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가들

입력 2015. 10.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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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이 작가의 이름과 똑같고, 직업 역시 추리소설가인 경우도 있다. 경찰소설로 유명한 에드 맥베인은 커트 캐넌이라는 필명으로 뉴욕의 무허가 탐정이 등장하는 단편 연작을 발표했는데, 그 탐정의 이름 역시 커트 캐넌이다.

소설에서 현실적 감각을 독자에게 느끼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물론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정답은 당연히 ‘글 솜씨’일 것이다.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보면 실존 소품을 써서 그럴 듯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편의상 소품이라고 표현했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실존하는 유명인물이나 물품, 건물, 혹은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 등을 삽입하여 허구가 아닌 현실 속의 모습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리소설에서는 가끔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탐정의 이름이 작가의 이름과 똑같은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면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는 엘러리 퀸을 꼽을 수 있다. 엘러리 퀸의 데뷔작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아마추어 탐정의 이름은 엘러리 퀸으로, 그의 직업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추리소설가다.

탐정 엘러리 퀸(짐 허튼 분. TV 드라마 <엘러리 퀸>)

작품 속 외모는 실제와 다르게 설정

물론 작가와 주인공의 이름이 똑같다고 해서 허구가 아닌 실화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데뷔한 1930년대에는 확실히 독특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독자들이 탐정의 이름만 기억하고 작가의 이름은 잊어버린다는 아쉬움을 없애기 위해 작가와 탐정의 이름을 똑같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촌형제 간인 두 사람이 작품을 쓰는 만큼 공동 필명이 필요했을 것이고, 또 그들의 본명인 ‘이마뉴얼 벤자민 레포프스키’와 ‘대니얼 네이선’은 너무 복잡해서(흔히 만프레드 리와 프레더릭 다네이로 알려져 있지만 역시 필명이다) 짧은 이름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추리소설가 노리즈키 린타로도 이런 형태를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은 작가의 이름과 똑같고, 직업 역시 추리소설가다. 경찰소설로 유명한 에드 맥베인은 커트 캐넌이라는 필명으로 뉴욕의 무허가 탐정이 등장하는 단편 연작을 발표했는데, 그 탐정의 이름 역시 커트 캐넌이다.

다만 실제 작가와 그가 창조한 주인공의 외모에는 제법 차이가 있다. 작품 속 엘러리 퀸은 제법 큰 키에 갸름한 얼굴에 코안경을 걸치고 있다. 사촌형제인 퀸 두 사람은 모두 별로 키가 크지 않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들을 보고 명탐정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에드 맥베인이나 노리즈키 린타로의 경우도 틀림없이 그렇게 느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쓰다 신조가 편집한 <월드 미스터리 투어 13-런던편>

추리소설과 공포소설을 훌륭하게 접목시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미쓰다 신조는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작품 속에 등장시킨다. 이른바 ‘작가’ 시리즈라는 호칭이 붙은 <기관-호러작가가 사는 집>, <작자미상>, <사관장/백사당> 등의 3부작에서는 작가와 주인공의 이름이 같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가 자신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본의 아니게 괴기스러운 초현실적 사건에 말려드는 불운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높은 효과를 보는 것 같다. 작품 속의 괴담이나 살인사건 등은 허구이지만, 미쓰다 신조가 작가로서 활동하기 전에 출판사에서 일했던 경험(그가 기획하고 편집한 것으로 작품에 자주 언급하는 <월드 미스터리 투어 13-런던>이라는 책은 실제로도 출간되었다)이나 일본의 추리작가, 편집자들과 이야기하는 장면도 실감나게 묘사되어 어쩐지 더욱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스티븐 킹 공식 홈페이지
‘엑스트라’로 깜짝 등장하기도

이들보다 소극적인 등장 방법은 사건의 기록자로서 나오는 것이다. S.S. 밴 다인은 <벤슨 살인사건> 등 파일로 밴스가 활약한 사건을 남긴 사람으로 작가이자 기록자 역할을 한다. 일본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단편 <흑묘정 사건> 도입부에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보낸 편지가 나온다. ‘언젠가 보내주신 편지에 따르면 건강이 좀 좋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 후 본래대로 <옥문도>가 연재된 것을 보면 큰일은 아니었다 싶군요. <옥문도>는 매달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약간 낯간지러운 부분도 있지만 소설이니 어쩔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후에도 건필하시기를 바랍니다.’(정명원 옮김, 시공사) 이 편지의 수신자는 ‘Y씨’로, 요코미조 세이시임을 떠올릴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고정출연(?)보다 더욱 재미있게 여기는 장면은 따로 있다.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 자신의 작품마다 한 번씩 모습을 잠깐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슬그머니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스티븐
작가 엘러리 퀸
킹의 <토미노커즈>에서는 ‘뱅고어에 사는 또 다른 어떤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그녀의 소설에는 황당한 괴물들이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지도 않았다.’(서창렬 옮김, 교원문고)라는 대목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장이지만, 스티븐 킹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뱅고어의 어떤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임을 눈치채고 킥킥 웃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한 사람은 바로 킹 자신이기도 하다. 해양 모험소설로 유명한 클라이브 커슬러도 가끔 작품에 자신을 등장시키는데, ‘60대 초반에 머리가 희고, 흰 턱수염을 기른 키가 큰 남자’ ‘따뜻한 파란 눈’ ‘세련된 분위기’ 등 구체적인 외모까지 묘사한다. 다만 주인공인 더크 피트는 통성명까지 하지만, 헤어지자마자 ‘뭔가 별난 이름이었는데’ 하면서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아 웃음을 자아낸다.
미야베 미유키 공식 홈페이지
손꼽을 만한 자기 비하의 압권은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 <마사의 변명>에서 볼 수 있다. 경찰견에서 은퇴하고 하스미 탐정사무소에서 사는 저먼 셰퍼드 마사는 그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의뢰를 해 온 사람의 이름은 미야베 미유키. 직업은 소설가. 그것도 추리소설을 쓴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물론이고 가요코나 하스미 사무소 식구들 가운데 누구 하나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던 걸 보면 대단한 작가는 아닐 것이다…. 나이에 비해 침착함이 없는 사람이다. 얼굴도 동안이지만, 내기를 해도 좋다. 이런 유형의 인간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하루 만에 폭삭 늙어 할망구가 되어버릴 것이다.’(오근영 옮김, 살림) 이 작품이 출간된 것은 수많은 문학상을 받아 ‘대단한 작가’가 된 뒤인 1997년이니 오히려 이렇게 농담조로 자신을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깜짝 등장은 때로는 숨은 그림찾기 같고, 때로는 자학 개그 같기도 해서 눈을 반짝 뜨게 할 정도로 유쾌하다. 몇 년 전 추리소설 단편집에 실린 두 작품(각각 다른 작가)에서 필자와 같은 이름의 인물이 나오는 난감한 일이 있었다. 흔한 이름이 아니니 독자도 우연이라 여길 것 같진 않고, 별로 좋은 역할도 아니었으니 추리소설가들 사이에 미움 받는 사람으로 여기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광규 츄리소설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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