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인과 집] 집 있다고 부럽소?.. 늙은 하우스 푸어, 역차별

2015. 10. 19. 22: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에 발목 잡힌 노인들
일러스트=서민호 화백

허리가 휘도록 열심히 살았다. 평생 일해 자식 키워내니 달랑 집 한 채 남았다. 내 몸 하나 누일 곳은 있다는 든든함, 그것은 잠시였다. 소득은 없는데 집이 있다는 이유로 건강보험료·기초연금 등에서 불이익을 보게 됐다. 취업이 안 된다고, 결혼하기 싫다고, 집값이 비싸다고 다 큰 자식들이 내 집에 얹혀산다. 상속 문제는 생각할수록 골치다.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집을 차지할 건지, 집을 판다면 어떻게 배분할지를 놓고 자식 간 다툼이 벌어진다. 그래도 이건 행복한 고민인가? 주위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집에서 외롭게 살다 죽어가는 독거노인도 많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노인들은 이렇게 “집 한 채 있는 게 더 속 썩인다”고 푸념한다.

내 집 때문에 못 받는 기초연금

경북 안동에 사는 A씨(65)는 지난 7월 기초연금을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A씨 부부에게는 3억700만원짜리 집이 있다. 예금도 1억6000만원쯤 되는데, 집과 예금을 제외한 소득은 없다. 정부는 기초연금 신청자의 주택·예금 등 ‘재산’을 월 소득으로 환산해 연금 수령자격을 따진다. 부부 가구의 경우 이렇게 환산한 소득인정액이 월 149만원 이하여야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걸리는 기준이다.

안동시는 중소도시라 재산가액에서 8500만원을 뺀다. 안동시에서 주거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예금은 일괄적으로 2000만원을 공제한다. 남은 금액을 합한 뒤 총합의 5%를 12개월로 나눈다. 이렇게 따지니 A씨 부부의 월 소득은 151만원으로 계산됐다. 소득인정액 기준(149만원)보다 2만원이 많아서 기초연금을 못 받게 된 것이다.

A씨 부부는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집과 예금은 손대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형편이 어려운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도 쉽지 않아 생활이 팍팍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B씨(65)도 비슷한 상황이다. 평생을 일해 집(2억3000만원)과 예금(2억4000만원)을 마련했다. 기초연금 기준식에 대입하니 B씨 부부의 월 소득은 152만원으로 산출됐다. 기준보다 3만원이 많아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어렵게 마련한 ‘집’ 때문에 기초연금을 못 받는 이들은 ‘억울하다’고 입을 모은다. 충남 아산에 사는 한 노인은 “평생 일해 마련한 집은 어차피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며 “당장 소득이 없으니 20만원 기초연금이 아쉬운데, 나를 ‘부유한 노인’으로 보는 정책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독립 대신 동거’ 원하는 자녀

직장인 C씨(36)씨는 7년 전 결혼하면서 대출을 받아 서울 변두리의 전세 아파트로 분가했다. 전셋값이 오를수록 빚도 불어났고 두 딸이 태어나 육아 부담까지 생겼다. C씨 부부는 결국 부모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세도 아끼고 양육도 부탁하려는 마음에서다.

서울에 사는 D씨(65)의 큰아들(36)은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뒤 제대로 된 직장에 다녀본 일이 없다. D씨의 재산이라곤 20평 아파트와 작은 가게가 전부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아들을 피해 부부가 찜질방에서 잔 것도 여러 번이다. 새벽같이 가게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집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들을 보며 D씨는 지쳐가고 있다. 따로 살 원룸을 구해준다고 해도 “월세는 누가 내냐”고 되묻곤 한다.

치솟는 집값에 거주할 곳을 구하지 못해 부모와 함께 사는 20∼50대가 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가족구조 통계’를 보면, 서울에 거주하는 30∼49세 성인 중 48만5000여명이 부모가 가구주인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사는 이들을 일컫는 ‘패러사이트 싱글’(기생충 미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집이 있어 겪게 되는 부모 세대의 설움이다.

집 상속을 둘러싼 ‘혈전’

지난 어버이날 오랜만에 집에 모인 자녀들에게 최모(70)씨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집을 담보로 연금을 타서 쓰겠다”고 했다. 그동안 세 자녀가 조금씩 모아주는 용돈으로 큰 불편 없이 지냈지만 아내가 병에 걸리면서 병원비가 필요하게 됐다. 집은 최씨 명의여서 마음대로 처분해도 되는 상황인데, 주택 상속을 생각하는 자식들 눈치를 본 것이다.

2007년 도입된 주택연금은 소득이 없는 최씨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집을 담보로 맡기고 죽을 때까지 그 집에 살면서 매월 일정액을 지급받는다. 집값이 떨어져도 가입 당시 약속한 연금을 그대로 보장하고, 5억원 이하 주택을 맡기면 재산세도 매년 25%씩 감면해준다.

그러나 주택연금 가입 때 최씨처럼 자식 눈치를 보는 노인이 많다. 2008년 주택연금 신청 취소 건수(119건) 중 자녀 등 가족의 반대 때문인 경우는 21%(25건)였는데, 지난해에는 34%(1388건)로 늘어났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상속을 바라는 자녀들의 반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집을 둘러싼 가족 간 신경전은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2013년 6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형에게 주려 하자 불만을 품은 동생이 불을 질렀다. 형과 자녀 3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지난 5월 경남 사천에서는 집을 비롯한 재산 상속을 노린 30대 남매가 아버지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2011년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상속재산분할소송은 154건이었다. 이 수치는 2012년 183건, 2013년 200건, 2014년 266건 등 해마다 증가했다. 올해는 7월에 이미 170건을 넘겼다. 이런 소송에 등장하는 상속재산 중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가장 가액이 높은 집이다. 어렵게 마련한 집이 노년의 고민거리를 불러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내 집에서 맞는 고독사

지난 7월 인천의 한 아파트. 홀로 살던 E씨(68)가 숨진 지 2주 만에 경찰에 발견됐다. 당시 E씨는 안방 침대에서 누워 있는 상태였다. 뼈가 드러날 만큼 시신이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E씨는 2013년 가족과 떨어져 이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왔다. 경기도 부천시의 한 사우나에서 일하며 생활하다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변을 당했다.

지난달 28일에는 부산 동구의 한 단독주택에서 임모(7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와 이혼한 뒤 15년간 혼자 살아온 임씨는 지난달 초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이웃 주민에게서 몇 주째 임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은 아들이 실종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은 옷가지에 덮여 숨져 있던 임씨를 발견했다. 사망한 지 20일이 넘어 있었다. 당뇨병을 앓던 차에 과음을 한 뒤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두 노인 모두 ‘내 집’이 있었다. 그러나 돌봐주는 이 없이 홀로 지냈고 가족과의 왕래가 뜸해 쓸쓸히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은 따뜻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고독사의 위험이 가득한 공간으로 변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경기도 안양에서 혼자 사는 박모(72)씨는 “자식들이 바쁘다고 명절에도 찾아오지 않는데 집이 있으면 뭐 하냐”며 “매번 TV에 나오는 노인 고독사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