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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감독 자르기

조회수 2015. 10. 9. 09: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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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자르기

참으로 무엄한 일이다. 어제 주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는 국민 여동생의 차지였다. 그녀와 새로운 남자친구가 '좋은날 싸구려 커피 마시는' 알콩달콩 스토리에 각종 커뮤니티는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낯선 야구인들이 등장했다. 급기야 그녀의 실검 순위를 위협하기도 했다. 어딜, 감히….

자이언츠는 1년 중 이맘 때 가장 강렬하다. 작년 10월 무렵에도 그렇게 이슈의 중심을 차지하더니, 올해도 영락없다. 전격적인 감독 경질로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게다가 그 팀 출신 A선수와 관련된 SNS의 글까지…. 그들은 이제 확실하게 가을 야구의 강자로 부상했다.

기념으로 <…구라다>가 오늘 그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2015년 10월의 자이언츠 얘기다. 혼자 하면 쓸쓸할 것 같아 또 하나를 초대했다. 2012년 10월의 히어로즈다. 왜? 둘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지속된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체질 개선에 목말랐다. 그걸 위해 현직 감독을 해임하고, 아주 의외의/파격적인 인물을 감독에 올렸다. 그래서 공동 주연으로 제법 어울린다. 어떻게 자르고, 어떻게 선임했나. 과정을 살펴보자.

2015년 10월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신임 감독이 이틀간 어떤 일을 겪었는 지 이미 보도를 통해서 알려졌다.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업무의 추진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 따라서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① 조 감독은 와이번스가 탈락해 퇴근하던 길에 롯데의 전화를 받았다. 아마 밤 11시는 훨씬 넘은 시간이었으리라. 처음에는 코치로 오라는 줄 알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알고보니 감독 오퍼였다. 깜짝 놀랐다. 시간을 좀 달라고 한 뒤 다음날 아침에서야 OK 사인을 냈다.② 롯데 이윤원 단장은 그 얘기를 듣고, SK 민경삼 단장을 만났다. 오전 10시.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이었다. 양해를 구했고, 와이번스도 영전인만큼 흔쾌히 보내주겠다고 했다(잔여 계약이 1년 남아 있었다).③ 롯데 이윤원 단장은 이종운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다짜고짜 "더 좋은 감독님과 하고 싶다"고 한 뒤 해임을 통보했다. 이어 17대 감독 선임에 대한 보도자료를 만들어 공식 발표까지 진행했다.

2012년 10월 넥센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을 내보내고, 염경엽 감독을 맞는 시기였다. 이때도 말이 많았다. 나름대로 전임 감독에 대한 팬들의 애정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염 감독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① 시즌 막판이었다. 15경기 정도 남았다. 그 무렵 김시진 감독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조금 기다렸다가 시즌이나 마치게 해주지'라는 비난 여론이 강했다. 당시 이장석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곧 후임 감독 인선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4년이나 팀을 이끌며 고생한 분이 자리에 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김 감독의 뒤통수를 치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었다."② 정확한 날짜는 9월 17일이었다. 야구장 감독실도 아니고, 구단 사무실도 아니었다. 쉬는 날을 택해 서울 시내 호텔에 괜찮은 자리가 마련됐다. 이장석 대표가 직접 마주했다. 솔직한 사정을 전하며 그동안에 대한 감사 인사를 했다. 김시진 감독은 "전화로 하셔도 되고, 다른 사람 시켜도 되는데, 이렇게 직접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③ 그로부터 3주가 흘렀다. 넥센은 팀내 승격을 통해서 후임을 찾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면접 인터뷰 형식으로 얘기를 나눴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염 감독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냥 구단 사무실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급 호텔에서 제대로 된 자리가 마련됐다. 구단 고위층 분들이 정장 차림으로 나오셨다. 갖고 있던 생각을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품격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종운 감독은 제주도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그곳에 전화 한통으로 끝냈다. 신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초짜 감독후보는 심야에 전화로 오퍼를 받았다. 얼굴 볼 필요도 없었다(물론 그들의 IT기기 사랑은 유명하다). 그것도 최고책임자가 아닌 단장의 통화였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했는 지 모든 일은 반나절만에 처리됐다. 전격적이고, 일사분란했다. 롯데는 "이런저런 소문이 너무 많아 하루 빨리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3년전 넥센은 훨씬 더 모험적인 파격을 단행했다. (신임 감독에게는 참 미안한 얘기지만) 조원우는 비교도 안됐다. 염경엽이라는 인물이 감독감이라고 아무도 쳐주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원칙과 절차를 거쳤다. 메이저리그 방식이라는 그럴듯한 퍼포먼스(인터뷰)를 통해 무게감과 당위성, 신선함 같은 이미지도 얻게 해줬다.

프로야구 감독? 물론 대단한 자리다. 그러나 구단 입장에서 보면 계약서의 '을'일 뿐이다. 마음에 안들면 언제라도 바꾸면 그만이다. 설사 계약기간 중이라도 팀을 위해 필요하면 그래야 한다. 야구인에 대한 존중? 무자비함? 글쎄. 그건 너무 낭만적인 논리다. 물론. 그래도 예의와 격식, 절차, 그런 건 무척 아쉽다.

우린 지금 리그의 수준을 걱정해야 한다. 가치 있는 리그가 되려면 그라운드의 좋은 플레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품격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리그의 수준을 만든다. 그게 문화가 되고, 전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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