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에 감도는 검은빛, 피에르 오바메양

임기환 2015. 10. 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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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에 감도는 검은빛, 피에르 오바메양

(베스트 일레븐)

임기환의 인사이트

현대 축구에서 신계는 단 두 명에게 열려 있었다. 하나는 리오넬 메시에게, 다른 하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다. 두 선수는 다년에 걸쳐 최고의 자격을 증명해 왔다. 사실 신계에 근접한 선수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신계 후보자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낯선 경계에서 미끄러졌다. 대표적 예가 라다멜 팔카오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가장 강력한 신계 후보로 평가받았던 팔카오는 AS 모나코와 첼시 등을 거치며 ‘보통 남자’가 됐다. 한 시즌 폭발력만 갖곤 신계에 드나들 수 없다. 부상을 당해서도 안 된다. 세상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즐라탄), 루이스 수아레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등을 신계에 허락하지 않는 이유다.

피에르-에메리크 오바메양 역시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한다. 오바메양은 단 한 번도 신계의 위엄을 보인 적 없다. 소속 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지난 시즌 46경기에 출전해 26골을 넣은 게 커리어 하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출발부터 다르다. 최근 보여 주는 모습은 신계가 부럽지 않다. 독일 분데스리가 10경기 13골. 모든 대회 통틀어 17경기 20골. 최근 4일 동안 두 경기에서 두 번의 해트트릭. 프로 10년 차에 접어들며 축구에 눈을 뜬 오바메양은 올 시즌 유럽 축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격수 중 한 명이다.

분데스리가 관통한 ‘흑색 탄환’

독일 현지에서도 ‘오바(오바메양의 애칭)’는 레반도프스키와 더불어 가장 주목받고 있다. 분데스리가는 홈페이지에 아예 오바메양 특집 페이지를 마련했다. 그럴 만도 하다. 오바메양은 이번 시즌 두 경기를 빼고 매 경기 공격 포인트를 기록 중이다.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유럽 5대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13골)을 넣은 선수다. 도르트문트의 105년 역사상 리그 10경기에서 13골을 넣은 이는 오바메양이 처음이다. 팀 기여도는 레반도프스키를 뛰어넘는다. 도르트문트가 이번 시즌 기록한 29골 중 45%를 오바메양이 넣었다. 유럽 리그 전체 1위다. 레반도프스키와 토마스 뮐러가 각각 39%와 30%로 이 부문 2~3위를 달리고 있다.

수비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공격력만큼은 확실하다. 주무기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상대 진영을 사선과 종으로 내달리는 움직임이 뛰어나다. 심지어 스피드가 ‘번개’ 우사인 볼트에 비견될 정도다. 분데스리가 홈페이지에 따르면 오바메양의 30m 스프린트(정지 상황에서 30m를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 속도는 3.8초로, 2009년 볼트가 100m 신기록을 세울 당시 30m 스프린트 기록에 비해 겨우 0.02초 느릴 뿐이다(오바메양 자신은 <디 벨트>와 인터뷰를 통해 AC 밀란 유스 시절 3.7초를 기록했다고 했지만, 이는 본인의 얘기일 뿐이다). 참고로 볼트의 당시 30m 구간 기록은 3.78초였다. 187㎝에 80㎏. 피지컬 능력은 고등학교 때 완성됐다. “열여덟 살이라곤 믿기지 않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피지컬 능력이 엄청나 수비수를 쉽게 따돌렸다.” 프랑스 2부리그 디용 FCO에서 오바메양을 지도했던 다니엘 요셉 감독의 설명이다.

이뿐 아니다. 전방에서 볼을 잘 지키며 패싱력도 준수하다. 빠른 데다 볼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움직임이 좋아 카운터어택 상황에서 대단히 유용한 옵션이다. 그렇다고 오바메양을 직선적으로 내달리는 센터포워드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바메양은 즐라탄처럼 최전방의 넓은 지역을 효과적으로 커버한다. AC 밀란 시절 동료였던 즐라탄은 “오바메양은 톱 클래스다.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볼을 아주 편하게 다룬다. 그 정도만 할 수 있어도 좋을 것 같다”라고 엄지를 치켜든다. 오바메양이 2015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후보에 오른 건 당연한 결과다.

더블 해트트릭, 신계를 노크하다

하지만 어떤 기술적 요소보다 그를 빛나게 하는 건 아프리카 출신 특유의 낙천성일지 모른다. 오바메양은 전 사령탑이었던 위르겐 클로프 감독처럼 유쾌한 남자다. 항상 웃는 얼굴에서 축구를 진정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아들을 위해 스파이더맨 세리머니를 기꺼이 펼치며, 흥에 겨우면 언제 어디서든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탄다. 오바메양은 ‘아들 바보’다. 경기마다 꼬박 매치볼을 챙겨 아들에게 선물한다. 방에 넘쳐나는 매치볼 덕에 더 큰 방으로 옮겨야겠다고 능청을 떨 정도다. 동료들과 사이도 무척 좋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인생의 낭비”란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명언은 오바메양 앞에선 해당이 없다. 오바메양의 SNS는 지인들과 찍은 사진들로 도배돼 있다. 볼트를 숭배하는 오바메양은 각계각층의 명사들과 거리낌 없이 지낸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0만 명을 넘는다. 오바메양의 '관계 맺음'에 있어, 공간은 무의미하다.

최근 두 번의 해트트릭은 마치 신계로 향하는 불빛처럼 보였다. 비록 상대는 카발라와 아우크스부르크 같은, 도르트문트보다 한두 수 아래 팀이긴 했지만 말이다. 오바메양의 인터뷰가 더 가관이다. 어떻게 4일 동안 두 번의 해트트릭을 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또 한 번 해트트릭을 할 수 있을지 형과 내기를 했다. 그를 놀라게 할 생각이었고, 결국 세 골을 넣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긴 게 중요하다”라고 여유를 부렸다. 참고로 오바메양에겐 현역 축구 선수로 뛰는 형이 둘이나 있다. 카탈리나 오바메양과 윌리 오바메양이 그 주인공들이다. 오바메양보다 여섯 살 많은 카탈리나는 가봉 1부리그 사팽에서 레프트윙으로 뛰고 있다. 두 살 형인 윌리는 수비수로 독일 4부리그 크라이에서 활약 중이다. 셋 다 AC 밀란 유스팀과 가봉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이 발칙한 득점 내기는 사실 토마스 투헬 도르트문트 감독과 먼저 했다. 내기 주제는 “과연 오바메양이 한 시즌에 20골을 넣을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오바메양은 시즌의 3분의 1도 안 돼 20골을 깔끔히 해치웠다. 그렇다면 투헬 감독은 이대로 진 걸까? 오바메양은 “벌써 다 넣었다. 하지만 감독님과 한 건 리그에 한정해서다. 그런 내기를 좋아한다”라고 능청스레 말한다. 지는 게 더 기분 좋은 둘의 내기에 도르트문트는 지난 시즌 부진을 털고 당당히 2위(7승 2무 1패, 승점 23)를 달리고 있다.

#미친 활약 #나도 #모름

그렇다면 이른바 ‘유럽을 씹어 먹는’ 미친 활약의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오바메양 본인도 확실히 모른다는 사실이다. 오바메양은 “글쎄. 훈련 때 최선을 다한다. 집에선 그냥 푹 쉰다. 3일마다 경기하고 나서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오바메양의 곁엔 그의 엔진인 마르코 로이스와 가가와 신지가 있다. 특히 로이스와 친분은 무척이나 각별하다. 오바메양은 허물없이 장난치며 로이스에게 “F**k you”를 날린다. 그 유명한 ‘배트맨과 로빈’ 세리머니는 밥을 함께 먹다 떠오른 것이다. 로이스는 “재미로 했다”라며 웃을 뿐이지만, 밝혀진 바에 따르면 클로프 감독은 세리머니로 카드를 받을까봐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클로프 감독이 떠난 지금도 두 악동의 우정은 변함없다.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선 오바메양과 로이스가 사이좋게 해트트릭과 멀티 골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 오바메양의 활약은 신계에 버금가지만, 그가 딱히 신계를 의식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여유와 관용의 자세로 이번 시즌을 나고 있는 오바메양이다. “레반도프스키는 지금 이 순간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 중 하나다. 나 역시 레반도프스키와 같이 노력하고 있다. 레반도프스키가 분데스리가 득점 1위인 사실이 행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고수는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경쟁을 즐기고 있다. 보는 이까지 즐거운 유쾌한 노력과 함께 말이다.

오바메양이 말하는 노력은 ‘노력 착취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허울 좋은 얘기로 들릴지 모른다. 오바메양의 성공은 얼핏 재능을 타고난 자만 닿을 수 있는 신기루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메양은 메시나 보얀 크르키치 같은 역대급 재능이 아니다. 오바메양의 핏줄 중 그만이 생존 경쟁을 뚫었다. 그것도 10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 말이다. 5년 사이에 프랑스의 다섯 개 팀을 전전하고, 4년 전만 해도 프랑스 2부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주인공은 '꿀벌 군단' 입성 4년 차 만에 월드 클래스로 거듭났다. 오랜 인내로 재능을 만개시킨 ‘가봉의 쾌남’ 오바메양. '흑색 탄환'의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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