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심판 수당 5만 9000원, 열정페이일까?

김형준 입력 2015. 10. 13. 16:22 수정 2015. 10. 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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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심판이 되다] ⑦ 포청천의 적자 가계부

“그래서 얼마 받냐, 쏠쏠하겠는데?”

기자가 심판 활동을 다시 시작한 뒤 만난 지인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심판 활동을 통한 ‘부수입’이다. 심판 활동에 대한 이런 저런 궁금증은 ‘심판 수당’으로 귀결된다. 축구 경기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데다, 경기 배정을 받는 날이면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하는 일이 다반사인지라 묻는 사람이 기대하는 답은 꽤나 쏠쏠한 액수일 테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질문을 받은 기자의 얼굴엔 썩은 미소가 번진다. 되돌아가는 답은 이렇다. “돈 보고 할 일은 정말 아닌 것 같아”

●소중한 첫 심판 수당 ‘5만 9000원’

기자의 첫 심판 수당은 지난달 19일 서울 성동구 동명초등학교에서 열린 ‘2015 대교눈높이컵 전국 초등 축구리그’에 배정 받아 뛴 몫으로 받은 5만 9,000원이다. 초등부 경기의 심판 배정 수당 기준은 주심 2만 9,000원, 부심 1만 9,000원, 대기심 1만 2,000원. 여기에 이날 배정된 모든 심판원에 하루 출장비 21,000원이 더 붙는다. 이날 기자가 받은 5만 9,000원은 부심 2회(1만 9,000원x2)에 출장비(2만 1,000원)가 더해진 금액으로, 이는 사실상 심판 배정 시 주어지는 ‘최저임금’이라고 볼 수 있다.

액수로만 봤을 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고 볼 수 있는 금액이다. 실제 경기 투입시간만으로 보면 꽤 괜찮은 금액이다. 전-후반 25분씩 50분의 경기시간에 하프타임까지 포함하면 약 1시간당 적게는 1만 2,000원에서 많게는 1만 9,000원의 시급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전히 출전 시간만으로 계산하기엔 무리가 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10시경부터 경기장으로 나와 경기장 상태와 장비 등을 점검하고 이날의 모든 일정이 끝난 오후 5시경이 돼야 ‘퇴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주말 하루 한나절을 들인데다 출장비에 교통비와 식비까지 포함된 점까지 고려하면 5만 9,000원이란 일당은 많다고 보기도 힘든 액수다. 이마저도 매주 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회가 없는 동절기에는 자연히 모든 심판 활동도 멈춰 기대 수익 또한 사라진다.

사진=soccerboom.net

●적자를 안고 시작하는 심판들

심판의 가계부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모든 심판들은 기본적으로 적잖은 적자를 안고 활동을 시작한다. 합격 이후에 드는 비용만 따져봐도 목돈이다. 심판복 상의 3벌과 하의 1벌, 트레이닝복 상·하의, 검정색 축구화와 스타킹, 심판용 가방 등은 대한축구협회 지정 브랜드인 아디다스의 제품으로 구매해야 한다. 여기에 파우치, 손목시계, 휘슬, 레드카드, 옐로우카드, 부심기 등 심판 활동에 필요한 모든 물품 역시 심판의 개인 비용으로 구매한다. 2006 신인심판의 경우 ‘실전테스트’ 명목으로 다녀 온 경북 경주 대회 출장비가 온전히 개인부담이었다. 선택사항이지만 심판들의 노조 격인 심판협의회에 가입하게 될 경우 지역별로 20만원~30만원의 가입비 및 연회비가 추가된다.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100만원 가까이 되는 적자를 안고 심판 활동을 시작하는 셈이다. 고정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을 테지만, 학생 또는 고정적 수입이 없는 이들에겐 큰 부담이다.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4급 심판은 “심판 합격 후 활동에 필수인 심판복 및 장비를 구입 비용이 커 (활동을)시작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비용 때문에 합격 후에도 활동을 꺼리다 그만 두는 심판원도 존재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기자 역시 심판에 입문했던 10년 전, 활동 초반 드는 비용이 커 축구화 구매를 미룬 채 ‘임시로’신었던 타 브랜드의 축구화를 아직도 신고 있다. 사진=soccerboom.net

●“심판은 명예직이다” 강조하는 이유

하지만 이를 무턱대고 ‘열정 페이’의 개념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대한축구협회도 수년 전부터 심판 활동비 현실화를 추진해왔다. 주심 배정 수당의 경우 약 7년 전인 2008년 기준과 비교해 보면 초등부는 경기당 5,000원(2만 4,000원→2만 9,000원), 중등부 6,000원(3만 1,000원→3만 7,000원), 고등부 8,000원(4만 2,000원→5만원), 대학/일반 1만 1,000원(5만 4,000원→6만 5,000원) 이 올랐다. 연차와 경력을 충분히 쌓은 뒤 성인 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심판 수당도 크게 뛴다. 실업축구인 내셔널리그 주심은 출장비를 제외하고도 주심 12만원, 부심 9만 6,000원, 대기심 8만 4,000원의 수당을 받는다. 국내 최정상급인 K리그 클래식의 경우 주심과 부심, 대기심에 각각 200만원과 100만원, 50만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물론 국제 심판 휘장을 달면 그만한 처우와 명예도 따른다.

프로 심판쯤 되면 ‘전업 심판’도 가능하겠다 싶겠으나, 심판 수당만 바라보며 활동하는 심판은 극히 드물다. 심판의 연령층은 고등학생부터 기업 중견급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자긍심을 먹고 사는 ‘명예직’이길 자처한다. 심판계 내부에서도 되도록 고정적 수입원을 가져가며 심판 활동을 하길 권하는 입장이다. 최근 일간스포츠를 통해 소개된 ‘환경미화원이 된 국제 심판(▶기사보기(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818040&cloc=))’ 역시 같은 이유에서 취업을 택했다. 심판 수당 의존도가 클수록 대회가 없는 동절기나 오심으로 인한 징계 기간 동안 수입이 끊기면 자칫 ‘검은 유혹’에 빠져 심판계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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