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병든 아노미의 정치판
정치판이 가관이다. 당 대표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이 야당에서 좀 조용해지나 싶더니 곧바로 여당이 격랑에 휩싸였다. 잠시 소강상태인 것 같은데 공천 과정에서 분란이 계속되리라 짐작된다. 야당의 문재인 대표는 재·보궐선거 패배 후 혁신위 구성과 혁신안 통과, 탈당과 분당의 ‘협박’ 속에서 재신임 정국을 거치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아직 수렁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형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여당의 김무성 대표는 추석에 부산에서 문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합의했다가 청와대와 친박계에게 포화를 맞은 후 다시 고개를 숙였다.
몰염치한 정치와 야만적 여론에 도덕이 없고 윤리가 없고 규범이 사라졌다. 리더십의 부재보다 더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리더십의 부재가 정치의 ‘우물’ 하나쯤 마른 것이라면, 도덕과 윤리와 규범이 사라진 정치판은 정치의 ‘바다’가 통째로 오염된 것이다. 여당의 경우, 이 오염의 참을 수 없는 징후는 청와대가 입법부 의원들을 대통령 특보로 삼고 당 대표와 선거제도 개혁에 노골적으로 훈수를 두는 불법을 천연덕스럽게 자행하는가 하면, 친박계라는 의원들이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당 대표를 면전에 두고 ‘까대는’ 철면피함을 드러내는 데서 극치를 보인다. 야당의 경우, 스스로 다른 배를 타 사실상 재·보궐선거 실패의 원인을 만든 사람들이 갓 선출된 당 대표가 다른 배를 타도록 만들었다고 우기며 모든 책임을 대표에게 돌리는 파렴치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또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인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당 분열을 꾀하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 데도 입만 열면 ‘통합’을 외쳐대고, 당 대표와 주류 측에 분열의 책임을 묻는 적반하장과 후안무치가 도를 넘어섰다.
여와 야의 이런 정치행태에는 최소한 공유해야 할 윤리와 양심을 찾기 어렵다. 오로지 권력을 향한 뻔뻔한 욕망만이 출렁이고 있다. 정상적인 도덕적 질서로부터 이탈하는 비정상성을 사회학에서는 ‘아노미’라고 표현한다. 2015년 한국의 정치판에 아노미적 병리가 깊다. 정치가 막가고 있다.
잘못된 질서를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아노미적 병리의 정치는 새로운 도덕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새로운 규범의 질서를 만들어야 치유된다. 자질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에게 쥐어진 가장 특별한 수단은 ‘폭력적 강제력’이다. 정치를 하는 것은 바로 이 폭력에 내장된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요구된다고 했다. 막스 베버는 그 자질로 대의를 추구하는 ‘열정’과 열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책임의식을 단련하는 ‘균형 감각’이라는 세 요소를 든다. 이 세 가지 자질을 갖춘 사람만이 진정한 정치적 ‘개성’을 발휘할 수 있고, 단순히 ‘악마적 힘’에만 마음이 뺏긴 ‘권력정치가’와 구분되는 진정한 정치인이다.
새로운 비전과 정치질서를 지향하는 양당의 개혁세력이 부디 공천혁신에 성공해서 ‘정상적 정치인’을 많이 충원하기를 빈다. 병리적 아노미의 정치를 새로운 도덕적 질서로 고치는 유일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유권자가 죽은 ‘관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매의 눈으로 현실을 꿰뚫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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