라는 권두시론을 기고했다.
그는 "우리 문단과 사회를 달구고 있는 '표절'과 '문학권력'이란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된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신 작가 사건 이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남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선 표절이라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양심의 문제,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돼 이원론적 판결이 요구되는 법정으로 직행한다"며 "그러나 문학예술의 창작에서 표절은 종종 텍스트의 전환, 차용, 변용 등의 문제와 결부되어 숙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숙고를 회피한 채 이뤄지는 표절 논란은 대부분 무분별한 여론 재판으로 귀결된다"며 "표절이라는 주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요소가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으면 한다"고 글을 쓴 의의를 설명했다.
남 교수는 '보들레르, 토머스 그레이를 고쳐 쓰다'라는 단락에서 '현대시의 시조'라 불리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시 '불운'과 영국 시인 토머스 그레이의 시 '시골 교회 묘지에서 쓴 비가'를 비교했다.
그는 "보들레르의 시가 그레이 시의 번안인 것은 합의된 사실"이라며 "영어와 프랑스어의 담을 넘으며 시구의 리듬과 각운을 새로 만들었던 노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보들레르의 시가 그레이의 시구를 '둔갑한 것'이라는 원초적 사실을 백지화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 교수는 보들레르의 시에 표절 논란이 일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보들레르의 위대성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보들레르의 번안으로 그레이 시가 함축하고 있던 최상의 순간을 맛보게 된다. 또 그레이의 의도를 넘어 그 구절이 현현하는 놀라움과 조우하게 된다. 그레이의 범용한 낭만주의적 수사는 보들레르의 마법의 손길에 의해 상징주의의 도래를 고지하는 언어의 음악으로 탈바꿈한다."
남 교수는 권두시론 마지막에 "말에 주인이 있다고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보는 사고는 어쩌면 잘못된 믿음의 산물이며 보편적 편견일 수 있다"며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이런 상호 텍스트성의 거대한 그물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표절은 표절이다"라며 "그러나 표절은 문학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 그것도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남 교수는 다음 달 '현대시학'에 실린 '표절에 대한 명상 2'에서 표절에 대한 입장을 다시 정리할 계획이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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