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노벨상, 캣맘.. '기레기'는 살아있다

정혁 입력 2015. 10. 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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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잘못된 보도.. 반성과 자정능력은 어디에

[오마이뉴스 정혁 기자]

한국의 언론계 종사자들 중 일부가 '기레기' 소리를 들은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퇴행 속에서,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듯한 징후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 파악은 고사하고, 같은 기사를 제목만 살짝 바꿔서 스팸처럼 계속 올리는 것도 모자라, 요즘에는 기사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명인의 이름을 (오로지 검색 노출과 낚시를 위해) 제목에 넣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쯤 되면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참 민망할 지경인데, 일부 넘겨짚거나 단순 과장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노골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잘못된 보도가 최근에도 몇 건 있었다. 물론 언론인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세부자료 인용이나 통계수치 해석 등에서는 약간의 잘못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실수와는 무관하게 거의 의도적으로 오보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싶은 사례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도대체 지금 한국에서 언론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지 한 번 살펴 보도록 하자.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 분쟁 관련 보도

먼저, 사실 관계부터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 동네미술관이자 카페인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현재 싸이 소유의 이태원 건물 세입자다. 2010년 4월부터 영업을 해왔고, 당시 일본인 건물주는 "임차인이 원하는 경우 해마다 계약을 연장한다"는 특약을 해줬다.

그래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권리금 6천만 원과 4억 원의 비용을 들여 카페를 열었다. 하지만 6개월 뒤에 건물주가 바뀌었고 '재건축'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 법원은 테이크아웃드로잉에 2013년 12월 말까지 보증금을 받고 건물을 비워주라고 결정한다(2011년 12월).

그렇지만 새 건물주는 재건축을 하지 않았고 2012년 2월 싸이에게 건물을 78억 원에 판다. 싸이 측은 이전에 법원이 내린 결정을 따르라고 요구했으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재건축을 전제로 한 결정이기 때문에 따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되었고, 양측 사이에 명도소송과 강제집행정지·명예훼손 소송 등이 연이어 벌어진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현재진행형으로 한창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 9월 30일, OSEN이라는 연예매체에서 [단독]싸이, 왜 추석 때 집 나갔나 "다 던지고파"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다. 이 기사는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분쟁을 다루고 있는데, 싸이가 "법원 판결에도 막무가내로 버티며 소송과 시위를 이어가는 한 카페 주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며 "모든 걸 '갑의 횡포'로 몰아붙이는 세입자와 일부 시위 주도 세력에 막혀 법과 정의도 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썼다.

 OSEN '[단독]싸이, 왜 추석 때 집 나갔나 "다 던지고파" 눈물'(2015/09/30) 기사 페이지 갈무리
ⓒ OSEN
전체 기사를 읽어보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제목을 필두로 본문에 사용된 표현들 자체가 싸이에 상당히 호의적이다. 이후 미디어 비평 전문지인 <미디어오늘>의 기사 "싸이가 세입자에 승소했다는 언론보도, 오보다"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해당 기사가 싸이에 유리하게 서술한 내용들은 우선 사실 관계부터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위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올해 4월에 출간한 책이 바로 싸이의 소속사인 YG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에 관한 글이었다는 사실이다.

 'YG는 다르다' 표지
ⓒ YG는 다르다
미디어 비평 전문지에서 해당 기사를 직접 거론하며 싸이에 유리하게 서술된 부분을 반박하는 인터뷰까지 진행한 걸 보면, 기사의 내용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기자는 싸이의 소속사에 우호적인 책까지 냈다는 걸 감안했을 때, 상식적으로 좀 이상하지 않나?

이런 일들을 전혀 모르고 포털사이트에서 위 기사를 본 네티즌들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잘못된 기사 하나 때문에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대중들로부터 엄청난 오해를 받게 된 셈이다. 이런 게 전형적인 '언론플레이' 아닐까?

 포털사이트 Daum '[단독]싸이, 왜 추석 때 집 나갔나 "다 던지고파" 눈물' 기사 댓글 갈무리
ⓒ Daum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론 왜곡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이론에 대해서도 국내 일부 언론은 거의 오보에 가까운 소개를 하고 있다. 주로 소위 말하는 보수경제지들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다고 곡해하며,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와 반대되는 앵거스 디턴의 이론에 노벨위원회가 손을 들어줬다고 썼다.

 한국경제 '노벨경제학상에 '위대한 탈출' 저자 앵거스 디턴'(2015/10/13) 기사 페이지 갈무리
ⓒ 한국경제신문
하지만 이건 너무나 부정확한 엉터리 보도다. 그는 이미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다음은 <프레시안>("디턴은 불평등 옹호론자"…조중동의 무지? 왜곡?)에서 앵거스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원문의 일부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적 평등은 항상 경제적 불평등의 위협 아래에 놓여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해질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더욱 커진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지면, 삶의 질은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중략)...극도의 불평등에 대한 우려는 결코 부자들을 부러워해서 하는 게 아니다. 상위 소득의 급증은 부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위대한 탈출>

그리고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후 첫 공개 발언에서 앵거스 디턴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현재의 추세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것만 봐도 그가 불평등을 단순히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해외 언론들은 토마 피케티의 저작이 앵거스 디턴의 연구에 빚지고 있으며, 두 학자의 연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소개하고 있다. 어떤 불순한 의도나 노골적인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어쩌면 이렇게 완전히 엉뚱하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론을 소개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앵거스 디턴의 책 중에서 유일하게 국내에 번역 출간(2014년 9월)된 <위대한 탈출>의 출판사가 바로 한국경제신문이다. 과연 이 책의 번역이 제대로 됐다고 볼 수 있을까? 이젠 기사 내용을 못 믿는 건 물론이고, 도대체 책의 번역이 정확히 됐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앵거스 디턴의 책 중 한국에서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위대한 탈출' 표지
ⓒ 위대한 탈출
 경제학자 오석태 페이스북 갈무리
ⓒ 오석태
용인 50대 여성 벽돌낙하 사망사건 몰아가기

지난 10월 8일 오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중년 여성이 위쪽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만약 목격자가 있었다면 해결이 됐겠지만 현재까지는 나타나지 않았고, 특별한 단서는 없이 그저 벽돌 하나와 '피해자가 당시 고양이집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만 확인됐을 뿐이다. 그래서 경찰은 벽돌에서 다른 누군가의 DNA가 발견되길 바랐지만, 국과수의 1차 감정에서는 피해자의 DNA만 검출됐다.

 용인서부경찰서가 배포한 전단지 갈무리
ⓒ 용인서부경찰서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면, 이 벽돌이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던진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경찰 입장에서는 마땅한 단서가 없으니 일단 벽돌과 고양이집을 바탕으로 수사를 벌이고는 있지만, 좀 더 엄밀히 따져 보면 길고양이 문제 자체가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설사 고의적인 범죄였다고 하더라도, 범인이 과연 피해자가 '캣맘'이어서 벽돌을 던졌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캣맘 혐오증'이라는 표현까지 기사 제목에 붙여서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이 사건을 몰아가고 있다. 딱히 단서가 없는 경찰이나 길고양이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 그런 의혹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한창 수사 중인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까지 그 무엇도 확인된 바 없는 상태에서, 캣맘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 50대 여성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마치 기정사실인 양 보도하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16일 오전, 경찰은 사건 용의자로 아파트 거주 초등학생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언론은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는 이들의 클릭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보고자 함이겠지만, 아무것도 명확히 드러난 게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고양이와 관련 있는 범죄인 듯이 무리하게 몰아가는 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사건 해결에는 혼선만 가중될 뿐이고, 자꾸 확인되지도 않은 '캣맘 혐오증'을 들먹이며 자극적인 기사로 도배하는 것 역시 사회 구성원들 간의 불신만 조장한다. 어쨌든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사실'과 '의혹'은 철저하게 구분해야만 하지 않나?

벽돌낙하로 인한 50대 여성의 사망사건을 '캣맘 살인사건'이라고 성급하게 보도하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론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멋대로 왜곡하며, 자신이 쓴 책과 관련있는 인물의 기사를 사실대로 쓰지 않는 기자. 과연 이런 것들을 실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분히 의도적이고 노골적인 보도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

언론인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신뢰를 저버린다면, 기레기라는 말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한국언론은 죽었다'는 말이 나왔는데, 정녕 우리 시대 기자들에게는 반성과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걸까.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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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arthurjung.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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