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독감백신 놔 드려요"..선심성 '탁상행정'에 노인들 '헛걸음'

이재윤 기자 2015. 10. 1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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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65세 노인 무료 예방접종 병의·원 가보니..병·의원 신청 의존, 백신 '격차' 문제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르포]65세 노인 무료 예방접종 병의·원 가보니…병·의원 신청 의존, 백신 '격차' 문제]

"병원을 찾아 갔는데 독감 예방접종이 없다고 해서 돌아왔습니다. 어느 곳에 가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날씨는 점점 추워질테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고 하는데 언제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서울 광진구 주민 최모씨(70대))

전국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독감(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이 실시 중인 가운데, 일부 지역과 병·의원에선 백신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 이달 1일부터 일선 병·의원에서도 무료로 접종 받을 수 있게 된 가운데 최근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예방접종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13일 오전 독감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서울 시내 일부 병원들에서는 독감 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찾아온 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접종 가능 여부를 물어보거나 수량을 확인하는 노인들의 전화도 꾸준히 걸려왔다.

서울 종로구 내 한 의원 원장은 "접종 희망자 예상보다 많이 몰려 당초 신청했던 백신 물량을 대부분 소진했다"며 "질병관리본부에 추가 물량을 신청했지만, 본부로부터 '일단 신청한 물량의 10분의 1정도만 지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절대적인 백신의 양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병·의원별 보유량의 격차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도심에서는 대형 노인회관 또는 양로원 등이 많아 노인 인구가 집중된 지역 또는 도서·산간 지역 등 백신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

의료계 한 관계자는 "당초 질병관리본부의 백신 공급이 실제 지역별 수요 예측에 기반하는 대신 각 병·의원의 자발적인 신청에 주로 근거해 지급되다 보니 한 쪽에서는 백신이 동이 나 발을 구르고, 다른 쪽에선 백신이 남아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원구 소재 한 내과 의원장은 "인근 정형외과 의원으로부터 '백신이 남아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며 "독감 백신 접종과는 평소 거리가 멀었던 정형외과 의원인데, 평소 물리치료 등을 위해 자주 찾던 노인 환자들이 몰리면서 당황한 기색"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일부 병·의원들은 애써 찾아온 환자들을 돌려보내면서 적지 않은 마찰이 벌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한 병원 의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백신) 신청 수량을 조사해 놓고 60%만 준다는 게 무슨 말이냐. 왜 미리 수량 공급을 준비하지 않고 이제 와서 이렇게 일을 처리하느냐", "'헬조선' 공무원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글을 올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부가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1일까지 이 사업으로 독감 예방접종을 받은 노인은 360만여명이다. 접종 시작 5일만에 237만6743명(목표치 560만명의 47%가량)이 몰린 것.

방역 당국은 최근 쌀쌀해진 날씨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으로 인한 경각심으로 공급 초기 노인들이 몰리면서 공급 2주도 안돼 품귀현상까지 벌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백신접종 가능 병의·원과 백신 수량 등도 확인 할 수 있는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http://nip.cdc.go.kr)등을 확인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한편 가까운 곳에서 예방접종을 받는데 성공한 노인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80대 노인 박모씨는 "매년 보건소까지 가서 며칠씩 기다리거나, 2~3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었는데, 병원에서 맞을 수 있어 매우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인 강모씨(68)도 "집근처에서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어 편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무료로 병원에서 백신을 접종한다는 것을 모르는 노인들이 많아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모씨(70)는 "병원에서 공짜로 예방접종을 해주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정부에서 홍보도 하지 않고 일부만 혜택을 받게 해주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털어놨다. 강모씨(70대)도 "현수막도 없고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재윤 기자 트위터 계정 @mto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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