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아프간 침공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시리아 반군에 제공한 BGM-71 토우(TOW) 대전차 미사일의 활약상과 관련한 보도가 최근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잇달아 나왔다.
이 대전차 미사일이 시리아 정부군이 보유한 러시아제 탱크를 격파하는 데 상당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이 펴는 여론전일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로선 30여년 전 악몽이 잠시 되살아났을 터다.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은 T-62 탱크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수도 카불을 손에 넣었다. 1950년대에 쓰던 단발식 소총 리엔필드를 든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주의 전사 무자히딘은 이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CIA가 T-62 탱크에 속수무책으로 몰리던 아프간 반군(무자히딘)에 파키스탄을 통해 휴대형 대전차 로켓포 RPG-7을 쥐여 주면서 전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CIA는 여기에 무자히딘의 게릴라 전술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던 소련군 헬리콥터를 격추하기 위해 최신 대공 화기 FIM-92 스팅어 미사일까지 지원했다.
소련군의 진군은 멈췄고, 아프간이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다 침공 10년만인 1989년 결국 패퇴했다.
이런 단순한 연결점 외에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전격 단행된 러시아의 시리아 무력개입과 36년전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유사한 부분이 발견된다.
시리아 내전이나 아프간 전쟁 모두 세계 양대 군사강국인 미국과 러시아(소련)가 중동 지역의 요충지를 두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파워게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79년 당시 소련은 미국 CIA가 아프간을 차지하고 소련 내 이슬람주의 세력을 준동해 자신을 위협할 것으로 판단,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은 반대로 소련이 아프간의 친소정권을 이용해 미국의 대리인인 파키스탄과 인도까지 확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시리아 상황을 들여다보면 러시아는 친러 성향의 현 시리아 정권을 유지해야 중동에서 군사·외교적 교두보를 유지할 수 있다. 시리아엔 러시아군과 정보기관이 주둔한 라타키아 공군기지와 유일한 외국 내 해군기지 타르투스항이 있다.
미국은 이란의 '시아파 벨트'의 주축이자 친러 성향의 시리아의 정권을 교체해야 이란과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다.
최근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을 두고 '21세기판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또 러시아(소련)는 전장에 직접 군대를 보낸 반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지의 수니파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양상도 교집합이다.
두 분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지상군의 파병 유무다.
아프간 침공 10년간 소련이 파병한 지상군은 연인원 62만명으로 알려진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시리아에 대한 지상군 파병 카드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겠지만 실제 이를 꺼내 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전망의 근거 중 하나가 '아프간의 교훈'이다. 벌써 5년째 접어든 시리아 내전이라는 진흙탕에 군화를 집어넣는 순간 시리아는 러시아에 제2의 아프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 패배는 소련의 체제가 붕괴하는 신호탄이 됐다.
게다가 러시아가 굳이 지상군을 보내지 않아도 이를 대체할 만한 헤즈볼라나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가 있다.
러시아의 지상군이 시리아 수니파 반군과 혈전을 벌이게 되면 이후 수니파 무슬림 전체에 등을 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러시아 내 무슬림이 대부분 수니파인 탓이다.
1979년에 소련은 미국의 공작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선제 침공을 단행했지만 이번 시리아 국면에선 뒤늦게 뛰어든 점도 다르다.
당시 소련은 아프간 정권을 직접 통제했지만 시리아 정권은 이란의 직접 영향권인데다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이 실체적으로 다가오자 방어적 차원에서 군사행동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또 아프간 전쟁때는 반군의 뒤에서 미국이 소련의 거대 전력을 효과적으로 뒤흔들었다면, 시리아 내전에선 러시아의 교묘한 공습만으로 미온적이던 미국의 시리아 정책이 위기에 빠지는 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근현대사 학계에선 아프간 전쟁의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로 투쟁적 이슬람주의가 중동 전체에 확산한 점을 든다.
세속주의 정권에 실망한 중동 각국의 이슬람주의자들이 무슬림의 땅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에 맞서는 전투를 '지하드'(성전)로 여겨 전장으로 몰려왔다가 곳곳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오사마 빈라덴, 아이만 알자와히리, 압둘라 아잠,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 등 테러조직의 우두머리들이 아프간 전쟁에서 잉태됐다.
시리아 내전 역시 전세계 지하디스트를 끌어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제2의 아프간 전쟁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투쟁적 이슬람주의의 확산 범위와 대상, 속도 측면에서 아프간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여서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미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에선 시아파 정권을 돕는 러시아의 군사개입에 지하드를 벌여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고 수니파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알누스라전선)는 '십자군' 러시아를 상대로 종교적 항전을 선언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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