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인과 집] 거주불명 노인 10만명 육박하지만 실태조사는 '지지부진'

심희정 기자 2015. 10. 1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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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사는 A씨(66)는 2007년 빚을 지고 숨어 사는 신세가 됐다. 채권자와 마주칠까 봐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기초연금 20만원을 받는 아내가 얻은 단칸방이 그의 생활 반경의 전부였다. 거처를 들킬까 두려워 ‘거주불명자’로 살기를 자처했다.

A씨는 거주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당시 주민등록법에 따라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어디엔가 살고 있는데 ‘죽은 사람’ 취급하는 건 문제가 있다 해서 2010년 거주불명등록제가 도입됐고, A씨도 거주불명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말 A씨 아내에게 국민연금공단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공단 직원은 “거주불명자로 등록돼 있어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남편의 연금을 신청하라고 권유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A씨는 극구 반대했다. 채권자가 눈치 채고 찾아올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생활고를 어쩔 도리가 없어 결국 기초연금을 신청했다. 부부 합산 연금 약 32만원이 매달 입금되고 있다. 이 돈을 받기 위해 매달 주민센터 직원의 거주 확인 전화에 응대하며 A씨는 연신 “고맙다”고 말한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거주불명자로 등록된 B씨는 빚 때문에 몇 년째 찜질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예순이 훌쩍 넘었는데 가족과 연을 끊고 산 지 오래다. 3년 전부터 거주불명자 ‘발굴’ 업무를 해온 구청 직원이 지난해 어렵게 그의 거처를 알아냈다. 직원의 권유로 B씨도 기초연금을 신청했다. 역시 매달 거주 확인 전화를 받고 어느 찜질방에 있는지 알려준다.

이렇게 내 집은커녕 사는 곳조차 분명치 않은 거주불명 노인이 올 9월 현재 전국에 9만4700명이나 된다. 전체 거주불명자 46만7000명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사채를 썼거나 빚이 있어 본인이 일부러 자취를 감춘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거주불명등록제가 도입된 뒤 5년간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주민등록인구통계를 보면 거주불명 노인은 2010년 7만7696명, 2012년 8만3077명, 2014년 9만872명 등 계속 늘고 있다. 이들 중 A씨와 B씨처럼 기초연금을 받게 된 사람은 0.2%도 안 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찾아내 기초연금을 신청케 한 거주불명 노인은 159명이었다. 8만604명은 아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거주불명등록제는 소외계층이 대부분인 기존 주민등록말소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거주불명자도 선거권을 갖고 일정 요건이 되면 건강보험이나 기초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게 확인되면 매달 거주 확인을 통해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거주불명 노인에 대한 실태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숙을 하거나 사망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 거주불명자로 등록된 경우도 있어서 거주불명 노인을 대상으로 복지정책을 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매년 거주불명자 조사를 해서 연락되는 분들에게 기초연금 신청 방법을 안내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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