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강남에는 1억원이 굴러다니는 걸까요?

2015. 10. 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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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회부 24시팀에서 일하고 있는 오승훈이라고 합니다. 반도체 노동자의 2세 기형 문제로 ‘친절한 기자들’에서 인사를 드린 지 11개월 만에 얼굴을 내밉니다. 오늘은 강남에서 잊을 만하면 출몰하는 1억원 ‘돈다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쓰레기장에서 발견돼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표 1억원이 곧 주인의 품으로 돌아갈 예정인데요. 수서경찰서는 7일 수표 1억원이 자신의 돈이라고 주장하는 타워팰리스 주민인 ㄱ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이 돈이 ㄱ씨의 돈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찰이 ㄱ씨를 돈 주인으로 본 데에는 ㄱ씨가 제출한 수표 100장에 대한 사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보통 수표를 받게 되는 경우, 분실을 대비해서 수표번호를 적어놓는데 ㄱ씨는 “수표 100장의 번호를 일일이 적기 번거로워 모두 복사해 놓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1주일 안에 ㄱ씨에게 돈을 돌려줄 방침입니다. 돈은 주인을 찾았지만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 큰돈을 트렁크에 보관했다는 점, 또 집 안에 드나든 이들이 이를 모르고 내다버렸다고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도곡동 1억원 수표 소동을 보면서 다섯달 전에 취재한 ‘서초동 장롱 1억원’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4월21일 오전 법조타운 근처인 서울 서초구 ㅇ아파트에서 이사를 앞두고 빈 아파트를 도배하던 인테리어업체 작업자들이 안방 붙박이장 위에서 종이로 포장된 꾸러미를 발견합니다. 헌 돈과 새 돈이 섞인 5만원권 다발의 1억원이었습니다. 신고를 받은 관할 서초경찰서는 이 돈이 새로 이사오는 입주자의 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직전 거주자를 수소문했습니다. 마침 전 거주자는 돈이 발견된 아파트에서 2개층 아래로 이사를 간 상황이었습니다. 이튿날 경찰서로 돈을 찾으러 온 김아무개(45)씨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려고 남편 몰래 모아둔 돈인데 잃어버린 줄 알고 친척 등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변호사”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네요.

경찰은 ㄱ씨가 돈이 놓여 있던 위치와 포장지, 헌 돈과 새 돈이 섞인 5만원권 등 발견 당시 돈다발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술한 것으로 미뤄 돈 주인이 맞다고 보고 그 돈을 돌려줬습니다. 그러나 타워팰리스의 수표 1억원처럼 서초동 현금 1억원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현금 1억원을 은행이 아닌 장롱 위에 놓아둔 점도 그렇지만, 그 큰 현금을 어디에 뒀는지도 모른 채 이사를 갔다고 주장하는 점, 게다가 바로 지척인데도 이사 뒤 열흘간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현금 1억원’ 분실 소동은 동네에도 소문이 났습니다. 한 주민은 “집에 돈이 얼마나 많으면 현금 1억원을 잃어버리고도 모르냐”고 했고, 다른 주민은 “멀리도 아니고 아래층으로 이사를 갔는데 예전 살던 집에 돈을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김씨의 남편을 변호사가 아닌 현직 판사로 알고 있다면서 “판사면 월급이 뻔할 텐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은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이에 대해 돈 주인 김씨는 “할 말이 없다”며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업주부로 알려진 김씨가 올 1월에 11억원에 이르는 해당 아파트를 자신 명의로 샀다는 점도 남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달여 동안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김씨의 남편을 알아내기 위해 다각도의 취재를 했지만 김씨를 둘러싼 숱한 정보에서 남편은 신기할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김씨 남편 명의로 돼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파트 주위를 서성였지만 남편이 그 집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씨 소유의 차량 외에 다른 차량이 입주자로 등록이 돼 있었지만 주중과 주말 모두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 차량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경비원도 남편에 대해선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전 가끔 서초동 아파트 앞에 서 있는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남편은 어슴푸레 보일 듯합니다. 과연 김씨의 남편은 누구일까요? 무엇보다 강남에는 왜 집 안에 굴러다니는 1억원이 많은 걸까요? 다시 서초동으로 가야겠습니다. 남편이 누구인지 알아내야겠습니다.

오승훈 사회부 24시팀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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