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폭행사건 그 이후' 한교원이 털어놓은 이야기

김희선 2015. 10. 1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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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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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원(25·전북)에게 지난 5월 23일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날이다.

그는 이날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12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전반 5분 인천의 박대한과 서로 몸싸움을 벌이다 주먹을 날린 한교원은 다시 박대한에게 달려가 재차 주먹질을 했고 이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을 탔다. 프로축구연맹은 한교원에게 벌금 600만원과 6경기 출전 정지 중징계를 내렸고 소속 팀 전북도 벌금 2000만원과 사회봉사 80시간 징계를 내렸다.

무명 생활의 서러움을 털고 승승장구, 반듯한 성품에 태극마크까지 달며 '인생역전'의 아이콘으로 사랑받던 한교원이 벌인 사건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징계는 끝났고 한교원은 그라운드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때의 기억은 부끄러움과 아픔으로 남아 있다.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기. 그러나 한교원은 "내 잘못인 만큼 내가 혼나고 욕먹는 것은 상관없었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그를 괴롭혔던 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과 팀, 그가 속한 곳의 모든 이들이 함께 고통받는 상황이었다.

"나만 혼나면 되는데 모두를 불행하게 한 것이 마음 아팠다"는 한교원을 12일 완주군 율소리 봉동읍의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는데

"국가대표 아들 자랑을 하고 다니시다가 제가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로 어디 나가시지도 못하고 집에만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아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을 안 하시고…, 너무 죄송했어요. 축구를 하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모든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고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저 때문에 불행해지니까…."

6월의 어느 날. 주먹질 사건 후 봉사 활동을 하던 한교원에게 구단 직원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한교원은 잠시 말이 없다가 "나는 괜찮은데 부모님께 죄송스러워서 많이 힘들다"고 한숨처럼 대답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본지와 만난 한교원은 "내 실수고 내 잘못이니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나 하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다"며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부모님은 축구밖에 모르는 한교원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였다. 주먹질 사건이 벌어진 그날 놀란 목소리로 전화한 어머니를 달래 드리며 한교원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축구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걸 아시는 분들이다. 이대로 내 소중한 축구가 끝나 버릴까 봐 걱정하시더라." 한교원의 목소리에도 괴로움이 묻어났다. 그는 "나도 내가 축구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걸 안다. 부모님은 그걸 나보다 더 잘 아신다. 내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더 잘 아시니까 그 사건 때문에 많이 놀라고 걱정하셨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교원은 그날 라커 룸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스스로 너무 창피했다. 내 행동이 창피하고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고 얘기하며 "내가 왜 그랬을까 싶고, 순간적으로 모든 게 스쳐 지나가더라. 사실 겁도 많이 났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왜 주먹을 휘둘렀는지는 끝내 얘기하지 않았다. 그때 일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었고, 자신이 책임지고 가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그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죄송스럽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건 당시 한교원이 작성한 자필 사과문=전북 현대 제공.

◇다시 느낀 그라운드의 소중함

한교원은 K리그에서도 대표적인 '하류 인생'으로 꼽힌다. 고교 시절부터 주목받으며 수도권 대학에 입학해 화려하게 프로에 입성한 선수들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약팀으로 평가되는 충주 중앙초-미덕중-충주상고를 거쳐 조선대 입학을 꿈꿨지만 당시 조선대가 입학 정원이 다 찼다는 이유로 퇴짜를 놨다. 우여곡절 끝에 같은 재단의 2년제 대학인 조선이공대에 진학해 U리그에서 활약했지만 프로행은 언감생심 기대도 않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인천 감독이었던 허정무 감독이 한교원을 눈여겨보고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그를 지명하면서 조선이공대 최초의 K리거가 됐다. 인천에서 틈틈이 출전 기회를 얻어 활약하며 무명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한교원은 2014시즌을 앞두고 전북으로 이적했다. 이적 초반, 팀에 적응하지 못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후반기 기량이 만개해 생애 최초로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기쁨도 누렸다.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내가 (여기까지) 너무 급하게 올라와서 이런 일이 일어났나. 경기장에서 나도 모르게 안일하게 행동했던 것일까. 어느새 경기에서 이기기에만 급급해진 건 아닌가…."

"한창 좋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지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얘기한 한교원은 "사실 복귀전 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지 겁이 났다"고 털어놨다. 그의 복귀전은 지난 7월 8일 광주 FC와의 홈경기였다. 에닝요(34)가 팀을 떠나는 시기와 맞물려 한교원의 복귀는 조용히 이뤄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축구화 끈을 질끈 묶고 그라운드에 들어선 한교원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팬들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그라운드에 들어갔는데 팬분들이 이름을 연호해 주셨다. 가슴이 벅차게 끓어올랐다"고 그때를 떠올리며 "축구를 하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 너무 죄송했고 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다짐을 굳혔다. 그라운드의 소중함을 다시 가슴에 새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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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교원은 주먹질 사건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봉사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들이 많다고 했다.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그저 축구선수라는 것만 아는 보육원 아이들은 그에게 "이동국을 데려와라, 권순태는 왜 안 왔냐"며 졸랐다고 한다. "언제 한번 같이 가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며 웃는 한교원에게 대표팀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한교원은 "지금 내 경기력으로 태극마크는 욕심이다. 대표팀에 갈 수 있는 자격과 조건을 갖춰 경기력을 보여 줬을 때 가야 자신 있게 보여 줄 수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태극마크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다. "대표팀에 다녀왔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의 막연한 목표였던 때와는 다르다"며 의욕을 보였다. 물론 대표팀보다 먼저인 것은 소속 팀 전북의 리그 우승이다. 한교원은 "그 사건은 팀에도 마이너스가 됐다. 남은 스플릿 라운드를 죽기 살기로 해서 우승하겠다. 내가 마이너스 시켰던 걸 플러스로 만들겠다"고 뜨거운 각오를 전했다.

완주=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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