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한국의 노인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황혼, 집 없으면 '난민'.. 있어도 '짐'
치열했던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지상과제였다. 벌이를 시작하면 청약통장부터 개설했고 매달 적금을 부었다. 좋은 옷이나 자동차 같은 것은 우선순위에서 번번이 집에 밀렸다. 은행돈까지 빌려 집을 마련하면 다시 아끼고 저축해 이자를 갚았다.
그렇게 ‘집’을 위해 살았던 이들이 이제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됐다. 그들은 지금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실태조사 결과 내 집에 사는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의 비율은 7대 3 정도였다. 노인 10명 중 3명은 끝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잠시 이뤘더라도 지금 그 집이 수중에 없다. 나머지 7명은 내 집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과연 그 집 덕에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을까.
국민일보 취재팀이 만난 ‘집 있는 노인’과 ‘집 없는 노인’들은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무게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고도성장기였던 1980년대 대대적 도시개발과 함께 집은 거주공간에서 부(富)의 상징으로 변신했다. 운 좋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잡은 이들 중에는 그 집을 ‘짐’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 대한 욕망과 집값이 오르리란 기대에 무리하게 얻은 대출은 굴레가 됐다. 하우스푸어는 이미 한국 노인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 돼 있다. 집을 물려받으려 상속 분쟁을 벌이는 자녀들을 보는 건 고역이다. 각종 복지 혜택은 집 있는 노인에게 쉽게 차례가 오지 않는다.
내 집 없는 노인의 삶은 더 현실적으로 고달프다. 채무 등 경제적 여건 탓에 거주지를 숨기고 ‘투명인간’처럼 사는 거주불명 노인이 지난 9월 현재 9만4700여명이나 된다. 마땅한 수입이 없는데 끝없이 오르는 월세·전세 부담과 독립하지 못한 자녀의 뒤치다꺼리는 한숨을 부른다. 독거노인가구 중 25.4%는 화장실 목욕탕도 갖추지 못한, 최저 주거 기준에도 못 미치는 곳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주거정책’은 없다. 집이 있어도 소득이 없어 고통을 겪는 노인, 집도 없이 떠도는 노인, 평생 벌어 마련한 집을 노후에 잘 써먹고 싶은 노인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하다. 정부의 노인 주거정책은 노인을 모시고 사는 집, 즉 노인부양 가구에 집중돼 있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현재 한국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약 662만명 살고 있다. 전 국민의 13.1%를 차지한다. 장래 인구를 추계해 보면 2018년이면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전체 인구 가운데 노인 비율이 14%를 넘어서고, 2026년에는 이 비율이 20.83%를 기록해 초고령사회가 된다. 노인을 위한 주거정책을 다시 고민할 때가 됐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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