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인생' 부푼 꿈 안고 가지만.. 귀농, 농사지을 땅이 없다

세종=이성규 기자 2015. 10. 1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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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폭증 속 땅 구입 별따기.. 돈 있어도 매입하기 힘들어

딸기농사를 짓는 귀농 3년차 A씨(39)는 올해 초 평당 10만원을 주고 1000평을 매입했다. 3년간 평당 2만원의 비싼 임대료를 주고 땅을 빌려 농사를 짓다 꿈에 그리던 자경농이 된 것이다. 그러나 A씨가 산 땅은 평당 7만원 정도다. 시세보다 30% 넘게 비싸게 샀지만 A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귀농인들끼리 경쟁이 붙어 하마터면 평당 10만원에도 엄두를 내지 못할 뻔했기 때문이다.

과수농 B씨(55)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귀농 4년째인 올해 초 땅주인이 급전이 필요하다며 평당 6만원에 700평을 살 것을 권했다. 동네 주민들은 “바가지를 썼다”고 수군댄 반면 예비 귀농인들은 “정말 싸게 좋은 땅을 샀다”고 말했다. B씨는 13일 “귀농인들이 농사지을 땅을 구입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며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5년 전 귀농한 C씨(46)는 귀농 초기 사기를 당할 뻔했다. 귀농 희망 지역 인근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평당 7만원에 좋은 땅이 있다는 소개를 받고 가계약을 했다. 그러나 정식 계약 직전 우연히 땅주인을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주인은 5만원에 계약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농간을 부린 것이다. 항의하는 C씨에게 중개인은 “그 정도 소개비는 당연하다”며 생떼를 부렸다. 이들 3명은 지난 8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귀농·귀촌 우수 사례 대상자로 선정한 ‘상위 1%’ 귀농인이다.

귀농인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귀농의 터전인 농지 임차와 구입의 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귀농 현장에서는 농사지을 만한 땅의 임차와 매입 모두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갈수록 비싸지고 작게 쪼개지는 우리 농지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귀농해도 땅 구하긴 하늘의 별 따기=지난해 귀농·귀촌자는 4만4682가구로 2010년 4067가구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최근 3년 새 농촌에 살러 오는 귀촌인은 급증하고 있는 반면 농사를 직업으로 삼는 귀농인은 1만1000가구 안팎에서 정체돼 있다. 귀농인 정체의 가장 큰 원인은 농지 임차와 구입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귀농·귀촌인의 정착실태 장기 추적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 장애요인 중 농지 구입을 꼽는 비율은 2008년 이전 20.1%에서 2014년 28.8%로 급증했다. 귀농 장애요인으로 여유자금을 꼽은 응답자가 같은 기간 45%에서 44%로 오히려 감소한 점을 보면 돈은 있어도 좋은 농지를 사기 힘들어진 셈이다. 농식품부는 귀농인 2명 중 1명꼴로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고 농지를 빌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 초보 농사꾼이 땅을 망친다는 선입견에 잘 빌려주려 하지 않고 임대료도 비싸게 받는다. 농지 확보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귀농인들의 재배 면적도 영세화되고 있다. 귀농자 중 1500평 이하 영세농 비중은 2012년 70.3%에서 지난해 75.0%로 늘었다.

◇비싸지고 줄어들고, 쪼개지고…농지 삼중고 해결책은?=귀농인들이 편하게 농지를 확보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귀농인에 대한 텃세와 악성 토지 브로커 근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단기 해결책일 뿐이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30대 귀농인이 4.5% 감소한 데는 농지 가격이 1년 새 16.38% 오른 것을 주된 이유로 보고 있다. 밭과 논을 포함한 농경지는 2000년 188만8765㏊에서 169만1113㏊로 10% 넘게 줄었다. 여기에 농촌 고령화의 영향으로 농지 세분화가 심해지고 있다. 1000평을 가진 고령농이 사망해 3자녀에게 농지를 물려줄 때 33%씩 농지가 쪼개지는 사례는 향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런 삼중고를 겪는 농지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귀농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일단 내년 90억원의 예산으로 귀농 1∼2년차 청년층을 대상으로 소규모 농지임대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귀농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농지의 공정단가를 공식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독일처럼 농지 세분화를 막기 위해 상속 농지를 일괄 승계할 경우 세제상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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