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조상우, 제 2의 오승환 위한 '21살의 성장통'

조회수 2015. 10. 11. 09: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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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우완 조상우(21)는 요즘 KBO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국내 투수일 것이다. 스피드건에 찍히는 구속보다 타자들이 느끼는 위압감 면에서는 더욱 그럴 테다. 150km 중반을 찍는 숫자도 무섭지만 묵직하게 돌덩이가 들어오는 것 같은 구위는 무시무시할 것이다.

생애 첫 태극마크 발탁이 발표된 당일 조상우는 압도적 존재감을 뽐냈다. 지난 7일 SK와 와일드카드(WC) 결정전에서 조상우는 8회부터 연장 10회까지 3이닝 3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를 펼쳤다. 최고 154km를 찍은 힘잇는 직구는 복판으로 몰려도 SK 타자들의 방망이가 밀리기 일쑤였다. 흡사 '돌부처' 오승환(33 · 한신)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5-4 연장 11회 끝내기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천금투였다.

그래서 조상우는 올해 가을야구에서 넥센의 가장 믿을 만한 필승 카드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현재 조상우의 구위가 가장 좋다"면서 "8, 9회 최대한 승부처에서 투입할 것"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 '꼭 최고 마무리 될 거야' 넥센 조상우가 지난 7일 SK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역투를 펼친 뒤 힘차게 주먹을 뻗는 모습.(자료사진=넥센) >

그런 조상우 카드가 일단 실패했다. 조상우는 10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PO) 1차전에서 9회말 1점 차 리드를 지켜내지 못했다. 2이닝 2피안타 1실점, 특히 볼넷 3개, 몸에 맞는 공 1개를 내준 게 아쉬웠다. 결국 넥센은 연장 10회 3-4 끝내기 역전패를 안았다.

이날 경기는 넥센의 의도대로 진행됐다. 깜짝 선발 양훈이 5⅓이닝 1실점으로 버텨줬고, 타선도 상대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에 7회까지 2점을 뽑아줬다. 박동원-박병호 양박이 솔로포로 터졌다. 박병호는 2-2로 맞선 8회 희생 플라이로 앞서가는 타점을 올리는 등 4번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넥센은 3-2로 앞선 8회 지체없이 조상우를 올렸다. 2이닝을 조상우에게 맡겨 1점 차 승리를 지키겠다는 시나리오였다. 지난 SK전에서 보인 구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계산이었다. 조상우도 8회 안타 2개를 맞았지만 범타 3개로 이닝을 마쳐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조상우의 무거운 구위에 두산 타자들의 타구는 제대로 뻗지 못했다.

하지만 9회 조상우는 스스로 무너졌다. 제구가 흔들리면서 안타 1개 없이 볼넷과 사구로만 실점했다. 1사 후 김재호를 '석연찮은' 사구로 내보낸 게 시발점이었다. 4구째 몸쪽으로 붙인 공이 방망이를 쥔 김재호의 손을 스쳤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중계 화면상으로는 접촉이 있었는지 갸우뚱거릴 상황이었으나 구심은 김재호에게 1루로 가라는 사인을 보냈다.

이후 조상우는 좌타자 정수빈과 우타자 허경민에 연속 볼넷을 허용했다. 조상우의 복판 직구는 여전히 두산 타자들의 방망이가 밀릴 만큼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풀 카운트에서 조상우의 직구는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벗어났다. 민병헌을 삼진으로 돌려세워 한숨을 돌리는 듯했지만 조상우는 김현수를 상대로도 잇따라 볼이 빠지면서 밀어내기 동점을 허용했다. 이후 제구가 잡혀 양의지를 삼진으로 잡았지만 넥센의 정규이닝 승리는 날아간 뒤였다.

▲항상 뒤에 있던 손승락 형이 없다

사실 갓 20살을 넘긴 조상우에게 팀의 마무리는 힘겨울 수 있다. 이제 KBO 리그 풀타임 2년차의 신인급 선수, 더군다나 정규리그에서 조상우의 보직은 마무리가 아니었다. 그에 앞서 등판하는 승리조, 이를테면 삼성의 안지만(32)과 같은 역할이었다. 지난해 조상우는 48경기 6승2패 11홀드 평균자책점(ERA) 2.47을 기록했고, 올해는 70경기 8승5패 19홀드 ERA 3.09를 찍었다.

올해 세이브도 5개가 있었지만 전문 마무리 역할은 아니다. 그동안 넥센의 마무리는 손승락(33)이었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2010년까지 통산 세 차례나 구원 1위에 오른 정상급 클로저가 엄연히 있었다. 다만 올해 손승락의 구위와 자신감 저하로 조상우가 이따금씩 그 역할을 대신했을 뿐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대부분 마무리까지를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이었다.

< '형이 이젠 네 뒤가 아니구나' 10일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등판한 넥센 손승락(왼쪽)과 조상우.(잠실=넥센) >

하지만 가을야구 들어 사실상 팀 마무리의 중책을 조상우가 안은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손승락과 한현희(22)까지 넥센 필승조 3인방 중 가장 구위가 빼어난 까닭이다. 여기에 조상우의 구위가 워낙 좋아 만약 뒤에 나오는 투수들의 공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보일 수 있다는 역설적 상황도 생긴다. 10일 경기에서도 양훈-손승락-한현희에 이어 등판한 까닭이었다.

팀 최후의 보루, 그 무게감은 엄청나다. 하물며 매 경기가 살얼음인 가을야구임에랴. 21살이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자리다. 더군다나 조상우는 1이닝만 책임지는 일반적 마무리와 달리 팀 형편에 따라 2~3이닝까지 소화해야 하는 부담까지 있다. 10일 두산전에서 '조상우가 9회, 1이닝만 던졌다면?'이라는 가정이 불현듯 생각나는 이유다.

조상우는 지난해 가을야구 경험이 있고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팀의 마지막 투수는 아니었다. LG와 PO, 삼성과 한국시리즈(KS)에서 맹위를 떨쳤지만 선발 다음이거나 팀의 3, 4번째 투수였다. 항상 뒤에는 한현희나 손승락 등 든든한 선배들이 있었다. 팀의 마무리 보직은 이번 가을야구가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SK와 WC 결정전에서도 조상우는 팀의 마지막 투수는 아니었다.

사실 조상우는 지난해 삼성과 KS 1차전 승리투수가 된 원동력으로 손승락을 꼽았다. 당시 선발 앤디 밴 헤켄에 이어 7, 8회 2이닝 동안 3탈삼진 완벽투를 펼친 조상우는 "동점 상황에 올라와서 최대한 집중해서 던지려고 했다"면서 "또 뒤에 든든한 마무리 손승락 형이 있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던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손승락이 9회를 책임졌다. 그만큼 마무리냐, 아니냐는 심리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오승환-조용준, 최고는 경험이 중요하다

신인급 마무리가 가을야구 맹활약을 펼친 사례는 많지 않으나 있긴 있다. 조상우의 팀 선배 조용준(36)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 오승환이 대표적이다. 조 위원은 구속은 빠르지 않았으나 '조라이더'로 불렸던 슬라이더로 리그를 평정했다. 오승환은 조상우에 앞서 돌직구를 뿌려대며 타자들을 윽박질렀던 원조다. 둘 모두 마무리에 적합한 강철 멘탈로 공격적인 승부를 즐겼다.

< '마무리 MVP 듀오' 2004년과 2005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당시 현대 조용준(왼쪽)과 당시 삼성 오승환.(자료사진=연합뉴스, 삼성) >

먼저 조 위원은 2002년 현대 입단 첫 해부터 마무리를 꿰찬 케이스다. 64경기 9승5패 28세이브(2위) 4홀드 ERA 1.90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2003년 첫 KS를 치른 뒤 2004년 삼성과 KS에서는 시리즈 MVP까지 올랐다. 당시 9차전까지 갔던 시리즈에서 7경기에 나와 3세이브 12⅓이닝 11탈삼진 무자책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역사적인 9차전 우중혈투 마지막에 마운드에서 환호했던 투수였다. 당시 조 위원도 올해 조상우처럼 KBO 리그 3년차였다.

오승환은 신인 시절인 2005년 KS 최우수선수였다. 당시 두산과 시리즈에서 1승1세이브 7이닝 11탈삼진 무자책의 완벽투를 펼쳤다. 그해 오승환은 정규리그에서 61경기 10승1패 11홀드 16세이브 ERA 1.18을 기록했다. 당초 전문 마무리는 아니었으나 권오준(당시 17세이브)과 뒷문을 함께 막았고, 이듬해부터 최고의 클로저로 KBO 리그를 평정했다. 일본에서도 2년 연속 구원왕에 오르며 한일 최고 마무리로 우뚝 섰다.

하지만 이들과 조상우를 비교하기는 무리다. 조 위원과 오승환 모두 당시 대졸 출신으로 23살에 KBO 리그에 데뷔했다. 조상우도 KBO 리그에서 경험을 쌓긴 했지만 이들은 어쨌든 더 성숙한 상황에서 프로에 입단한 것이다. 여기에 조 위원은 마무리로서 경험이 풍족했고, 오승환은 그래도 2005년 세이브 상황이 꽤 있었다. 세 명 중에서 조상우가 아무래도 마무리는 가장 생경한 것이다.

사실 조상우는 지난해 삼성과 KS 기간 "잘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변화된 가을야구 보직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두산과 준PO 1차전, 차라리 동점이었다면 더 편하게 던졌을 테지만 1점 차 리드라 긴장감이 더했다. 염경엽 감독은 물론 두산 김태형 감독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볼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 '너무 힘을 줬나' 넥센 조상우가 10일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역투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

조상우는 두산과 준PO를 앞둔 9일 미디어데이 마지막 발언 때도 손승락을 언급했다. 조상우는 "불펜에서 가장 힘들게 고생하신 손승락, 한현희 형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면서 특히 "아낌없는 조언해주시는 승락 형에게 힘이 돼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손승락의 올 시즌 부침을 옆에서 지켜보며 누구보다 마무리의 고충을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면서 조상우는 "SK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처럼 공 한 개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조상우는 불펜 투수, 특히 마무리의 험난한 여정을 선배의 조언이 아닌 자신의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제 2의 오승환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스톤-파이어볼러' 조상우. 과연 마무리의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이겨내고 29인치 두둑한 허벅지만큼 강하고 단단하게 일어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조상우는 이제 21살이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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