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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일의 들숨날숨] 지도자 슈틸리케는 기술자, 잘 굴러가는 한국축구

조회수 2015. 10. 9. 15: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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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감조차 모난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순조롭다'라는 단어는 "아무 탈이나 말썽 없이 일이 예정대로 잘되어 가는 상태에 있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2014년 10월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2015년 10월8일 쿠웨이트시티에서 펼쳐진 쿠웨이트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4차전까지 마친 슈틸리케호의 항해가 꼭 그렇게 순조롭다.

러시아 월드컵을 목표로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별다른 문제없이 잘 가고 있다. 아주 빠르진 않다. 그렇게 난코스를 지난 것도 아니다. 때문에 누군가는 무난하다, 다른 누군가는 밋밋하다고도 한다. 전혀 틀리진 않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느낌은 순항이다. 아주 맑은 날 구름이 하늘 떠가듯, 순풍에 돛 단 것처럼 순조롭다.

사실 쿠웨이트전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름값을 해낸 구자철이 전반 12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터뜨리며 기선을 제압했으나 이후 다소 안일한 플레이가 나오면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후반전 들어서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구자철의 스루패스로 1대1 찬스를 잡았던 석현준, 석현준이 오른쪽에서 시도한 크로스를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했던 권창훈 등 한국도 추가골 기회가 있었으나 결정적인 실점 위기도 몇 차례 있었다. 끝까지 1-0 승리를 지킨 것은 한국 쪽에도 운이 따른 결과다. 김승규 골키퍼의 선방 수훈도 크다. 8-0으로 제압했던 라오스전, 3-0 완승으로 끝난 레바논 원정에 비해 부족했던 내용이다.

몇 가지 이해할 수 있는 요인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쿠웨이트는 라오스나 미얀마보다 강하다. 게다 상대의 홈이었다. 중동원정은 언제 어느 때고 쉬운 적 없었다. 여기에 손흥민과 이청용이 부상으로 모두 빠졌다는 것도 감안해야했다. 양쪽 포가 떨어졌던 셈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승점 3점을 가져왔다는 자체로 소기의 성과다.

쿠웨이트전은 '이겼다'는 표현보다 '승리를 지켰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경기였다. 손흥민과 이청용이 빠진 한국의 공격은 역습 시 스피드나 좌우 공간 활용 면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핵심 선수들의 이탈과 함께 기성용에게 수비가 집중된 것도 달갑지 않았다. 여러모로 이기기 힘든 조건이었는데, 다행히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냈다.

쿠웨이트전 승리와 함께 한국은 2차예선에서 4전 전승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4골을 넣는 동안 단 1실점도 허용치 않았다. 라오스전 대량득점(8골)의 영향이 있는 14골보다는 무실점이 더 반갑다. 쿠웨이트전은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치른 21번의 A매치들 중 16번째 무실점 경기였다. 실점을 허용한 경기가 5번에 불과하다. 확실히 실점이 줄었다. 덕분에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31일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호주에게 1-2로 패한 뒤로는 10경기 7승3무의 파죽지세다. 지금 슈틸리케호는 '순항' 중이다.

참 묘한 일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지금의 한국대표팀은, 냉정하게 말해 상대가 두려워할 정도의 강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재밌거나 매력적인 축구로 포장하기에도 무리가 있고 딱히 고유한 색깔을 운운하기도 힘들다. 슈틸리케라는 지도자의 전술적 특별함이 엿보이는 것도 아니다. 1년이 지났건만 '슈틸리케 축구'를 딱 부러지게 규정키 어려운 이유다.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잘 굴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슈틸리케 감독의 작은 특징을 뽑아낼 수 있다. 지도자 슈틸리케는 '좋은 기술자'다.

슈틸리케 부임 이후의 대표팀이 이전 대표팀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선수 변화가 많았다는 점이다. 으레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면 나름대로 다양한 선수를 실험하게 마련이지만 슈틸리케의 1년처럼 변화의 폭이 큰 적은 없었다.

단순히 훈련 멤버에 포함시켰다가 결국은 뻔한 이름들로 귀결되는 반복도 아니었다. 일단 소집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거의 대부분 출전시켰다. 그렇게 제공된 기회를 잡아 성공한 케이스가 한둘 아니다. 신데렐라 이정협이 그랬고 골키퍼 구도를 뒤흔든 김진현이 그랬으며 이재성을 지나 권창훈까지 꺼낼 수 있는 예가 많다. 단순히 새 인물을 중용하는 것을 칭찬하는 게 아니다.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퍼즐을 맞추는데 능하다.

기성용이라는 자타공인 에이스를 보다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슈틸리케는, 정우영이라는 부품을 밑에다 끼워 그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마땅한 오른쪽 풀백이 없어'라고 모두가 답답해하면서도 있는 자원들만 보고 또 보고 있을 때 슈틸리케 감독은 장현수라는 중앙(미드필더 혹은 수비수) 자원을 조금 다듬어 오른쪽 측면에 끼워 넣었다. 이제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호주 아시안컵 때 기성용 옆에 붙였던 박주호를 다시 떼어 왼쪽 측면으로 돌리고 있다. 요컨대 필요한 부품을 잘 알고 쓰는 엔지니어 같은 느낌이다.

한 축구인은 "이정협이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결정력이 뛰어난 공격수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는 가장 적합한 공격수"라는 의견을 전했다. 한 K리그 지도자는 "권창훈은 지금 대표팀이 쓰고 있는 미드필더 구성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유형"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런 식이다. 차를 아는 진짜 기술자는 '맞는' 부품을 선호한다. 새것이라고, 외제라고 다 좋은 부품은 아니다. 뚜껑 안에서 차를 위해 쓰일 것인데 굳이 부품자체가 반짝일 필요는 없다.

차(팀)에 필요한 부품(선수)을 잘 아는 엔지니어(슈틸리케) 덕분에 자동차(한국축구)는 지금 잘 굴러가고 있다. 물론 지금의 무난한 순조로움이 계속 이어지는 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내내 시속 60km로 달리면 결코 세계적인 팀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일단은 잘 굴러가는 차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나중에 속도도 높일 수 있고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 있는 힘도 키울 수 있는 법이다. 적어도 지금은, 아주 잘 가고 있다.

글= 임성일[뉴스1 스포츠부/lastuncle@daum.net]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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