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주면 '훈민정음 상주본' 내놓겠다고?

2015. 10. 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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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배익기씨 “상주본 가치의 10분의 1 준다면 국가에 헌납”

7년 전 경북 상주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나왔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두번째 해례본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고,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금전적 가치가 1조원 이상이라고 감정했다.
곧 상주본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됐다. 서로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각종 민사 소송과 형사 고소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잠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상주본은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
배익기(52·상주시 낙동면)씨는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 지를 유일하게 아는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는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2·3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상주본의 행방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배씨가 최근 입을 열었다. 그는 한글날인 9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주본 가치의 10분의 1을 내게 남겨준다면 상주본을 국가에 헌납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의 감정대로라면 적어도 1000억원 이상을 뜻한다. 상주본은 도대체 무엇이고, 지금 어디에 있을까.

■ 훈민정음 해례본이란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눠져 있다. 예의와 해례 모두 훈민정음 창제 3년 뒤인 1446년(세종 28년) 편찬됐다. 예의는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와 사용법에 대해 직접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학생들이 국어 수업 때 배우는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글이 바로 예의에 있는 서문이다. 예의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 실려 그 내용이 전해져왔다.

해례는 세종을 도와 한글을 만든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의 창제 목적과 음가, 문자 운영법 등을 설명해 놓은 훈민정음의 한문해설서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구조, 형태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첫 해례본이 발견됐는데, 그것이 지금 서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이다.

간송본은 1962년 12월 국보 제70호로 지정됐다.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적으로 여러 문자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 문자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책은 훈민정음 해례본 하나뿐이다. 세종은 해례본을 여러 개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상당수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번째 해례본은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나왔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라고 불리는데, 첫번째 해례본인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이다. 하지만 상주본이 간송본보다 보존 상태가 좋고 집현전 학자들의 어문학적 견해가 달린 주석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더 높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상주본을 둘러싼 긴 싸움의 시작

두번째 해례본인 상주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8년 7월28일이었다. 고서적 수집상을 하는 배익기씨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상주본을 처음 외부에 공개했다. 그는 “집(경북 상주시 낙동면)을 수리하다가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상주본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며칠뒤 골동품 수집상을 하는 조영훈(2012년 사망 당시 68살)씨가 상주본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7월26일 배씨가 가게에서 30만원을 주고 고서적 두 박스를 사가면서 나무궤짝 위에 놓여있던 상주본을 훔쳐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씨는 이를 부인했다. 조씨는 그해 8월11일과 10월24일 두차례 상주경찰서에 진정서와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그러자 조씨는 2010년 2월5일 대구지법 상주지원에 “배씨가 상주본을 자신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물품인도 청구 소송을 냈다. 긴 싸움 끝에 대법원은 2011년 5월13일 “상주본의 소유권자는 조씨이므로 배씨가 상주본을 돌려줘야 한다”고 확정 판결했다. 하지만 배씨는 상주본을 돌려주지 않았고, 조씨는 그해 7월5일 대구지검 상주지청에 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과 절도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그해 8월30일에는 상주본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배씨 집 등 3곳에 대해 압수수색도 있었지만, 상주본은 나오지 않았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검찰은 적극적인 수사를 벌여 상주본이 원래 경북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에 있는 광흥사에 있었던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광흥사의 불상 안에 들어있던 상주본은 1999년 도난당했다. 광흥사에서도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검찰은 광흥사에서 상주본을 훔쳤다고 하는 사람을 찾아내 그로부터 “훔친 상주본을 조씨에게 팔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렇게 조씨의 손에 들어간 상주본을 배씨가 훔쳐간 것이라고 보고, 배씨를 구속기소했다.

■ 해례본은 돌아올 수 있을까

2012년 2월9일 대구지법 상주지원(1심)은 배씨의 유죄가 인정된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그해 9월7일 대구고법(2심)은 배씨의 혐의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배씨가 상주본을 조씨로부터 훔쳤다는 직접적인 물증 없이 정황 증거만 있는 상황에서 증인 5명의 진술만으로는 유죄 성립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심 선고가 있기 전인 그해 5월7일 조씨는 “상주본을 돌려받으면 국가에 기증하겠다”며 문화재청과 상주본 기증식을 했다. 이때부터 문화재청도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난 배씨는 경북 상주시 낙동면의 집에 돌아왔다. 몇달 뒤인 2012년 12월26일 배씨를 고소했던 조씨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배씨는 2014년 5월29일 대법원으로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배씨는 현재 집에서 어머니, 형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26일 배씨가 사는 집에서 불이 났다. 작은방 전등에서 발생한 화재는 30분만에 건물 2동을 모두 태웠다. 당시 화재로 배씨가 몰래 숨겨둔 상주본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찰이 방화 혐의를 두고 조사를 했지만 그런 흔적이나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배씨는 9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주본 때문에 내 인생이 발목잡혀 아직도 결혼 못하고 혼자 살고 있다. (상주본) 간수 문제도 이제 한계를 느끼고 나중에 내게 자식이 생긴다고 해도 상주본 때문에 더 위험할 것 같다”며 심경을 말했다. 그리고 정부가 적당한 보상을 해준다면 상주본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2012년 9월7일 2심 재판부였던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진만)는 상주본을 훔친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은 배씨에게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피고인은 앞으로 50년을 더 살기가 어렵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당신의 운명과 함께 해서는 안된다. 해례본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에게 맡겨 후손들을 위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해달라.”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사건 일지1999년 경북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광흥사에서 상주본 도난
2008년 7월28일 고서적 수집상 배익기(52·경북 상주)씨가 상주본 공개
2008년 8월1일 골동품 수집상 조영훈(2012년 사망 당시 68살)씨가 상주본 소유권 주장
2008년 8월11일 조영훈씨가 상주경찰서에 절도 혐의로 배익기씨에 대한 진정서 제출, 무혐의 처분
2008년 10월24일 조용훈씨가 상주경찰서에 절도 혐의로 배익기씨 고소, 무혐의 처분
2010년 2월5일 조용훈씨가 대구지법 상주지청에 배익기씨 상대로 물품인도 청구소송
2011년 5월13일 대법원은 물품인도 청구소송에서 조용훈씨가 상주본 소유주라고 확정 판결
2011년 8월30일 상주본 반환 거부하는 배익기씨 집 등 3곳 압수수색했지만 찾지 못함
2011년 7월5일 조용훈씨가 대구지검 상주지청에 배익기씨를 절도 혐의 등으로 고소
2012년 2월9일 대구지법 상주지원(1심)이 배익기씨에게 징역 10년 선고
2012년 5월7일 조용훈씨가 문화재청에 상주본 돌아오면 기증하겠다고 약속
2012년 9월7일 대구고법(2심)이 배익기씨에게 무죄 선고
2012년 12월26일 조용훈씨가 지병으로 세상 떠남
2014년 5월29일 대법원(3심)이 배익기씨에게 무죄 선고 확정 판결
2015년 3월26일 배익기씨 집에서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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