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집행방해' 억울한 죄목에 맞선 사람들]이 장면 속검은 옷 입은 나 경찰 팔 꺾는 걸로보이십니까?

입력 2015. 10. 9. 22:13 수정 2015. 10. 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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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귀농부부, 폭행 누명에 '빼앗긴 6년'..'주홍글씨' 여전

철거현장에서 16살 아들을 보호하려다 20살 의경을 죽인 박재호(이경영 역)는 법 심판대에 섰다.

눈앞에서 아들이 경찰에게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한 박재호는 법정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경찰은 박재호 아들을 죽인 것은 용역이라고 맞섰다. 결국 범인은 경찰로 밝혀졌다.

피고인 박재호는 그래도 형을 선고받는다. 재판이 끝난 뒤 박재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몇 번이고 외쳤다.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이다. ‘피고인’ 박재호의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 공권력과 개인의 싸움, 결과는 뻔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대사가 대신 말해준다.

공무집행방해죄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함으로써 직무수행을 방해하는 죄’(형법 제136조 1항)다. 공무집행방해죄는 ‘피고인’에겐 처벌 이상의 두려움이다.

공권력의 ‘보이는’ 실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체와도 싸워야 한다. 여기, 순응 대신 저항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저항 뒤엔 커질 대로 커진 공권력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지난 8월19일 박철씨(53)는 충주지방법원의 항소심 최종 선고결과를 듣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음주단속 중인 경찰의 팔을 비틀었다는 혐의(공무집행방해)를 받고 ‘죄인’으로 지낸 지 6년. 그간 재판정에서 ‘경찰의 팔을 비틀지 않았다’고 수도 없이 외쳤지만 박씨는 물론 부인 최옥자씨(51)에겐 위증죄까지 덧씌워졌다. 이날 선고는 박씨의 주장이 허위가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그렇지만 ‘공무집행방해’라는 주홍글씨를 완전히 지운 건 아니다. 박씨는 재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제420조 4호)은 “원 판결의 증거가 된 재판이 확정재판에 의해 변경될 때 재심청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선고로 박씨의 공무집행방해 사건과 부인의 위증사건 모두 원점에서 검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경기 안산에서 큰 가구점을 운영하던 박씨는 7년 전 유치원 교사인 아내를 설득해 충주 산척면으로 귀농했다. 평온한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귀촌 8개월 무렵이던 2009년 6월27일 밤만 생각하면 박씨는 아직 악몽을 꾸는 듯하다. 그날 밤 박씨 부부는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아내 최옥자씨(51)가 운전한 차를 타고 고3 아들의 학교로 향했다. 아파트 근처 도로는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웠다. 컴컴한 인도에서 갑자기 남자 2명이 차 앞을 가로막았다. 음주운전을 단속하던 경찰관들이었다. 경찰은 부인 최씨에게 음주 측정을 요구했다. 당황했지만 최씨는 음주 측정에 응했고 결과는 음주 무반응이었다. 경찰의 행동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박씨는 욕설과 함께 “왜 차를 세우느냐, 길을 막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그때 다른 경찰관 두 명이 달려왔다. 박씨 말에 따르면 욕설을 들은 경찰관 한 명이 박씨가 앉아 있는 보조석 문을 열더니 ‘지금 뭐라고 했느냐’며 목덜미를 잡아 차 밖으로 끌어냈다고 한다. 경관 한 명이 상황을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었다.

국과수 감정 동영상 캡처.

순간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한 경관이 “내가 경찰복을 입고 있는 것이 한심스럽다”며 박씨에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한쪽 팔을 하늘로 추켜올리며 몸을 비틀거렸다. 경찰관들은 “박씨가 경찰이 다가서자마자 (경찰의) 오른 팔목을 뒤로 비틀어 꺾었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그 장면만 비디오에 촬영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박씨를 도로 바닥에 눕혀 제압한 후 손을 뒤로 해 수갑을 채웠다. ‘피고인’ 박씨는 그 뒤 6년 동안 공권력과 싸워야 했다. 사건 발생 두 달 뒤 8월, 검찰은 박씨에게 벌금 200만원의 약식 처분 명령을 내렸다. 박씨가 경찰 팔을 꺾었다는 경찰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박씨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2010년 6월23일) 재판부 역시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다시 항소를 신청했다. 항소심(2010년 10월18일) 재판장은 가족인 부인 최씨를 증인으로 불렀다. 이례적이었지만 박씨는 누명을 벗을 수 있다는 기대로 부인의 재판을 준비했다. 법정에서 최씨는 “남편이 경찰관의 팔을 꺾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그런데도 경찰관이 텀블링하듯 땅바닥에 뒹굴었다. 이를 본 남편이 ‘이런 쇼까지 하느냐’며 소리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 상고를 기다리던 그해 말, 박씨의 집에 부인 앞으로 우편물이 왔다. ‘위증 혐의’로 출두하라는 검찰 소환장이었다. 재판부는 이듬해 2011년 4월28일 최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최씨는 2012년 12월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고 공무원 직위에서 파면됐다. 앞서 박씨의 대법원 상고심(1월 27일) 재판은 이미 기각 판결로 끝났다.

박씨 부부의 비극은 계속됐다. 부인 최씨의 항소심 때 박씨는 증인으로 나서 다시 한번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박씨는 재판정에서 나온 지 30여분 만에 위증죄 혐의로 소환요청을 받았다. 같은 사건으로 두번째 피고인이 된 것이다. 위증죄 1심을 앞두고 박씨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인 박훈 변호사를 찾아갔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은 공무집행방해에 이어 부인이 위증죄로 기소되고 자기 위증죄로 또 기소된 보기 드문 사건”이라며 사건을 맡았다. 그러나 박씨는 위증죄 1심 판결(2014년 4월18일)에서 검찰구형보다 더 많은 벌금(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남은 건 항소심. 박씨는 지난 8월19일에서야 무죄를 선고받고 터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재판부는 원심의 증거로 삼았던 경찰 진술의 신빙성이 낮고, 사건 현장 동영상 화면 내용(국과수 감정) 등을 들어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박씨는 사건 당시 상체를 뒤로 젖히고 있었고 시선도 다른 경찰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고인 자세로는 건장한 경찰의 팔을 돌려 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찰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충주경찰서는 보도자료를 내고 “3건의 재판 중 두 건(박씨의 공무집행방해죄, 최씨의 위증죄)은 유죄가 확정됐고, 한 건(박씨의 위증사건)은 2심에서 무죄가 나왔을 뿐”이라며 “경찰의 공무집행방해 입건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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