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아들' 차두리의 해피 엔딩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2015. 11. 2. 06: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FC서울 차두리가 지난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A컵 결승에서 인천을 물리친 뒤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FC서울 차두리가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인천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결승전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잘난 아버지를 두면 항상 이렇더라고요.”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35·FC서울)는 FA컵 우승을 달성한 뒤 웃음과 함께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 목에 우승 메달을 걸어준 뒤 돌아온 대답은 ‘나도 감독 때 걸어봤다’. 차두리는 씩 웃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겼지만 속깊은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속으로 기뻐하셨겠죠.. 메달을 고이 잘 간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차두리가 아버지에게 우승 메달을 선사하며 축구인생의 행복한 마침표를 찍었다. 그의 말대로 ‘잘난’ 아버지의 큰 그림자 속에서 늘 부담을 안고 뛰었던 차두리는 축구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FC서울은 지난달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전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3-1로 이겼다. 1998년 안양 시절 우승 이후 무려 17년 만에 들어 올린 감격의 FA컵 우승컵이었다. 오른쪽 윙백으로 선발 출전한 차두리는 경기 내내 질풍 같은 돌파와 안정된 수비로 베테랑의 진가를 뽐냈다.

차두리는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이번 경기를 끝으로 현역을 마무리한다”고 선언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한 차두리는 K리그 클래식 3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경고 누적으로 오는 7일 수원 삼성과의 슈퍼매치를 뛸 수 없는 그는 나머지 2경기에 대해 “동기부여 측면도 있고, 발바닥 부상으로 한 달째 약을 먹고 있는 몸상태도 있고, 후배들을 위해서도 오늘로 마무리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차두리는 스코틀랜드를 거쳐 지난 2013년 FC서울에 입단했다. 그는 K리그에서 13년 여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각각 한차례씩 리그와 FA컵 우승컵을 따냈지만 그의 선수 생활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에 와서도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2013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지난해에는 FA컵 결승에서 성남FC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역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차두리는 마지막 현역 경기에서 감격의 우승컵을 안고 퇴장하게 됐다.

차두리는 “너무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서울에 와서 계속 준우승했고, (국가대표로)아시안컵도 준우승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는데 마지막 결승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어 행복하고 후배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생활을 돌아보며 “축구 선수 하면서 가장 잘 한 결정이 K리그로 온 것이다. 선수뿐 아니라 선수생활 이후에 할 수 있는 일과 시야를 넓혀줬다”면서 “그런 면에서 유럽과 한국을 같이 경험하고 대표팀도 경험하면서 나에게는 큰 재산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계획에 대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는 아직 정해놓진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많이 노력하고 공부해서 지금까지 얻은 지식과 배운 것으로 한국 축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모든걸 줘서 한국축구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쏟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늘 거대한 아버지의 그늘 속에 뛰어온 차두리. 그는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어긋나기도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난 2014 K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 수비수상을 받은 후에는 “한국축구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뭔가 인정받기가 힘든 일이다. 이제야 그런 자리가 돼서 매우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는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밝혔다.

2번의 월드컵 본선 출전과 2번의 좌절, 공격수에서 수비수로의 변신 등 선수 생활 동안 적지 안은 굴곡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맞섰다. 쉼없이 달리는 그의 질주에 팬들은 환호했고, ‘로봇 두리’는 ‘차붐’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경기에서 우승컵을 든 것은 ‘잘난 아버지’ 차범근도 해보지 못했다. 행복한 선수생활을 마친 차두리의 축구인생은 이제 새로운 2막을 향해 달려간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