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미워 마세요"..어느 길냥이의 생존투쟁기

입력 2015. 10. 13. 12:38 수정 2015. 10. 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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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경제=서지혜 기자] 내 이름은 레오입니다. 귀엽기로 유명한 터키쉬 앙고라 종으로, 터키 고산지방의 쌀살한 기후를 견디기 위해 긴 털을 가진 게 특징입니다.

새끼일 때 거실이 넓고 커다란 소파가 있는 집에 입양돼 살다가, 이 곳 서울의 한 재개발 아파트 단지로 이사온지 두 달째입니다.

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유난히 예뻐하던 주인은 언젠가부터 ‘털이 많이 빠진다’며 화를 내기 시작하더니, 두어 달 전 이곳에 날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주인 없이 떠도는 길냥이(길고양이)는 100만 마리, 서울에만 25만 마리(2013년기준)가 살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모래와 돌 뿐인 허허벌판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 곳’을 찾는 건 그야말로 생존투쟁이었습니다.

우리 고양이들은 ‘영역’이 중요한 예민한 동물입니다. 다른 고양이가 영역을 확보한 곳을 기웃거렸다가는 피 튀기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지난 두달 간 위험한 물건이 도사리는 재개발 단지에서 어두운 밤에 돌아다니다 사고를 당하거나 로드킬로 죽는 친구들을 수차례 목격한 이후로는 밤이 되면 자동차 밑이나 구멍 등 숨을 곳을 찾는 게 더 급선무입니다.

그렇게 몇 주를 헤매다 한 30대 캣맘을 만났습니다. 캣맘은 매일 퇴근할 때마다 제가 살던 트럭 밑에 찾아와 참치를 놓아주었습니다. 정성스레 작은 보금자리도 만들어줬습니다.

캣맘은 한 달에 10만 원 가량을 들여 먹을 것을 사 주고, 구내염으로 고생할 때는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캣맘이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한 할아버지가 쇠파이프로 뒤에서 캣맘을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입니다.

‘끼야악!’ 하는 비명을 여러 차례 질렀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캣맘은 그렇게 몇 차례를 맞고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굶주릴 즈음 캣맘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나를 좀 더 으슥하고 좁은 골목으로 데려갔습니다. “여기가 가장 안전할 것 같다”며 다시 보금자리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안락함도 잠시였습니다. 좁은 골목은 더욱 위험했습니다. 무시무시한 사람들은 골목 곳곳에 쥐덫을 놓기도 했고, 캣맘이 만든 밥그릇과 집을 부수고 가기도 했습니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고양이는 다 죽어 없어져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맞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주인 없이 떠도는 길냥이(길고양이)는 100만 마리, 서울에만 25만 마리(2013년기준)가 살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밥을 주니까 고양이가 많아진다”

그들은 늘 캣맘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틀린말은 아닙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저 처럼 주인 없이 떠도는 길냥이(길고양이)는 100만 마리, 서울에만 25만 마리(2013년기준)가 살고 있으니까요.

길냥이가 늘면서 캣맘도 덩달아 많아졌습니다.

서울대학교 수의대 연구팀 인간동물문화연구회가 지난 2014년 1월~3월 전국 캣맘ㆍ캣대디 2441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최근 5년간 우리 길냥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캣맘도 덩달아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응답자 중 52%는 1년~5년 정도의 길냥이 돌봄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응답자 중 1034명은 길냥이의 먹이제공에 월 3만~10만 원 가량을 쓴다고 합니다. 중성화 수술에 3만 원 미만의 돈을 쓰는 사람도 233명이나 됩니다. 

재개발아파트의 길고양이를 입양하기 위해 나선 카라 활동가들. [사진제공=카라]

우리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 3만 원 미만의 비용을 대고 치료를 해 주는 사람도 786명이나 됐습니다.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얼마 전 한 캣맘이 친구를 위한 집을 짓다 누군가 던진 벽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캣맘이 없으면, 우리 길냥이들은 모두 죽게됩니다.

사람들은 TNR(중성화) 수술이 대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일관된 정책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또 수술만 하고 원래 살던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새로운 생존투쟁에 내몰리게 됩니다.

골목마다 도사리는 쥐와 같은 설치류 숫자를 조절하는 것도 우리의 일입니다. 알고 보면 사람들을 위해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길에서 나고 자랐지만 최근 급격한 도시화로 갈 곳을 잃었습니다. 굶어죽는 길냥이들이 많아지면서 캣맘들이 나타났습니다.

캣맘을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우리 길냥이들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gyelove@heraldcorp.com

이 기사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박아름 활동가로부터 자문을 얻은 내용을 바탕으로 길고양이와 캣맘이 처한 위험과 대안에 대한 내용을 길고양이의 시각으로 각색한 내용입니다. 

▶2014년 한 해 버려진 유기동물(개:5만9000여 두,고양이:2만1000여 두)

* 반환율 13% 
* 재입양율 31.40% 
* 안락사 1만8436두 
(출처: 농림축산검역본부)  
  
▶캣맘활동경력  

* 6개월 382명 
* 1년 380명 
* 1~5년 1269명 
* 5년 316명 
* 10년 93명 
  
▶길고양이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 먹이급여 2394명 
* 물 급여 1947명 
* 건강관리 798명 
* 쉴곳/잘곳제공 691명 
* 중성화수술 549명 
* 새끼입양 224명 
* 기타 4명 
  
▶길고양이 먹이급여에 월 지출 비용
  
* 3만원 미만 769명 
* 3~10만원미만 1034명 
* 10~30만원 미만 544명 
* 30만원 이상 18명 
* 기타  0명 
  
▶길고양이 치료비에 월 지출 비용  

* 3만원 미만 786명 
* 3~10만원 미만 171명 
* 10~30만원 미만 50명 
* 30만원 이상 5명 
* 기타 174명 
(출처:서울대학교 수의대 연구팀 인간동물문화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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