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세대 디자이너 진태옥 "옷으로 시를 쓰고 싶었다"

입력 2015. 10. 14. 06:31 수정 2015. 10. 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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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프랑소와즈 설립..올해로 데뷔 50주년 15일 특별전 '앤솔로지' 개막.."흰색은 내 상상력을 확장시켜줘"
한국 패션디자이너 1세대 진태옥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진태옥부띠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작업에 열중하는 진태옥 디자이너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진태옥부띠크에서 의상을 살펴보고 있다.

1965년 프랑소와즈 설립…올해로 데뷔 50주년

15일 특별전 '앤솔로지' 개막…"흰색은 내 상상력을 확장시켜줘"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이번 전시회는 제가 매 순간 최선을 다했나를 되돌아보는 일종의 반성문입니다."

국내 패션 디자이너 1세대인 진태옥(81) 씨가 16일 공식 개막하는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앤솔로지'(Anthology)라는 타이틀로 특별전시회를 연다. 올해는 그가 1965년 설립한 브랜드 '프랑소와즈'가 꼭 50년이 되는 해로 이번 전시회는 진 씨의 디자이너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

헤라서울패션위크의 공식 개막 전날인 15일에 시작돼 사실상 패션위크의 시작을 알리는 이 전시회에는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진 씨의 대표작 80여벌과 젊은 사진작가 5인이 그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이 행사에 대해 그는 "반성문"이라고 표현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부티크에 매일 나와 직접 챙기는 이 원로 디자이너는 최근 연합뉴스와 만나 "디자이너는 올 하나를 갖고도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내가 과연 그런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나, 혹여 때로는 소홀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며 '반성문'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 대해 "50년간의 작업을 모두 10가지 테마로 나눠서 정리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문집'이라는 의미의 '앤솔로지'로 정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선보일 자신의 작품을 '편지'에 비유했다. "제 옷을 사랑해주는 분들에 대한 편지이지요. 연도마다, 시즌마다 옷의 테마가 다 달라요. 옷을 보면 그때는 내가 이런 편지를 썼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어떤 때는 연애편지이고 어떤 때는 반성문이고, 또 어떤 때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에요. 그런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답니다."

그는 관람객들이 각기 다른 스타일의 옷에서 진태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모든 옷은 내 인격과 영혼은 진화를 보여준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과 함께 디자이너 본인도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옷이 점점 군더더기를 버리고 단순한 선과 색깔을 추구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세월의 변화가 낳은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다채로운 색깔과 패턴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중이 그의 대표작으로 기억하는 작품은 바로 화이트 셔츠다. 그는 화이트 셔츠만을 모아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흰색을 평가절하하는 패션계에서 흰색, 그중에서도 흰 셔츠에 천착하는 그의 작업은 파격적인 행보로 여겨진다.

그 자신도 이런 도전이 무모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해외 패션계에선 흰색을 배경색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흰색이야말로 내 상상력을 확장시켜준다"며 "흰색은 진태옥 그 자체이자 진태옥의 비전을 만들어주는 색"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50년 디자이너 외길을 밟으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도 바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화이트 셔츠가 세계적인 패션 평론가 수지 멘키스로부터 인정받았을 때를 꼽았다.

진 씨는 해외에서 연 패션쇼에서 그간 만든 흰색 의상을 모아 피날레 무대를 장식했는데 이 무대를 지켜본 멘키스가 자신을 찾아와 "네 작품은 시(詩)다"라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진 씨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간의 모든 어려움과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말을 듣는데 아, 이게 나의 마지막이구나. 나는 내 옷으로 시를 쓰고 싶었구나. 내 옷으로 내가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행복과 감동을 얻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때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가 쓴맛을 본 그는 멘키스의 호평에 결국 동양과 서양이 어느 지점에선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 순간까지 흰색을 기조로 한 작업을 계속할 계획임을 밝혔다.

"어쩌면 전 종점에 와있지 않나 싶어요. 지금보다 더 발전하겠다고 하면 욕심이고요. 그래도 멘키스의 얘기처럼 나에게 주어진 시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더 좋은 시로 만들지를 고민하고 싶습니다."

국내 패션업계의 역사를 쓰다시피한 1세대 디자이너답게 그는 후배 디자이너 육성과 패션업계 발전에도 발벗고 나섰다.

헤라서울패션위크는 사실상 진 씨가 동료 디자이너들과 함께한 행사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

이영희, 이신우와 더불어 1990년대 파리 패션계의 문을 두드렸다가 고배를 마신 적이 있는 그는 후배 디자이너 세대에선 K팝처럼 K패션도 전 세계 시장에 뻗어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자신이 해외 진출을 시도한 20년 전과 달리 대한민국의 국력이 강해졌고 젊은 디자이너들의 감각이 해외 유수의 디자이너 못지않다는 점에서다.

그는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는데 마치 파리 한 마리가 지나간 것처럼 흔적도 없더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지난달 전시회를 위해 파리에 갔다가 에펠탑에 프랑스 국기와 태극기가 함께 걸린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한류 여파로 한국 패션전에도 예전과는 다른 관심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는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패션감각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기'와 '철학'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기초가 밑바탕에 있지 않으면 그다음 단계를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기본을 모르는 유희는 졸작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저는 스태프들이 들어오면 기본부터 다시 시킵니다. 기본이 갖춰졌다는 판단이 돼야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게 하지요. 기본을 제대로 마스터하면 그때부터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요."

수많은 디자이너가 활동하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내보일 수 있는 '철학'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파리에 처음 갔을 때 르몽드 기자가 인터뷰하면서 '진태옥은 과연 누구냐'라고 묻더라고요. 그때 너무 당황했어요. 그리고 나만의 철학과 메시지가 분명한 옷이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솜씨 좋은 옷은 시장에 널렸잖아요."

그는 패션디자이너는 끝없는 노력이 필요한 직업이지만 그만큼의 보상도 따른다고 조언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시킬 때까지 끝없는 고통이 따르지요. 전 지금도 24시간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해 긴장하고 살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확 떠오른 영감으로 흡족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면 그 어느 때보다 큰 감동을 해요. 그런 점에선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없지 않나 싶어요."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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