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 '리트머스 시험지'된 러시아 무력 개입

입력 2015. 10. 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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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전격 단행된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이 중동 지역 각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리트머스 시험지가 용액의 산성, 염기성, 중성을 가리는 것처럼 중동 각국의 본색이 러시아의 무력 개입에 투영되고 있다.

반미 시아파 정권과 수니파 반군,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가 뒤섞인 탓에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러시아 공습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러시아 공습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에 대한 중동 각국의 반응은 지지, 반대 그리고 중립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이에 가장 동조하는 측은 예상대로 러시아의 우방이자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후견인이나 다름없는 이란이다.

이란 외무부는 러시아가 공습을 개시한 바로 다음날 "러시아의 공습은 테러리즘을 발본색원하는 국제적 협력의 연장선상"이라며 이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으로선 러시아의 개입이 반갑다. 7월 핵협상 타결로 서방과 관계 개선을 모색해야 하지만 시리아 문제에 발목이 잡힌 꼴이기 때문이다.

알아사드 정권 축출을 양보하지 않는 서방과 접점을 찾을 수 없던 이란은 러시아가 나서주면서 갈등의 최전선에서 한 발짝 물러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IS 사태로 국가 전체가 위기에 빠진 이라크 역시 러시아가 도움된다.

이라크는 IS 사태에서 전적으로 미국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란과 가까운 시아파 정부인데다 미국의 IS 격퇴작전이 못마땅했다. 미국과 이라크 정부는 종종 IS를 소탕하지 못하는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신경전도 벌였다.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언제든지 이라크로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고, 이라크 정부로선 IS 격퇴를 대의명분 삼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최대한 이득을 챙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란과 이라크는 내친김에 러시아, 시리아와 함께 IS 격퇴를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4자간 정보센터를 이달 초 설치했다.

러시아의 공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곳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터키 등 3곳이다.

사우디는 이란과 밀접한 알아사드 정권을 돕는 러시아가 당연히 달가울 리 없다. 게다가 알아사드 시아파 정권이 존속한다면 사우디는 '수니파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을 자칫 IS나 알카에다에 넘겨줄 수 있다.

터키는 러시아 공습에 잠시 반색했다가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회원국인데다 IS를 방조한다는 비난을 모면하고 변방의 쿠르드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러시아보다 미국 편에 서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관전하는 입장에서 흥미로운 곳은 '중성 반응'을 보이는 나라다.

이집트는 전형적인 '양다리' 작전을 구사한다.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3일 "러시아의 등장은 시리아 내 테러리즘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내비쳤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생일 축하 전화를 걸어 공습에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시나이 반도의 IS 이집트 지부가 안보를 위협하는 만큼 이집트는 테러조직 소탕을 내세운 러시아의 공습을 지지하는 원칙론적 명분은 확보했다.

리비아 내전을 둘러싸고 최근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진 이집트는 러시아와 6월 사상 처음으로 해군 합동훈련을 했고 8월엔 양국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엘시시 정권은 쿠데타로 집권한 자신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데 큰 도움을 준 사우디와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특히 사우디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차관을 이집트에 지원했다.

슈크리 외무장관의 지지 발언 직후 엘시시 대통령은 "메카 성지순례 압사사고로 사우디를 흔드는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사우디를 옹호했다. 알아사드 정권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알아라비야 방송은 "이집트는 중동에 개입한 러시아에 아랍권의 정치·외교적 방패막이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우디와도 불화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이집트같이 모호하다.

UAE는 사우디·미국의 맹방이지만 의존도를 낮춰 독자 외교력을 기르기 위해 러시아와도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시장이 개방될 이란과 러시아와 경제 교류도 염두에 둔 행보다.

러시아 외교관 출신 비트슬라프 마토조프는 레바논 알마나르 방송에 "이집트가 러시아공습을 지지하는 것은 UAE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UAE는 시리아 내전에 소극적인 대신 예멘 내전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우디를 도와 균형을 맞추고 있다.

사우디, 터키와 함께 러시아를 비난하는 성명에 참여한 카타르는 군주 셰이크 타밈 빈하마드 알타니가 이달 18일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양국은 테러리즘이라는 교집합으로 정치적 협력의 구실을 마련할 전망이다.

러시아 역시 중동 국가들과의 '느슨하고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시리아 개입에 대한 경계심을 완화하고 수니파 정부가 꺼리는 이란의 우방이라는 '약점'도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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