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심사 '눈물의 14만명'

윤호우 선임기자 2015. 10. 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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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하한선 기준에 미달된 지역구 의원들 울상… 도시·농촌 지역구수 재검토 요구

경북 김천이 지역구인 이철우 의원실에서는 매달 말일 김천시 인구를 확인한다. 지난 7월 말 김천시 인구는 13만8278명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지역구 의석 수를 기존의 246석으로 결정할 경우 기준 인구 하한선은 13만9473명이었다. 만약 선거구 획정위에서 인구 산정일을 7월 말로 할 경우 김천은 불과 1195명 차이로 인구 하한선에 미달되는 셈이었다. 미달되면 다른 지역구와 통합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한 달 뒤인 8월 말 김천시의 인구는 14만명을 돌파했다. 14만15명이 되면서 이철우 의원실은 시름을 덜었다. 몇 달 동안 인구 수를 확인하면서 14만명을 언제 돌파할 것인가 애를 태워 왔는데, 뜻을 이룬 것이다. 국회 내 정개특위나 중앙선관위의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결정을 미루면서 인구 산정일 기준이 늦춰진 것도 김천에는 행운이 됐다. 7월 말을 기준으로 한다면 하한선에 미달되지만 8월 말 이후 기준으로 한다면 미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천시 인구는 9월 말 기준으로 14만78명으로 8월 말보다 더 늘어났다. 김천은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최근 전입 인구가 늘고 있다.

김천, 8월말 14만명 돌파 시름 덜어 김천과는 정반대로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바뀐 지역구가 있다. 7월 말에는 하한선을 넘었던 인구 수가 8월 말 13만9455명으로 줄어든 강원도 속초·고성·양양 지역구가 이에 해당한다. 인구 하한선 기준에 불과 18명이 모자라게 되는 셈이다. 이 지역의 국회의원인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구가 인구 하한선에 미달되면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당 간사 자리까지 내놓았다. 선거구 획정을 포함해 20대 총선의 모든 룰을 만드는 정개특위의 여당 간사 자리는 누구나 탐을 낼 정도다. 정 의원 측은 “지역구 인구가 인구 하한선에 미달되면서 이해당사자인 의원이 정개특위 간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 의원이) 당 지도부에 이야기했고, 정개특위 위원에서도 빠졌다”고 말했다. 이 지역구는 인구 산정일 기준이 더 늦어지더라도 희망은 없다. 계속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김천의 이철우 의원은 “사실 김천이 8월 말에 하한선을 돌파하면서 속초·고성·양양 지역구에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9월 말 기준이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그건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14만명 선에 맞춰 열심히 노력해도 계속 줄어들어 하한선을 맞추지 못했는데, 그 감소분을 메워나갈 수 없다는 것이 이 지역구의 설명이다. 노인 인구가 많은 이 지역은 사망 등으로 자연감소가 많다. 신생아 출생이나 전입 인구 증가가 자연감소분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다른 한 농어촌 지역구 의원 측은 “지자체에서 감소분과 증가분을 0으로 맞추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14만명 기준 때문에 여의도 국회에서는 이처럼 울고 웃는 지역구 의원들이 많다.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는 4개 군을 모두 합쳐도 13만3628명(이하 8월 말 기준)이다. 이 지역구는 4개군의 면적이 4105㎢로, 서울 전체 면적의 6.8배가 넘지만 인구 수는 하한선에 미치지 못한다. 경남 산청·함양·거창은 13만9437명으로 하한선 기준에 불과 36명이 모자란다. 충북 보은·옥천·영동은 13만7739명, 전남 장흥·강진·영암은 13만8717명으로 인구 하한선에 아슬아슬하게 모자라고 있다. 전남 장흥·강진·영암 지역구(황주홍 국회의원)는 7월 말 기준으로 13만8646명이었다. 8월 말에는 조금 늘어 만약 9월 말 기준으로 한다면 좀 더 늘 수 있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갖고 있다.

선거구 획정 산정 기준일은 현행 법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중앙선관위 윤석근 선거정책실장이 지난 5월 국회 정개특위 공청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선거구 획정안 제출 마감일이 속하는 달의 전전달 말일 현재가 적정하다”고 돼 있다.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안 제출 마감일은 선거일 전 6개월까지로, 10월 13일이다. 중앙선관위가 적정하다고 밝힌 기준에 따르면 전전달 말일은 8월 31일이 된다.

하지만 ‘전전달 말일’ 역시 중앙선관위가 적정하다고 판단한 기준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19대 총선은 획정안 제출일인 2011년 11월 25일의 전달 말일이 기준이어서 2011년 10월 31일이 기준일이 됐다.

14만명을 둘러싼 지역구의 ‘드라마틱한 상황’은 국정감사 기간 중에도 계속 희비쌍곡선을 탔다. 이보다 더 슬픈 지역구는 하한선 기준인 14만명에 아예 못 미치는 지역구다. 인구 수를 늘리려고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도저히 맞출 수가 없는 지역구다. 아예 14만명에 못 미치는 한 지역구 의원 측은 “인력으로 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국회의원이 나서고 지자체장들이 발벗고 나서도 14만명을 채울 수 없는 경우다. 한 지역구는 올망졸망한 군(郡)이 몇 개 모여 있어 주변 인구 수 미달 지역구들이 이 지역구의 군을 하나씩 나눠 가져갈 수 있다는 시나리오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다. 그나마 이런 지역구의 의원이 실세 의원이라면 다행이다. 해체를 막을 가능성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경남의 의령·함안·합천 지역구는 현역 의원이 구속되는 바람에 다른 인구 수 미달 지역구에서 이 지역구를 나눠가져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해당 지역구 주민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있다. 어떤 한 지역구는 희망 시나리오를 그려 주변에 알림으로써 인근 지역구와 갈등하고 있다.

속초·고성·양양은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농어촌 인구가 계속 줄어들면서 농어촌 지역구가 통·폐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20대 총선은 14만명이라는 하한선 때문에 더욱 농어촌 지역구에 ‘슬픈 총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대 총선에서는 그나마 하한선이 10만명에 가까워 웬만한 농어촌 지역구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었지만 20대 총선에 들어 갑자기 기준이 부쩍 높아진 것이다.

19대 총선에서는 상한선 31만406명·하한선 10만3469명으로, 최대·최소의 인구 편차가 3대 1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4년 10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전국 선거구 평균 인구 수를 기준으로 상하 33%, 즉 2대 1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결정을 함에 따라 20대 총선은 기존의 246석을 기준으로 한다면 상한선은 27만8945명이고, 하한선은 13만9473명이다. 상한선과 하한선의 비율을 2대 1로 맞춰 ‘눈물의 14만명 선’이 등장한 것이다. 단순히 인구만 기준으로 한다면 강원·경북·전북·전남 등에서는 모두 9석의 농어촌 지역구가 줄어들어야 한다. ‘농어촌 지방 주권 지키기 의원모임’ 새누리당 간사인 황영철 의원(강원 홍천·횡성)은 “획정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면서 “상한선과 하한선을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구 내 지자체 수라든지, 지역 면적을 고려해 선거구 전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독립기구인 중앙선관위 선거구 획정위원회조차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상한선과 하한선 기준을 다소 올려 새로 늘어나는 도시 지역구 수를 적게 하고 농촌 지역구를 덜 줄이는 방안도 검토됐다. 여당은 농어촌 지역구를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야당은 비례대표 의석은 줄일 수 없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회 정개특위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하한선 기준을 올리는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안을 새누리당에 제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새누리당에서 그냥 비례대표 의석 수만 줄이자고 하는 바람에 협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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