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박물관이 만나'꿀잼'이 되다

중림동 새우젓 2015. 10. 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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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딱히 약속도 없건만 우산이 떠 있으면 괜히 울적하다. 하지만 가수 김현철은 노래했다.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라고. 서울을 뽀송하게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옛 경희궁 터에 지어진 서울역사박물관이다. 영화 <사도>에서 비 오는 밤,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난 사도세자가 칼을 빼 들고 아버지 영조를 죽이겠다며 향한 그 경희궁, 맞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깥보다 건조해서. 박물관은 유물의 훼손을 막기 위해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보이는 것보다 넓은 지상 3층짜리 단일 건물이라 빗속을 뚫고 다니지 않아도 한 번에 많은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먼저 3층 ‘도시모형 영상관’으로 가자. 서울 전체를 150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이 유리 바닥 밑으로 펼쳐지는데, 나도 모르게 우리 집은 어디에 있나 찾게 된다.

영상관을 나오면 4개 구역에 걸쳐 서울 600년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전시실이 보인다. 전시 설명에 쓰인 폰트며 색상만 봐도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썼는지 느껴진다. 동선을 고려한 조명이며 음향은 전시가 아닌 공연 무대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유물뿐만 아니라 모형·영상 등 시청각 자료들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하루 세 번 전시 해설을 통해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다 이해하고 가려는 부담은 버리자. 게다가 ‘무료’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붐비지 않는다. 역사와 박물관의 조합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따분한가. 하지만 이 안에 들어와 보면 다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먼 옛날이 아닌 나와 내 주변에서부터 역사를 이야기한다. 박물관 곳곳에 '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연락주세요'라는 배너가 있다. 그렇게 기증받은 유물들은 곧 전시의 일부가 된다. 기증유물전시실(1층)의 <응답하라 1994, 그 후 20년>에는 ‘X세대’ 옷을 입은 마네킹이며 삐삐, 플로피디스켓이 전시돼 있고 배경음악으로 015B의 ‘신인류의 사랑’이 깔린다. 기획전시실(1층)에 마련된 <남산의 힘>(11월1일까지)에서는 시민들에게 받은 남산 사진과 추억을 전시의 중요한 재료로 삼았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낮은 산(262m)을 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물쇠를 달았던 행복한 시간을, 누군가는 수학여행 왔던 어린 시절을, 또 누군가는 엄혹했던 한 시대를 떠올린다. 남산이라는 장소에 차곡차곡 쌓여온 시간들을 짚어, 서울이 겪어온 역사를 돌아본다. 그리고 당신에게 남산은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

ⓒ시사IN 윤무영 : 서울역사박물관 3층에 위치한 도시모형 영상관.

내가 낸 세금이 잘 쓰이고 있구나

N서울타워 야경 사진에 봉수대 횃불 화폭이 겹쳐지는 영상을 보노라면 어느새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자가 된다. 남산을 그린 겸재의 병풍과 한양-경성-서울 지도 등의 유물뿐 아니라 남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며 과거 남산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 영상, 지금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더 많은 조선 신궁과 이승만 동상을 재현해놓은 거대한 조형물 등을 통해 그 시간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빌딩 사이 빼꼼 고개를 내민 남산을 만나면 이전과는 달리 깊은 감상이 느껴진다. 내가,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서울 안에서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시간들도 소중한 유물이라고 말해주는 곳이자, 그 시간들을 더 옛날의 그것들과 엮어서 풍부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곳. 그래서 서울역사박물관은 더욱 특별하다. 내가 낸 세금이 잘 쓰이고 있구나, 뿌듯하기까지 하다니까?

꼭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날씨가 좋다면 야외로 나가보자. 서울 전역을 그린 지도 위에 물이 솟아오르는 ‘수선전도 분수’는 맑은 날만 가동된다. 1930년대부터 40년간 서울 시내를 운행한 ‘전차 381호’에 타면 문화해설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간식거리를 먹는 것도 좋다. 바로 옆으로 경희궁까지 놓인 길은 산책하기에도 일품이다.

한번 서울역사박물관의 매력에 빠졌다면 재방문은 예정된 운명이다. 상설 전시만 꼼꼼히 돌아보는 데도 하루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획전이 열릴 때마다 기대감을 감추기 어려워진다. 내가 놓치며 지나온 서울의 시간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떤 시간을 거쳐왔는지를 아는 일이 ‘의무’는 아니다. 다만 다른 많은 일이 그렇듯, 알게 되면 일상이 조금 더 흥미로워진다. 평범한 2015년의 어느 날, 서울 곳곳에 숨어 있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흔적을 발견한다. 항상 마주쳐야 하는 이 도시가 어쩐지 낯설고도 친숙해진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서울 안, 모두의 모든 시간을 기억하려는 곳이다.

중림동 새우젓 (팀명)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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