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시술 후 잇단 실명..가스 문제인가 의료 과실인가

2015. 10. 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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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중국산 C3F8 가스 때문' 추정..수술 실패율도 15% 달해 산업용 수입된 가스가 의료용으로 둔갑, 정부 관리체계 '구멍'

병원 '중국산 C3F8 가스 때문' 추정…수술 실패율도 15% 달해

산업용 수입된 가스가 의료용으로 둔갑, 정부 관리체계 '구멍'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대학교 병원에서 눈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잇따라 실명(失明)하거나 시력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병원 측은 시술에 쓰인 의료용 가스(C3F8·과불화프로판)가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으나 의료 과실 가능성도 있어 사건은 경찰 수사로까지 번졌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의료용 가스가 허가된 의약품이 아닌 반도체 제조 등 산업용으로 수입된 제품이며 이를 관리하는 정부 기관·부처도 명확하지 않아 관리체계에 구멍이 드러났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 시력상실 사고부터 고소까지

지모(60·여)씨는 지난 1월 21일께 제주대병원에서 왼쪽 눈의 망막이 찢어지는 망막박리 증상으로 의료용 가스를 주입해 치료하는 시술을 받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되도록 눈이 빨갛게 변하며 차도가 없자 병원을 다시 찾은 지씨에게 담당의는 "문제가 생긴 것 같다. 항생제를 넣고 차도를 지켜본 뒤 재수술하자"고 권했다.

지씨는 보름 뒤 재수술을 받았으나 왼쪽 눈은 더욱 나빠졌다.

이후 서울대학교 병원에 찾아갔으나 "망막 괴사 증세가 나타났다. 시력 회복은 불가능한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지씨가 재시술 받을 무렵인 2월 3일 또 다른 피해자인 이모(40)씨 역시 망막박리 증상으로 오른쪽 눈에 의료용 가스를 주입하는 치료 시술을 같은 담당의 A씨로부터 받았다가 재시술 끝에 실명했다.

경찰관인 장(46)모씨는 다른 담당의 B씨로부터 2월 11일 직무수행상 왼쪽(1.0)과 오른쪽 눈(0.4)의 시력 편차를 줄이기 위해 시력 교정 시술을 받았다가 한쪽 시력을 잃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망막혈관 폐쇄증으로 망막이 괴사해 시력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외에도 홍모(62)씨는 2월 6일께 망막박리 증상으로 오른쪽 눈에 대한 치료 시술을 받았으나 현재 상측 망막 위축 증상을 보이며 시력이 1.0에서 0.6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들 모두 제주대병원 담당의 2명으로부터 C3F8 가스를 눈에 주입해 치료하는 시술을 받은 뒤 이 같은 증상을 보인 것이다.

제주대병원은 2011년 4월 망막박리 시술 등에 사용하기 위해 러시아산 C3F8 가스를 처음 구입해 사용한 뒤 가스가 다 떨어지자 올해 1월 20일께 중국산 가스로 교체했다.

병원은 눈 시술을 받은 환자들에게서 연이어 실명 등 문제가 발생하자 자체 원인 조사를 거쳐 중국산 C3F8 가스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 교체한 지 한 달이 지난 2월 21일께 해당 가스 사용을 중단했다.

이 기간 문제의 가스로 시술을 받은 환자는 4명, 가스에 간접 접촉한 환자 1명 등 가스에 노출된 환자는 모두 5명으로 알려졌다.

이 중 3명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1명에게서는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났으며 가스에 간접 접촉한 환자 1명은 지금까지 이상 증세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지난달 21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담당의사를 경찰에 고소한 데 이어 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 가스 문제인가 의료 과실인가

병원에서 눈 시술을 받은 환자들이 잇달아 실명하자 병원 측은 사고의 원인을 시술에 사용된 중국산 가스 탓으로 돌렸다.

병원 측은 "병원 보험사 측으로부터 '망막혈관 폐쇄는 가스의 독성에 의해 초래됐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실명의 원인이 망막혈관 폐쇄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가스 주입 외에 실명을 초래한 다른 요인이 없고 시술 상의 과실로 보기 어려운 만큼 손해배상의 책임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시술에 쓰인 가스가 문제일 수 있다는 병원 측 설명을 듣고 가스 성분 분석 등 사고 원인을 조사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병원 측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 등 보건 당국에 가스 성분 분석을 의뢰했지만 7개월이 넘은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병원 측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는 중국산 C3F8 가스는 애초 산업용으로 수입돼 제주대병원 등 전국 다른 병원으로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가스는 중국의 한 제조업체에 의해 지난해 1월 11일께 만들어져 국내 A 가스수입업체를 통해 40㎏ 상당이 수입됐다.

가스는 이후 3개의 도·소매상을 거쳐 지난 1월 20일께 제주대 병원에 3㎏이 납품됐다.

제주대병원에서의 잇단 실명 사고를 수사하는 경찰은 눈 시술에 사용한 가스를 임의제출 받아 13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해당 중국산 가스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국과수 분석 결과를 통해 가스 자체에 독성이 있는 지 유무와 가스가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국내에 유통됐는지 등 유통경로를 조사할 예정이다.

반면 제주대병원의 의료과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해자들의 주된 증상인 망막박리는 망막층이 찢겨 망막 일부 또는 전부가 안구벽과 분리돼 떨어지는 현상이다.

망막은 안구의 가장 안쪽을 덮은 투명한 신경조직으로 각막과 홍체 수정체를 거쳐 도달한 많은 시각 정보를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망막이 안구벽에서 이탈되면 일부 광신호가 뇌에 전달되지 않아 시야에서 날파리나 검은 점, 그림자 등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제주대병원은 피해자들의 망막박리 치료를 위해 C3F8 가스를 눈에 주입하는 기체망막유착술을 시행했다.

기체망막유착술은 안구 중앙부위에 가스 방울을 넣어 팽창하는 가스의 힘이 분리된 망막을 다시 안구벽에 붙도록 하는 시술 방법으로, 시술자의 숙련도 등에 따라 실패율이 15%에 달한다.

시술 성공률을 100%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시술상 과실이 있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 산업용 가스가 의료용으로 둔갑?

제주대병원에서 눈 시술에 사용한 C3F8 가스가 허가된 의약품이 아닌데다 이를 관리하는 정부 기관·부처도 명확하지 않아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술에 사용된 이 C3F8 가스는 의약품으로 허가된 제품이 아니라 중국에서 산업용으로 수입된 것이다.

수입 업체는 해당 가스에 대해 반도체 제조공정 등에 쓰기 위한 산업용이며 의료용으로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가스가 여러 가스업체를 거쳐 어떻게 제주대병원에 의료용으로 납품됐는지의 과정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식약처는 의료행위에 사용하는 각종 가스를 '의료용 고압가스'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의료용 고압가스에 대한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도 마련해 올해 7월부터 적용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C3F8의 경우 안구에 직접 주입되는 가스임에도 '의료용 고압가스'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식약처는 지난 2월 제주대병원이 성분 분석을 의뢰했을 때 "허가된 의약품이 아니라 분석할 수 없다"며 고압가스 관련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로 문의하라고 안내했으며,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우리가 품질 검사를 하도록 규정돼 있지 않다"며 공을 다시 식약처로 넘겼다.

환자 3명이 잇따라 실명했는데도 이처럼 식약처, 산업부, 가스공사, 보건복지부 등 각 기관·부처가 서로 공을 넘기는 사이에 수개월의 시간이 흐르도록 사고 원인 규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허가된 의약품은 허가할 때의 성분이나 함량 기준을 바탕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허가되지 않은 제품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분석할 수가 없다"며 "우리가 의료행위에 사용되는 모든 제품을 다 의약품으로 등록해서 관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료법상 의사가 학술연구나 논문 등을 근거로 의료행위에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식약처에서 허가한 의약품이 아니더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대병원은 이 가스는 독성 보고가 없어 수십년 동안 여러 병원에서 안구 내 주입 용도로 사용됐으며, 최근 문제가 된 가스로 교체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눈 시술에 쓰이는 해당 가스의 품질 관리와 유통 경로 등을 맡아서 관리·감독할 정부 기관·부처가 어딘지, 어떤 법을 적용해 규제해야 할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현재 전국 안과 가운데 제주대병원과 같은 중국산 가스를 사용하는 병원이 몇 곳이나 되는지, 이 가스가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혹시나 모를 또 다른 피해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문제가 된 가스의 유통 경로를 밝혀 안전성이 담보될 때까지 해당 가스를 납품받은 병원에서의 사용 중단 명령 등 정부의 발빠른 대처가 필요하지만 적용할 규제나 해당 부처가 모호해 적적한 조치를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 해당 가스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피해자가 더 나온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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