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띠? 안전벨트? 딸과 말다툼했다
[오마이뉴스 정은균 기자]
막둥이는 다섯 살이다. 어린이집에 다닌다. 아침 출근길마다 태워다 준다. 지난 7일 아침이었다.
"아빠, 안전벨트 안 매면 안 돼요?"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여느 때 같으면 혼자서도 제법 맬 줄 아는 녀석이다. 옆자리에 앉은 오빠에게 부탁한다며 '정중히' 거절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뭔가 기분이 언짢았던 모양이다.
"똥이(별명)가 경찰 아저씨한테 벌금 낼 거야?"
"…."
"5만 원이나 내야 하는데?"
막둥이는 체념하듯(?) 눈길을 돌렸다. 가는 길에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똥아, '안전벨트'가 아니라 '안전띠'야."
입이 댓발이나 나온 채 앉아 있던 똥이가 화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야. '안전띠'가 아니라 '안전벨트'야."
"아니야. '안전벨트'가 아니라 '안전띠'야."
안전띠? 안전벨트?
▲ 안전띠냐 안전벨트냐 그것이 문제로다. |
ⓒ public-domain-image |
글로벌 시대에 낯선 외국어가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도 외래어나 외국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쓰는 세태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왠지 불편하다.
영어 단어 'center'(센터)가 들어가는 건물명이 많다. 거의 예외 없이 '○○센터'로 적는다. 영어 계통 이름이라면 '○○ CENTER'처럼 전체를 로마자로 도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십수 년 전 중국에 가서 큰 인상을 받은 것 중 하나가 길거리 간판에 적힌 '○○中心'이었다. 영어 단어 'center'를 자기네 언어인 변신시킨 게 그 '中心'이었다. 사실 '센터'와 '중심'의 어감 차이가 매우 큰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 그랬을까. 그랬을 것 같지 않다.
우리는 "SM5"라 쓰고 "에스엠 파이브"라 읽는다. "에스엠 오"라 읽으면 안 될까. 애초 '미리내'니 '강물'이니 하는 우리말로 차 이름을 지어 전 세계에 내보내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교실 칠판에 'SM5'와 '에스엠5'를 함께 써놓고 "에스엠 오"라고 읽으면 아이들이 낄낄거리고 깔깔거린다.
"뭐예요 선생님" 하며 항의(?)하는 아이들도 있다. 왜 그렇게 읽느냐는 게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되묻는다. "너희는 왜 '에스엠 파이브'라고 읽니?"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135만5천 원을 '135,5000'으로?
'하이'나 '굿 모닝'이 자연스러운 우리말 인사처럼 쓰이고 있다. 마트 전단에 박힌 '1+1 행사'는 거의 모두 '원 플러스 원 행사'로 읽는다. 관행적인 쓰임새와 의사소통의 편리함(?)과 영어세계화의 이름으로 '국영문혼용체'[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국로(마자)혼용체가 맞겠다]를 쓴다.
서양식 수 표기는 천 단위로 끊어 적는다. '천 원'은 '1,000원'이다. '만 원'이면 '10,000원'으로 적는다. 서양식으로 적혀 있는, 동그라미가 여러 개 있는 수를 볼 때마다 나는 오른쪽 끝 영부터 일일이 '일, 십, 백, 천' 세가며 전체 수치를 읽어낸다. 여간 불편하지 않다.
우리말 식 수 표기는 만 단위를 기준으로 하게끔 돼 있다. 원칙대로 한다면 '만 원'은 '1,0000원'으로 적어야 한다. '일백오십삼만 오천 원'은 '135만 5천 원'이나 '135,5000'으로 적으면 된다. 앞쪽 세 숫자인 '135'가 '일백삼십오'로 읽히니, 여기에 '만'만 붙이면 전체 수 크기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제법 편리한 방식이다.
요새는 이렇게 우리말 식 표기를 따르는 서적이나 언론 보도문이 제법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올해 초 전라북도교육청의 탈핵 교과서 <탈핵으로 그려보는 에너지의 미래> 발간 작업에 동참했다. 교재 특성상 수 표기를 여러 곳에 해야 했다. 집필진 회의에서 수 표기 세칙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회의를 했다. 우리말 식 표기 방식에 '불안해 하는' 분이 몇 분 계셨지만 현행 어문 규정에 맞춰 만 단위로 끊어 적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세와 주류는 여전히 '불편한' 서양식 표기다.
막둥이의 단어 목록 속에는 '핑크'가 있을 듯하다
▲ 세종대왕은 '핑크'를 당연히 모르겠지... |
ⓒ 김지현 |
"아빠, 똥아, '안전벨트'나 '안전띠'나 다 같은 거야."
그러자 식식거리던 막둥이가 최후의 한 마디를 던졌다.
"아니라니까. 어린이집에서 '안전벨트'라고 했어. 그럼 아빠는 안전띠 매. 나는 안전벨트 맬 테니까."
○ 편집ㅣ김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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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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