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을 위한 네 개의 키워드

글 박성호 입력 2015. 10. 8. 15:50 수정 2015. 10. 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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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에세이

눈썰미가 좋은 분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전원속의내집」이 이달로 통권 200호를 맞이했다. 21세기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1999년 2월부터 시작된, 잡지의 길다면 긴 역사, 적지 않는 발자취 속에서 나도 22번째의 칼럼을 쓰고 있다. '200호'라는 훌륭한 중간지점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번 칼럼을 시작하려고 한다.

"The car that answers today's questions"오늘날의 희망사항을 충족시켜 주는 자동차

며칠 전, 이런 헤드라인으로 시작하는 한 자동차 회사의 보도자료를 온라인에서 읽게 되었다. 이 중에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며 기억에 각인된 문장이 있다.

"우리는 이 차의 특징을 4개의 키워드, 즉 디자인(Design), 쾌적함(Comfort), 기술(Tech-nology), 감당할 수 있는 비용(Affordability)으로 표현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운전자의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서 도출된 것이며, 이는 1948년에 데뷔한 2CV의 철학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이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를 초월해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동차 산업의 발전사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불리는 자동차 브랜드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 부유 계층의 전유물이며 '우아한 탈 것'에 지나지 않았던 자동차를 우리 모두가 '사치품이 아닌 실용품으로 누릴 수 있는 것', 즉 대중차(大衆車)로 바꿔준 자동차들이다.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 type1(비틀)은 1938년부터 2003년까지 66년간 무려 2,150만대가 생산되었다. 영국의 BMC mini(지금은 BMW mini)는 1959년부터 2000년까지 42년간 약 530만대가, 이탈리아 피아트의 NUOVA 500은 1957년부터 1977년까지 21년 동안에 약 400만대가 생산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인용한 문장 속에서 언급된 프랑스의 국민차, 시트로엥의 2CV는 1948년부터 1990년까지 43년 동안 약 387만대가 생산되었다. 나는 이 자동차들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이토록 오래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늘 궁금했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갖고, 삶 깊숙이 들어가 그 일부분이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특별한 철학이 필요한 걸까? 그 질문의 답을 알 수만 있다면, 내가 앞으로 설계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더욱 잘 할 수 있는 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며칠 전, 바로 내 눈 앞에 이 문장이 나타난 것이다. 너무나 간략하고 명쾌한 4개의 단어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나의 머리와 가슴 속에 존재했던,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하나의 답을 나에게 깨우쳐 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문장에서 '자동차(Car)'를 '집(House)'으로 바꿔 읽고 있었다.

"The house that answers our questions"우리의 희망사항을 충족시켜 주는 집

"좋은 집의 특징은 4개의 키워드, 즉 디자인(Design), 쾌적함(Comfort), 기술(Technology), 감당할 수 있는 비용(Affordability)으로 표현됩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집에서 생활하는 자의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서 도출된 것이며 이는 반세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철학, 가치입니다."

고대인들이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4개의 원소, 즉 바람(Air)•물(Water)•불(Fire)•흙(Earth)을 꼽아서 그 상호작용과 균형으로 수많은 물질들이 생겨났다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디자인•쾌적함•기술•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라는 4대 요소를 다시 믿어 봄으로써 그 상호작용과 균형 속에서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작에는 사용자의 쾌적함이라는 순수한 목적만이 존재하고, 그 목적을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모든 기술은 선택되니 '과함도 부족함도 없는' 기술이 쾌적함을 담보(擔保)해 준다. 그리고 그 기술을 채택함에 따라 디자인은 자생적으로 형태를 다듬어감으로써 '이유가 있는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어 이 모든 상호 작용은 대중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기에 그 결과물이 가져다주는 혜택들을 수많은 대중들도 공평하게 향유할 수 있다. 이런 철학을 가진 방법론, 디자인 프로세스 앞에서는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순간의 새로움이나 설계자의 미적 호기심이나 만족감을 위한 디자인, 건축주의 재력이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사치스러운 장식이나 양식, 그리고 설비. 그런 모든 것들이 이제는 '헛된 부가가치'나 '가성비를 떨어뜨리는 쓸모없는돈자랑'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고성능, 고기밀, 고단열도 좋다. 시스템 창호도 좋다. 3리터 하우스도 좋고 실험성적서가 말해주는 모든 결과도 좋다. 그리고 과감하고 멋있는 디자인도 좋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집에 사는 주인공들의 '쾌적함'을 위해 존재하며 그 주인공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라는 범주 안에 있을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17년 후, 「전원속의내집」이 통권 400호를 맞이하게 될 날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날이 오기까지 매월 발간되는 각 호에서 어떤 집들이 소개될지 두근거린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집들 속에서 우리의 희망사항을 충족시켜 주는 집이 하나라도 더 많기를 바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리지널 비틀이나 오리지널 미니, 2CV처럼 기억과 기록에 길이 남을 '걸작주택'을 「전원속의내집」 지면을 통해 만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박성호 aka HIRAYAMA SEIKOU

NOAH Life_scape Design 대표로 TV CF프로듀서에서 자신의 집을 짓다 설계자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단독주택과 한국의 아파트에서 인생의 반반씩을 살았다. 두 나라의 건축 환경을 안과 밖에서 보며, 설계자와 건축주의 양쪽 입장에서 집을 생각하는 문화적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구례 예술인마을 주택 7채, 광주 오포 고급주택 8채 등 현재는 주택 설계에만 전념하고 있다. http://bt6680.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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