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20代 취준생 '200만원 족집게 강의'까지 듣는다

이준우 기자 2015. 10.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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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하반기 공채 시즌 개막.. 막판 벼락치기 공부 돌입] 비싼 인터넷 강의일 경우 여러명이 공동 구매해 이용 대학내 취업 스터디 모집 글 상당수 인적성 검사 대비반 단기속성반·취업보장반 등 서울에서만 30여개 특강 열려 취업률 높이려는 대학들도 특강 열고 모의고사 치러

8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취업 준비 학원. 20대 취업준비생 10여 명이 5평 남짓한 교실에 모여 앉아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강의는 대기업 취업 전형에서 치러지는 '인성·적성(인적성) 검사' 준비반의 4시간짜리 단기 특강. 학생들이 질문을 쏟아내면서 예정보다 20분을 넘겨 끝났다.

9일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LG·현대중공업(10일), 삼성(18일), CJ(24일) 등 올 하반기 주요 대기업 공채의 인적성 검사가 잇따라 치러진다. 1점이라도 더 따내려는 취업준비생들의 '막판 벼락치기'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입 수능시험 때보다 더 치열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취업 시장에서 'A매치'로 불리는 대기업 공채의 인적성 검사는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1~2주 뒤 치러진다. 기업별로 문제 유형과 출제 포인트가 다르고 최근 들어 난도(難度)가 높아져 지원자들 사이에선 입사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관문으로 꼽힌다.

서류전형에 통과한 취업준비생들은 인적성 인터넷 강의에 몰려들고 있다. 기업별 맞춤형 강의가 마련돼 있는데 언제 어디서든 몇 번이고 반복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적성 검사용 인터넷 강의를 판매하는 업체는 5년 전 5~6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곳이 넘는다. 인적성 검사를 치르는 국내 모든 기업용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프리패스' 강좌도 있다. 동영상 강좌 업체가 올해 새로 발간한 인적성 검사 준비용 문제집만 300권이 넘는다.

30~40분 정도 강의 10여 개로 이뤄진 동영상 강좌는 5만~7만원에 사서 들을 수 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취업준비생들은 여러 명이 공동 구매해 하나의 아이디로 함께 이용한다. 인하대생 정모(26)씨는 최근 친구 한 명과 함께 24만원짜리 인터넷 강의를 공동 구매했다. 친구는 오전에, 정씨는 오후에 접속해 강의를 듣고 있다. 서류전형에서 떨어져 인적성 검사를 볼 수 없게 된 취업준비생들은 자신들이 구입한 인터넷 강의를 중고시장에 내놓는다.

인적성 검사만 대비하는 스터디 모임도 유행이다. 지난 7~8일 이틀 동안 연세대 게시판에 올라온 42개의 취업 스터디 모집 글 중 35개가 인적성 대비반이었다. 연세대생 이모(27)씨는 "인성 검사의 경우 정답은 없겠지만 일관성 있는 답변을 내야 최대한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팀원들끼리 답안지를 비교해가며 '모범답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시험이 임박하면서 오프라인 '족집게 강의'도 성황이다. 지난달부터 서울에선 30여 개에 이르는 어학원·취업 학원이 인적성 대비 특강을 열고 있다. 대부분 대기업 인사팀 근무 경력을 내세운 사람들이 강사로 나선다. 15만원 정도의 수강료를 내는 '단기속성반'이 많고 200만원이 넘는 '취업보장반'도 있다. 취업률을 높이려는 대학들도 특강을 열고 모의고사까지 치르고 있다. 한 사립대 인재개발팀은 지난 5일부터 오는 20일까지 현대자동차, LG, 삼성, CJ, SK그룹 순으로 1인당 5000원씩 받고 인적성 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시험을 4~5일 앞두고 자신의 수준을 확인할 기회여서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다"고 했다.

9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현대차 인적성 검사를 치르고 나온 김모(26)씨는 "사람의 인성이나 적성을 점수나 등수로 계량화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업이 계량화해 뽑으니 어쩔 수 있겠느냐"며 "수능만 보면 학원 다닐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취업 후엔 무슨 학원에 다닐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인적성 검사

기업체별로 실시하는 인적성 검사는 지원자들이 실제 업무 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입사시험이다. 적성검사는 주로 지적 능력이나 사고력을 평가하고, 인성검사는 성격이나 인성의 유형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5년 삼성이 처음 도입했고 지금은 대기업들이 채용 전형의 한 과정으로 삼고 있다. 삼성(SSAT), 현대자동차(HMAT) 등의 인적성 검사엔 각각 10만명 이상이 몰려 '수능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치르는 시험'이 됐다. 미국 등 외국 기업들은 지원자가 해당 기업의 구성원이 되기에 문제가 없는지에 중점을 두는 반면 한국 기업의 인적성 검사는 성적과 석차를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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